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8.13. 《로동신문》 4면
《당의 부름이라면 한마음한뜻으로 떨쳐일어나 산도 옮기고 바다도 메우는 기적을 끊임없이 창조해나가는것은 우리 인민의 투쟁전통이며 기질입니다.》
순천세멘트련합기업소의 로동계급이 좋은 날에나 어려운 시기에나 가슴속에 소중히 간직하고 살아온것이 있다.
그것은
그 긍지를 안고 순천의 전세대 세멘트생산자들은 기업소의 연혁사를 자랑찬 위훈으로 수놓아왔다.
세상을 놀래운 200만산대발파
수천m의 갱도와 200여개에 이르는 폭약실, 폭약만 해도 천수백t에 달하는 이 대발파는 우리 나라는 물론 동방의 광산개발력사에서 처음으로 되는 대발파인것으로 하여 세상사람들을 깜짝 놀래웠다.
이런 미더운 로동계급이 있어 1976년 10월에는 락광계통이 완공되여 첫 시험생산이 시작되였으며 그로 하여 세멘트생산에 필요한 원료를 충분히 보장할수 있는 확고한 전망이 열리게 되였다.
하다면 세상을 놀래우는 기적은 어떻게 창조될수 있었는가.
그들의 가슴속에 고패친 하나의 지향이 있었으니 그것은
이런 지향이 모두의 가슴속에 간직되여있었기에 그들은 그렇듯 기존관념을 깨뜨리며 기적을 창조할수 있었다.
순천의 첫세대 세멘트생산자들은 그로부터 6개월후에는 1호소성로를 조업하고 첫 세멘트를 생산하였으며 그 기세를 조금도 늦춤이 없이 2호, 3호소성로를 련이어 일떠세워
사회주의건설의 믿음직한 병기창으로
순천세멘트련합기업소의 연혁사에서 1980년대는 사회주의대건설의 믿음직한 중요병기창으로서의 뚜렷한 자욱을 아로새긴 기적과 위훈의 년대였다.이 시기 수도 평양을 비롯한 전국각지에 일떠선 웅장한 기념비적창조물들은 이루 헤아릴수 없고 건설장마다에는 순천세멘트가 매일같이 실려나갔다.
당시 기업소의 세멘트생산량은 비약적상승을 이룩하였는데 1980년에는 1호, 2호소성로를 조업했던 첫해보다 근 10배의 최고생산실적을 기록하였다.
1980년대에 기업소가 이룩한 소중한 성과는 주체화실현에서 큰걸음을 내짚은것이다.
기업소의 일군들과 기술자, 로동자들은 우리 나라에 무진장한 무연탄에 의한 소성법연구에 달라붙어 1984년에는 중유소비량을 50%로 줄이였으며 1988년부터는 1호와 2호소성계통에서 100% 무연탄에 의한 소성법을 받아들여 막대한 량의 중유를 절약하고 나라에 큰 리득을 주었다.
이뿐이 아니다.대형천정기중기와 프레스, 공작기계를 비롯한 수많은 생산설비들을 자체의 힘으로 제작하면서 가치있는 기술혁신안들을 생산에 도입함으로써 세멘트의 질을 높이고 생산을 정상화할수 있는 확고한 궤도우에 올라서게 되였다.
고난을 뚫고 일떠선 장거리벨트콘베아
1997년 10월 순천세멘트련합기업소에서 대형장거리벨트콘베아수송선이 조업하였다.
이로써 기업소에서는 세멘트생산에 필요한 석탄과 석회석, 점판암 등 연료와 원료들을 벨트콘베아로 실어나르면서 많은 연유와 수송수단들을 절약하여 나라에 적지 않은 리득을 줄수 있게 되였다.련합기업소의 일군들과 로동자, 기술자들은 나라가 어려움을 겪는 시기였지만 당이 결심하면 우리는 한다는 철석의 신념을 안고 한사람같이 떨쳐나 굴뚫기와 구조물건설, 설비조립 등 방대한 공사를 대담하고 통이 크게 해제끼였다.
소성계통의 설비현대화공사를 성과적으로 진행하고 가치있는 기술혁신안들을 많이 받아들여 세멘트생산을 정상화할수 있는 토대를 튼튼히 다져놓은것도 이 시기에 이룩된 또 하나의 자랑찬 성과이다.
고난속에서 뻗어나간 장거리벨트콘베아를 비롯한 자력갱생의 창조물들, 정녕 그것은 그 어떤 난관앞에서도 굴함을 모르고 오직 한길, 당의 뜻을 받드는 충성의 길만을 꿋꿋이 이어온 이곳 로동계급의 강의한 신념과 의지의 과시였다.이렇듯 훌륭한 로동계급이 있기에 그처럼 어려웠던 고난의 시기에도 순천의 소성로들은 동음을 멈춘적 없었고 중요대상건설장들로는 세멘트를 실은 렬차와 자동차들이 쉬임없이 달려가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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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세멘트련합기업소 전세대들의 투쟁정신은 년대와 년대를 넘어 꿋꿋이 이어져 오늘 련합기업소는 더더욱 용을 쓰며 사회주의건설에 적극 이바지하고있다.순천의 세멘트생산자들은 지난 시기에도 그러했지만 앞으로도 충성과 애국을 영원한 바통으로, 삶의 좌우명으로 삼고 더 높은 증산성과로 당을 받들고 조국의 부강번영에 이바지해나갈것이다.
본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