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5일 월요일  
로동신문
전세대 당원들은 이렇게 살며 투쟁하였다
당생활에는 로쇠기가 있을수 없다

2024.10.30. 《로동신문》 3면


입당한 첫날부터 생의 마감날까지 당원의 당생활에는 변함이 없어야 한다.이것이 참된 당원의 모습이며 여기에 당원의 영예와 긍지가 있다.

황해제철소(당시) 용광로직장 권양기운전공이였던 김용찬동지의 삶과 투쟁이 이것을 실증해준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모든 당원들은 언제나 당원이라는 높은 자각을 안고 혁명과업수행에서 군중의 모범이 되고 군중을 이끌어나가는 선봉투사가 되여야 합니다.》

황철의 로기능공, 로당원인 김용찬동지가 늘 외운 말이 있다.

《전투에서 당원과 로병이 앞장서듯이 로동에서는 당원과 로기능공이 앞장에 서야 한다.》

일제가 파괴한 용광로를 복구할 때에도, 미제가 형체도 없이 마사놓은 용광로를 복구할 때에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한 황철의 《로병》은 용광로 주상설비관리를 스스로 맡아나섰다.지상에서 70m나 되는 높은 곳에 올라가 기계설비를 점검하고 기름을 치는 일은 헐한것이 아니였다.하지만 그는 하루도 번짐없이 성실한 땀을 바쳤다.용광로직장 일군들은 주상설비관리문제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였다.

1962년 8월 황철을 찾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 황해제철소에서 생산을 정상화하지 못하고있는데 대하여 걱정하시면서 설비들을 정상적으로 보수정비하고 기술관리를 잘하며 생산에서 기술규정과 표준조작법을 엄격히 지킬데 대하여 강조하시였다는것을 알게 된 그는 자책감을 금할수 없었다.황철에서 늙어오는 오랜 당원으로서 그래도 제구실을 해왔다고, 권양기를 제살붙이처럼 아껴왔다고 자부해온 그였다.돌이켜볼수록 젊은 운전공들이 기대에 정통하지 못한것이 자기에게 책임이 있는것으로 느껴졌다.

그는 당규약의 의무조항에 자신을 비추어보았다.

(당원이라면 당조직에서 분공을 주기만 기다릴것이 아니라 스스로 제기하여 과업을 받아 집행해야 할것이 아닌가.)

설비관리에 절실히 필요한 《권양기설비보수명세서》를 만들것을 결심한 그는 당세포에 제기하여 그것을 자기의 당적분공으로 받아안았다.

전문기술지식을 소유하지 못한 그가 운전작업을 하면서 그런 일을 맡아한다는것이 말처럼 쉽지 않았다.10권나마 되는 작업일지를 빠짐없이 훑어보기도 하고 수리공들을 찾아가기도 하면서 그는 설비관리에 필요한 자료들을 하나하나 수집하느라 고심하였다.

어두워진 눈에 돋보기를 낀채 낡은 작업일지들을 뒤적이는것을 보며 한 로기능공이 그런 일은 젊은 사람들에게 시키라고 권고할 때 그는 말했다.

《이런 일이야 자네나 나처럼 당생활을 오래한 로기능공들이 해야지 누가 하겠나.〈권양기설비보수명세서〉를 만들어놓으면 설비관리가 더 잘될거구 나아가서는 후손들에게 물려줄 용광로의 수명이 늘어나지 않겠나.》

그는 끝끝내 그처럼 방대한 일을 성과적으로 끝내여 나라의 강철기둥을 굳건히 떠받드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육체는 쇠약해질수 있어도 당원의 충성심에는 변함이 없어야 한다는 정치적자각이 모든 난관을 이겨내게 하였던것이다.

운명을 앞둔 순간 그는 당세포위원장의 손을 꼭 그러잡고 마지막당생활총화를 하였다.

《…수령님앞에 맹세한 선철생산에 끝까지 참가하지 못하고 죽는걸 당원으로서 량심상가책을 받게 되오.…내가 못다한 일을 내 아들이 다하게 해주시오.》

자기가 다루어온 권양기처럼 쉬임없이, 끓어번지는 쇠물처럼 열렬하게 당생활의 하루하루를 이어온 로당원은 이렇게 생을 마치였다.

목숨이 붙어있는한 당원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높은 책임감, 자기가 못다한 일을 동지들과 후대들이 이어달라는 고결한 정신,

이것이 전세대 당원들이 후세에 남긴 귀중한 정신적유산이 아니겠는가.

육체에는 로쇠기가 있을수 있어도 당생활에는 로쇠기가 있을수 없다.

한 로당원의 삶의 메아리는 세월의 언덕 넘어 오늘도 울리며 계속혁신, 계속전진에로 우리를 부른다.

본사기자 김향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