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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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3월 30일 일요일 3면

《당에서 하라는대로 일을 잘하는 사람이 제일이다!》

우리 당과 조국을 쌀로써 충직하게 받들어온 수많은 애국농민들의

고결한 사상정신세계를 되새기며


우리 혁명력사의 갈피에는 농민영웅들과 함께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당과 조국을 순결한 량심과 의리를 다하여 받들어온 애국농민들이 수없이 많다.

이 땅 어디서나 볼수 있는 평범하고 소박한 농민들이지만 애오라지 당의 뜻을 받들어 묵묵히 새겨온 충성의 자욱과 고결한 사상정신세계는 오늘날 우리 인민 누구나 따라배워야 할 귀중한 본보기로 된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 농업근로자들은 언제나 변함없이 당과 뜻을 같이하고 사회주의와 운명을 함께 하면서 농촌의 혁명진지를 굳건히 지키고 쌀로써 당과 혁명을 보위해온 충직하고 애국적인 근로자들입니다.》

1956년 2월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진행되였던 개천군당대표회에서 있은 일이다.

알곡생산목표를 낮게 세운데 대해 지적하시면서 모든 농촌일군들과 농민들이 《쌀은 곧 사회주의다.》라는 구호를 들고 알곡증산에 떨쳐나서야 한다고, 알곡생산을 늘이기 위하여서는 다수확작물을 많이 심는것이 중요하다고 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연설을 받아안은 한 농촌당원이 연단에 나섰다.보부리의 공승룡동무였다.

미리 준비한 원고는 없었지만 그는 생활이 가르쳐준 진리그대로 흔들림없는 자기의 신념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때까지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대로 해왔기때문에 무슨 일에서나 승리했다.위대한 수령님께서 하라시는대로만 하면 절대로 틀림없다.…

해방전 그는 소작살이로 지지리 천대받고 못살아 제 이름 석자도 쓸줄 몰랐던 농사군이였다.혁명이 무엇이고 계급투쟁이 어떤것인지 다는 알지 못하였지만 해방후 자기의 실체험을 통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 내놓으신 모든 시책들이 다 인민을 위한것이라는것만은 똑똑히 새겨안았기에 그는 이처럼 자기의 진정을 뜨겁게 토로할수 있었다.

공승룡동무는 당의 뜻을 관철하는 길에 자기의 집안식솔들부터 앞세웠다.오죽했으면 갓 시집온 새 며느리까지 진거름통을 지고다니게 한것을 보고 참 모진 령감이라고 맞대놓고 말하는 사람들까지 있었겠는가.그때마다 그는 《옛날부터 일이 사랑이라는 말도 있지만 지금이야 당에서 하라는대로 일을 잘하는 사람이 제일이지.》라고 확신성있게 말하군 하였다.

당에서 하라는대로 일을 잘하는 사람이 제일이다!

이것은 결코 그 하나의 심정만이 아니였다.위대한 수령님께서 가르쳐주신대로 일하는 과정에 우리 농민들의 가슴에 천연바위처럼 들어앉은 확고한 신념이였다.당의 뜻을 받들면 풍년이 오고 그렇지 못하면 흉년이 들고만다는것이 그들의 한결같은 심정이였다.하기에 그들은 결사의 실천으로 당의 뜻을 받들었다.

당에서 하라는대로 일을 잘한다는것은 결코 형식이나 차리고 출석이나 긋는 식으로 일을 한다는것을 의미하지 않는다.설사 그 어떤 고난이 겹쳐든다 해도 그것이 실지 현실에서 은을 낼 때까지 끝까지 완강하게 밀고나간다는것이다.그래서 당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서는 완강한 의지와 결사의 각오가 필요한것이다.

우리 농민들에게 있어서 풍년낟가리의 높이는 곧 당정책관철을 위한 자기들의 충성심의 높이였다.

1974년 1월 농촌경리의 종합적기계화를 실현하여 농업생산을 늘이며 농민들을 어렵고 힘든 로동에서 빨리 해방시킬데 대한 당의 뜻을 현실로 꽃피워 전국농업대회에서 위대한 수령님께 기쁨을 드린 자랑을 안고 작업반으로 돌아온 은률군 장련협동농장(당시) 작업반장 백남일동무의 생각은 깊었다.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대로 종합적기계화를 더욱 훌륭히 수행하자면 해야 할 일이 적지 않았는데 일부 작업반성원들은 고개를 기웃거리며 그 일에 선뜻 응해나서지 않았다.사실은 그전에도 일부 포전들을 정리하려고 숱한 품을 들였으나 한번 장마가 지면 원래대로 되돌아가군 하였기때문에 괜한 공을 들이지 말자는것이였다.그때 그는 작업반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에게는 오직 당의 뜻을 관철할 의무밖에 없습니다.지난 시기의 토지개량이 자꾸 허사로 되고만것은 우리가 수령님께서 하라시는대로 철저하게 하지 못했기때문입니다.우리가 언제 수령님께서 하라시는대로 해서 랑패를 본 일이 있습니까.》

바로 이런 결사의 각오를 안고 낮과 밤이 따로없이 일했기에 그는 작업반토지를 다 개량하고 농장원 한사람당 10정보의 땅을 다루면서도 전례없는 대풍을 이룩하여 농장에 찾아오신 위대한 수령님께 또다시 커다란 만족을 드리였다.

수령의 뜻을 관철하는 길에서는 한치의 드팀도 몰랐던 전세대 농민들, 그들이 당에서 하라는 일이라면 그 어떤 조건과 환경속에서도 무조건 해낼수 있은것은 결코 뛰여난 능력을 타고나서도, 그 어떤 특별한 교육을 따로 받아서도 아니였다.

모뜨는기계를 만들어 모를 뜨고 실어나르는 일도 기계로 할수 있게 하려고 한다고 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를 높이 받들고 우리 나라의 지형조건과 농작물의 특성에 맞는 새로운 능률적이고 경제적인 농기계를 창안제작함으로써 새 기술혁신의 봉화상과 함께 금메달을 수여받는 크나큰 영광을 지닌 사람도 다름아닌 판문군(당시)의 평범한 농장원이였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기계로 벼모를 뜨는것을 보지도 못하였으며 또 기계로 모를 뜰수 있다고 생각조차 해본 일이 없었다.하지만 그는 고심어린 탐구의 노력을 기울여 마침내 위대한 수령님께서 그처럼 바라신 모뜨는기계를 끝끝내 창안제작할수 있었다.

하다면 과연 무엇이 평범한 농장원인 그를 그처럼 생소한 탐구의 길에도 주저없이 뛰여들어 성공할수 있게 이끌어주었는가.

오직 우리 농민들을 잘살게 하시려 자신의 생신날, 명절날도 쉬지 않으시고 위대한 수령님께서 걷고걸으신 이 나라의 험한 농촌길이 그의 가슴속에 응어리로 꽉 차있었기때문이였다.일찌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신께서는 우리 나라 농촌들가운데 가보지 않은 곳이 별로 없다고, 자신께서 농촌경리부문을 지도하기 위하여 협동농장들에 찾아다닌것만 하여도 수십만리는 될것이며 농장원들을 만나 담화한것만 하여도 수만명이 될것이라고 뜨겁게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친히 농사방법까지 가르쳐주시면서 끊임없이 현지지도의 길을 걷고걸으시는데 농사를 이렇게 해서야 되겠는가.두엄이 모자라면 땀으로라도 땅을 걸구고 손포가 모자라면 열밤을 지새워서라도 땅을 다루어야 할게 아닌가!》

이것은 수십년전 불어치는 눈보라속을 헤치며 황주군 외상협동농장(당시)의 기계화초병으로 달려온 뜨락또르운전수 유현상동무가 척박하고 무질서한 뙈기밭들로 뒤덮여있는 긴등벌을 바라보며 했던 말이다.

이런 불같은 충성심을 지녔기에 당시 그는 평범한 뜨락또르운전수였지만 땅이 얼면 이른봄에 인차 토지정리를 할수 없다고 생각하고 북데기를 포전마다 덮어놓아 짧은 기간에 뙈기밭과 논들을 기계화포전으로 정리하였다.그렇듯 마음속에 오로지 위대한 수령님의 뜻대로 농사를 잘 짓겠다는 불같은 일념만을 안고 살았기에 그는 그후 농장의 관리위원장(당시)이 되여서도 위대한 수령님께 언제나 기쁨만을 드릴수 있었다.

1970년대 세계가 한랭전선의 영향으로 아우성칠 때 우리 농민들이 안아온 풍년가의 노래소리도, 그후 어렵고 힘든 속에서도 알곡증산으로 당을 받들기 위해 피타는 노력으로 안아온 흐뭇한 작황들도 전세대 애국농민들의 이처럼 불같은 충성심을 떠나 어떻게 생각조차 할수 있겠는가.

당에서 하라는대로 일을 잘하는 사람이 제일이다!

바로 이것이 전세대 애국농민들의 한결같은 인생관이였다.당에서 하라는 일이라면 무조건 해야 하며 당의 뜻을 받들어나가는 길에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칠 때 그 어떤 조건에서도 만풍년을 이룩할수 있다는것을 전세대 애국농민들은 이렇듯 자기들의 불같은 실천으로 우리 새세대들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주었다.

그때로부터 세월은 멀리도 흘렀다.하지만 아무리 세월이 흐르고 세대가 바뀌여도 그들이 남긴 충성과 애국의 이야기는 우리 새세대들의 가슴속에 깊이 새겨져있다.지금도 그들이 살던 농장마을에 가면 그들의 충성심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수 있고 그들처럼 살려는 강렬한 의지를 느낄수 있다.

농업근로자들에게 있어서 나날이 커가는 당의 은덕에 보답하는 길은 오직 하나 농사를 잘 짓는것이다.그러자면 전세대들처럼 당의 뜻을 그 어느 하나도 놓침이 없이, 한치의 드팀도 없이 완전무결하게 집행해야 한다.

농업근로자들이여, 오직 당에서 하라는대로 일을 잘하여 그 어떤 불리한 조건에서도 사회주의대지에 풍요한 작황만을 펼쳐놓았던 전세대 애국농민들처럼 당에 대한 불같은 충성심을 안고 기어이 당창건 80돐이 되는 올해에도 이 땅우에 풍년가의 노래소리가 높이 울려퍼지게 하자.

본사기자 김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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