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새 출발은 마음먹기탓이다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나는 무엇을 바쳤는가라는 물음에 늘 자신을 비추어보면서 애국의 마음을 가다듬어야 합니다.》
매일 아침 일터에 들어설 때마다 나의 마음은 절로 흥그러워진다.학원교직원들과 학생들을 위한 후방공급사업을 하느라 정말 수고가 많다고 만나는 사람마다 다정히 인사를 건네며 고무해주기때문이다.
지금은 이렇게 동지들의 사랑을 받으며 보람있게 살지만 몇해전까지만 해도 나의 모습은 오늘과 같지 않았다.젊어 한때는 어느한 공장의 후방경리부문에서 일하면서 일욕심많은 이악쟁이로 둥둥 떠받들리웠지만 생활상어려움을 겪게 되자 그 열의는 점점 식어졌고 끝내는 직장일을 그만두었던것이다.
농업전문학교(당시)시절에 배운 지식과 공장에서 일하면서 익힌 축산기술을 가지고 나는 자신과 가정을 위해 눈코뜰새없이 바삐 뛰여다녔다.그렇게 아글타글 집살림을 꾸리는것이 안해로서, 어머니로서 제구실을 다하는것이라고 생각하였다.그러나 그러한 생활이 늘 즐겁기만 한것은 아니였다.본의아니게 남들의 오해를 살 때도 있었고 자기밖에 모르는 녀자라고 손가락질을 받을 때도 있었다.그때마다 내 기술과 내 노력으로 제 집식구들을 돌보는데 그것이 무슨 잘못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억울하기도 했다.
하루는 본가집에 전화를 걸어 하소연을 했다.그런데 뜻밖에도
나는 그날 밤 한잠도 자지 못했다.사실 우리 가족은 평양에서 살다가 농촌에 자원진출한
생활상어려움이 닥쳐들자
그래서 시집간 후로는 부모와 형제들에게 손을 내밀지 않고 어떻게 하나 제힘으로 생활을 꾸려나가겠다고 아득바득 애쓰는 나를 리해해줄 대신 오히려 꾸중만 하니
나의 고민은 점점 깊어졌다.부모앞에도 형제들앞에도 떳떳이 나설수 없는 내가 부끄럽기 그지없었다.다시 직장에 나갈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오래동안 직장생활을 하지 않았는데 꽤 적응될수 있을가 하는 위구심, 새 출발을 하기에는 때가 너무 늦었다는 생각에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동요하고 주저하고있을 때 나는 전국각지의 녀성들이 당의 뜻을 높이 받들고 가정의 울타리를 벗어나 사회에 적극 진출하고있는 소식에 접하게 되였다.나보다 나이도 훨씬 많고 지어 년로보장을 받을 나이가 거의 다된 녀성들까지 직장에 나가 한몫 단단히 하고있는 사실들을 알고 나는 더이상 가만있을수 없었다.
드디여 나는 한가정의 밥가마만을 쓰다듬어온, 비좁은 집뜨락만을 맴돌며 살아온 부끄러운 생활과 단호히 결별하기로 결심하였다.
나는 중앙체육학원에 찾아가 자기자신과 가정만을 위하여 써먹어온 나의 지식과 기술을 나라를 위하여 아낌없이 바칠것을 결의다졌다.학원일군들은 나의 의견을 반갑게 받아들이고 학원의 후방공급사업을 위한 축산을 하도록 해주었다.
사실 단출한 식구를 돌보다가 그 많은 학원교직원, 학생들을 위해 일하자니 정말 헐치 않았다.너무 힘들어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다.그때마다 일군들은 변함없이 믿어주었고 힘을 내여 일하도록 적극 떠밀어주었다.그 손길에 이끌려 나는 축산을 본때있게 하여 후방공급사업에 적은 힘이나마 이바지할수 있게 되였다.그리고 사회와 집단을 위한 좋은 일도 찾아하여 우리 당에 기쁨도 드리였다.
이런 나를 교직원들과 학생들은 어머니라고 정담아 불러주는데 그럴 때마다 정말 사는 멋과 보람이 느껴지고 내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처럼 여겨진다.
나는 이렇게 다시 태여났다.왜서 좀더 일찌기 정신을 차리지 못했던가 하는 후회도 들지만 나는 늦지 않았다고 생각한다.진심으로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고 인생의 새 출발을 한 사람, 남보다 뒤늦게야 바른길에 들어선 사람도 자기의 결심을 실행하기 위해 완강히 노력한다면 얼마든지 사회와 집단의 존경을 받으며 떳떳한 삶을 누릴수 있다는 진리를 깨달았기때문이다.
인생의 새 출발은 마음먹기탓이다.나에게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다.힘들게 다시 찾은 참된 인생길에서 나는 두번다시 탈선하지 않고 보람차게 살며 일해나가겠다.
중앙체육학원 로동자 최은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