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감한 바다의 정복자들
애도간석지 1구역 1차물막이공사에서 혁신을 창조한
평안북도간석지건설종합기업소 일군들과 로동계급의 투쟁
《간석지개간사업에 계속 큰 힘을 넣어 부침땅을 늘여야 합니다.》
평안북도간석지건설종합기업소 일군들과 로동계급이 지난 시기 4년동안 진행한 홍건도간석지 1단계 1차물막이공사와 맞먹는 애도간석지 1구역 1차물막이공사를 불과 1년 남짓한 기간에 끝낸 기세로 제방확장과 장석공사를 계속 힘있게 내밀고있다.
우리는 하루하루가 격전의 분분초초로 이어진 잊지 못할 공사의 나날가운데서도 당결정관철투쟁이 가장 격렬하게 벌어졌던 마감막이공사때의 이야기를 아래에 전한다.
물러설 자리는 없다
지난 1월 어느날이였다.
열띤 론의는 벌써 몇시간째 계속되고있었다.
당장 마감막이를 진행해야 하였지만 바닥보강이 따라서지 못하다보니 제방이 전진하지 못하고있었다.지난 시기에는 마감막이를 봄이나 여름에 진행하였는데 자동부림배에 돌을 싣고 투석하면서 바닥보강을 하였었다.
그런데 겨울철이다보니 자동부림배를 리용할수 없었다.
이런 형편에서 어차피 륙상에서 화물자동차로 돌을 운반하여 바닥보강을 해야 하였는데 조건은 너무도 불리하였다.
바닥깊이를 측정해본데 의하면 수십m나 되였다.
200여m나 되는 구간의 바닥보강을 빨리 하자면 투석강도를 높이는것도 중요하였지만 투석한 돌의 류실을 막는것이 더 큰 문제였다.중심골조공법에 의한 투석방법을 받아들이는 문제가 제기되였으나 지지를 받지 못하였다.이 방법으로는 바닥보강을 할수 없었다.
이러한 때 팽팽한 협의회분위기를 깨뜨리며 김진호기사장의 목소리가 울리였다.
《바다물압력을 리용하여 투석하면 어떻겠습니까.》
사람들의 눈길은 일제히 그에게 쏠렸다.
과연 가능하겠는가.
누구나 서로 얼굴만 쳐다보고있을뿐이였다.
아퀴를 짓지 못하고 협의회가 끝난 깊은 밤이였다.
발목이 묻히게 눈이 내린 제방우를 걷는 서원길지배인의 얼굴빛은 흐린 하늘처럼 어두웠다.그날따라 기업소에 유화 《대계도간석지의 저녁》을 선물로 보내주시고 동지들의 불굴의 정신과 혁혁한 성과를 당중앙은 높이 평가한다는 친필도 보내주신
(당의 사랑과 믿음을 누구보다 많이 받아안은 우리가 이만한 난관에 물러서서야 되겠는가.)
그의 머리속에는 방금전 협의회에서 한 기사장의 말이 떠올랐다.그는 기사장이 착상한 안을 가지고 대중속에 더 깊이 들어갔다.
기업소의 일군들과 기술자, 로동자들 누구나 방도를 찾아 사색하고 또 사색하였다.함흥수리동력대학과 간석지설계연구소의 연구사, 설계원들도 지혜와 열정을 합치였다.각이한 물압력조건에서 쇠그물돌자루를 떨구면서 관찰도 해보았다.
마침내 물높이가 낮은 조금시기에 밀썰물의 특성에 맞게 제방의 어깨부쪽에 쇠그물돌자루를 투석하여 바닥을 보강하는 방법을 도출하게 되였다.
제방이 또다시 전진하였다.
일군들과 건설자들 누구나 비상한 각오로 더 많은 일감을 스스로 걸머지고 떨쳐나섰다.
모자라는 철근을 보장하기 위해 하루밤에도 자재일군들이 수백리길을 다녀왔으며 후방일군들은 푸짐한 후방사업으로 건설자들의 열의를 높여주었다.
이때 또 하나의 난문제가 나섰다.공사속도를 높이자면 바닥보강상태에 대해 수시로 알아보고 대책을 세워야 하였는데 바다에는 얼음장들이 둥둥 떠있었다.
기사장이 위험을 무릅쓰고 작은 배에 올라 얼음장들을 헤치면서 바다깊이를 측정하였다.하루이틀도 아니고 매일 그가 측정한 자료들은 합리적인 공법도입에 이바지되였다.
한겨울의 맵짠 추위속에서도 견인불발의 의지로 일판을 통이 크게 벌려나가는 투쟁기풍에 감탄을 금치 못하는 사람들에게 기업소의 일군들과 건설자들은 이렇게 말하군 하였다.
우리야 바다사람들이 아닌가고, 바다사람들의 담력과 배짱이야 그쯤돼야 하지 않겠는가고.
그들의 담력과 배짱, 그것은 날바다를 막아 조국의 대지를 넓혀가는 간석지건설자들에 대한 우리 당의 하늘같은 사랑과 믿음을 떠나 생각할수 없는것이다.
결사관철의 50여일이 새겨주는 진리
한겨울에 간석지건설이 얼마나 엄혹한 속에서 진행되는가 하는것은 직접 목격해본 사람만이 안다.바다바람이 너무 세차 밖에 잠간만 서있어도 손발은 순식간에 얼어든다.이런 강추위속에서도 우리의 주인공들은 자그마한 주저나 동요도 몰랐다.
마감막이에 필요한 돌보장을 하자면 900여m의 도갱굴진을 해야 하였으며 제방공사를 위한 성토량은 수십만㎥에 달하였다.그 방대하고 어려운 과제를 50여일동안에 해제낀 기적의 창조자들이 바로 이곳 기업소 일군들과 로동계급이였다.그들은 살을 에이는듯한 추위속에서 사나운 날바다와 싸워 승리자가 되였다.
지금도 일군들과 로동계급은 50여일의 나날가운데서도 돌보장의 돌파구를 열었던 지난 1월을 더욱 잊지 못하고있다.
소한이 지난 어느날이였다.
종전보다 2배나 되는 돌보장과제를 해제낄 계획을 세운 이들은 강추위속에서도 주저없이 공사를 내밀었다.
조건은 매우 불리하였다.
특히 애도지구의 채석장은 더욱 그러하였다.산들이 높지 않아 한번 발파를 하여 확보되는 막돌이 적은데다가 진득진득한 질메흙층이여서 굴진속도를 높이기도 조련치 않았다.돌보장이 따라서지 못하니 건설자들의 가슴은 타는듯했다.
모든 건설단위들에서 방도를 찾아나갔다.
그러던 어느날 석화간석지건설대에 나왔던 기업소일군인 송일남동무는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이미전에 어느한 갱에서 발파구멍을 다 뚫은 그곳 착암수들이 다른 갱에서 착암을 하고있었던것이다.발파후 버럭처리를 하자면 1~2시간은 걸리는데 그 시간이 아까왔던것이다.
이렇게 건설자들은 한대의 압축기로 두개의 갱을 뚫었다.
이 소식이 온 건설장에 퍼졌으며 전반적인 공사속도는 더욱 높아졌다.
이런 헌신적인 투쟁기풍과 일본새는 기계화초병들속에서도 발휘되였다.
맵짠 추위가 들이닥친 어느날이였다.
그날따라 기온이 얼마나 낮아졌는지 제방경사면의 돌들에는 두터운 얼음이 덮이였다.
그러나 청강기계화대의 건설자들은 추운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돌운반을 다그쳤다.
갑자기 화물자동차들에 돌을 실어주던 4호굴착기의 동음이 멎었다.운전공 정명철동무가 사색이 되여 기관을 살펴보며 원인을 찾아나갔다.얼마후 그는 기름탕크와 연료뽐프를 련결하는 도관이 얼어 기름공급이 안되는것을 알게 되였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주변에서 돌을 싣던 5호굴착기도 동음을 멈추었다.역시 도관이 얼었던것이다.
그러나 기계화대 대장 장영범동무를 비롯한 일군들과 건설자들은 난관앞에서 주저함이 없이 극복방도를 모색하였다.그 과정에 그들은 굴착기를 살릴수 있는 기발한 착상을 하게 되였다.즉시 대책이 세워졌다.
얼마후 굴착기들의 동음이 다시 울렸다.무쇠팔을 휘휘 저으며 종전처럼 집채같은 돌들을 푹푹 퍼담는 광경앞에서 모두가 서로 얼싸안으며 기뻐하였다.
그무렵 신봉지구에서는 이런 일이 있었다.
맵짠 추위로 화물자동차적재함에 흙밥이 얼어붙는것이 문제였다.그것을 떼느라고 로력을 붙이다보니 운반실적은 전날의 절반으로 떨어졌다.
건설자들은 갈을 베여 적재함에 깔아놓기로 하였다.이렇게 하면 아무리 날이 추워도 적재함바닥에 흙이 얼어붙는 현상을 방지할수 있었다.그리하여 한겨울에 갈베기가 진행되였다.
제 한몸보다도 간석지건설을 먼저 생각하며 앉으나서나 마감막이공사의 성과적보장을 위해 아글타글 애쓰는 사람들은 이들뿐이 아니였다.
때없이 얼어드는 화물자동차의 기관에 보온대책을 세우면서 만가동을 보장한 운전사들, 바람 한점 막을데도 없는 제방우에서 온몸이 뼈속까지 얼어들었지만 자리를 뜨지 않고 차받이를 보장한 시공일군들과 신호수들, 제방끝에서 일하는 건설자들이 뜨끈한 콩물을 마실수 있게 수십개의 보온통과 씌우개를 만들어 보장한 녀맹원들, 조국의 대지를 넓히는 간석지건설자들을 성심성의껏 도와준 국가계획위원회와 국가검열위원회 일군들…
이들은 이렇게 자기의 고귀한 땀방울로 날바다우에 자랑찬 위훈을 새기였다.
50여일동안에 해제낀 마감막이공사,
그것은 정녕 당결정을 자기의 운명과 직결시키고 그 관철을 위해 결사적으로 투쟁해온 용감한 바다의 정복자들이 안아온 기적이였다.
당결정을 무조건 철저히 관철하려는 정신이 투철하면 그 어떤 어려운 과업도 다 수행할수 있다.
바로 이것이 기업소일군들과 건설자들이 공사의 나날에 가슴속깊이 새겨안은 진리였다.
글 및 사진 본사기자 정성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