주체113(2024)년 3월 28일 목요일  
로동신문
사회주의근로자로 떳떳이 살자!
자식앞에 부끄럼없이 산다는것은

2023.3.19. 《로동신문》 4면



자식앞에 떳떳한 어머니가 되고싶은것은 녀성들 누구나 같은 마음일것이다.하지만 사회와 집단앞에 떳떳하지 못하면 자식앞에도 부끄럼없이 나설수 없다고 생각한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애국은 조국과 인민에 대한 헌신이고 투신입니다.》

얼마전에 군사복무를 하고있는 자식에게서 편지를 받아보았다.군보에 난 아버지의 사진을 보며 동지들이 자기를 축하해주었는데 지휘관동지가 홍지성동무의 어머니는 사회주의애국공로자이라고 이야기하는 바람에 저도 모르게 어깨가 으쓱해지더라는것이였다.동지들의 축하를 받고보니 훌륭한 부모님이 고마왔고 군사복무를 잘해야겠다는 결심도 새로와졌다는 아들의 편지를 읽을수록 지나간 나날이 감회깊이 돌이켜졌다.

사실 중학교를 졸업한 나는 지금 일하고있는 남포시송배전부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었다.그러다가 가정을 이룬 후부터는 부양생활을 하게 되였다.남편의 뒤바라지를 하면서, 커가는 자식의 모습을 보면서 그이상 행복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8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어느날 나는 어린 아들의 엉뚱한 질문을 받게 되였다.어머니도 당원인가고, 어머니는 어느 직장에 다니는가고.

그때처럼 자신이 부끄러워보이기는 난생 처음이였다.

그날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나에게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언제부터 이 말을 하고싶었지만 당신의 건강이 걱정되여 말꼭지를 떼지 못했더랬소.난 당신이 다시 직장생활을 했으면 좋겠구만.》

이렇게 되여 나는 처녀시절 사회생활의 첫걸음을 뗐던 추억깊은 일터에 다시 서게 되였다.함께 일하던 동무들도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그때부터 나의 생활에서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시에서 중요대상건설이 진행될 때 나는 돌격대에 탄원하였는데 많은 사람들이 가정부인이고 건강도 나쁜데 결심을 고려해볼것을 권고하였다.하지만 나의 걱정은 건강보다 먼저 일이 바쁜 남편과 어린 자식에 대한 생각이였다.그때 생각을 잘했다고, 이제 우리 지성이가 크면 어머니를 리해하게 될거라고 하면서 나를 그길로 떠밀어준 남편과 곁에서 힘을 주고 이끌어준 동지들이 얼마나 고마왔는지 모른다.

어쩌다 약을 잊고 작업장으로 나가면 남편이 약을 가지고 찾아왔고 병이 도져 수술을 받았을 때에는 직장일군들과 동지들이 앞을 다투어 병원으로 달려왔다.그때마다 인생의 제일 큰 행복이란 사회와 집단, 동지들속에서만 맛볼수 있는것이구나 하는 생각에 저도 모르게 마음이 흥그러워지군 했다.

사회생활에 정이 들수록 우월한 우리 제도를 위해, 고마운 집단과 동지들을 위해 좋은 일을 더 찾아해야겠다는 결심을 가지게 되였다.그래서 퇴원한 후에 나는 중요대상건설장들에 대한 지원사업에 적극 참가하였다.

정말 사는 보람이 있었다.어느새 나는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사랑을 받게 되였던것이다.그 나날 나는 일하면서 배우는 교육체계에 망라되여 젊었을 때 다하지 못한 공부도 했고 조선로동당원의 영예도 지니였다.

그러던 어느날 아들의 손목을 잡고 한집안식구처럼 지내는 공화국영웅인 김룡성로병의 집을 찾았을 때 나는 자책감에 머리를 들수가 없었다.

얼마전에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남편과 내가 삼가 올린 편지를 보아주시였다고, 집안에 기쁜 일이 겹치는데 며칠 휴가를 받으려 한다는 나에게 그는 당의 사랑은 커만지는데 보답의 마음이 식어서야 되겠는가고 나직이 타이르는것이였다.일을 좀 해놓았다고 어느새 만족감에 사로잡혔던 자신을 뉘우치고 나는 더욱 분발하여 일했고 원군사업에도 참가하였다.

당에서는 응당 해야 할 일을 한 나를 사회주의애국공로자로 내세워주었고 공화국창건 74돐 경축행사에도 불러주었다.

그때 나는 이렇게 결의다졌다.마지막순간까지 사회와 집단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나는 이렇게 말하고싶다.

사회생활의 첫걸음을 떼는 처녀이든, 가정생활을 하는 녀성이든 자식앞에 떳떳한 어머니가 되기를 원한다면 사회와 집단을 위해 헌신해야 한다고, 바로 그길에서 인생이 값있게 빛나고 진정한 행복이 찾아온다고.

남포시송배전부 리영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