량심과 한생
금야청년탄광 공업시험소 기사 박흥진동무는
수도에서 자원진출한 때로부터 30년간 깨끗한 삶의 자욱을 새겨오고있다
《모든 근로자들은 당과 혁명, 국가와 사회를 위하여 량심적으로 성실히 일해나감으로써 당의 은덕과 국가의 고마움에 실천으로 보답하는 고결한 풍모가 우리 인민의 혁명적륜리로 되게 하여야 합니다.》
평범한 인간의 한생이 우리의 가슴을 울린다.
온 나라가 고난을 겪던 1995년에 가족과 함께 수도 평양에서 수백리 떨어진 지방의 탄광에 자원진출한 후 30년간 변함없이 한직종에서 일하면서 수많은 과학기술적문제들을 해결하여 석탄증산에 이바지한 금야청년탄광 공업시험소 기사 박흥진동무,
팔순을 가까이한 오늘까지도 일손을 놓지 않고있는 그의 한생을 쥐여짜면 량심이라는 두 글자밖에 남지 않는다.
하거늘 우리 어찌 감동에 젖은 마음으로 그의 고결한 인생길을 갈피갈피 더듬어보지 않을수 있으랴.
그가 선택한 길
지금도 박흥진동무에 대하여 알게 된 사람들은 그의 경력을 두고 놀라움을 금치 못해한다.탄광으로 진출하기 전까지 그는 교육위원회 고등교육연구소(당시)에서 실장으로, 당세포비서로 사업하였던것이다.
사실 수도의 중요기관에서 일군으로 사업하다가 지방의 탄광으로 가족과 함께 자원진출한다는것은 누구나 할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하다면 그는 어이하여 남들이 쉽게 결심할수 없는 그런 길을 선택하였는가.
언제인가 그는 우연히 출장길에서
이런저런 말을 나누다가 문득 박흥진동무가 김책공업대학(당시)에서 용접공학을 전공했다는것을 알게 되자 지배인은 그에게 자기의 안타까운 심정을 이렇게 터놓았다.
《로천채굴을 하는 우리 탄광에선 뭐니뭐니해도 굴착기가 꽝꽝 돌아가야 석탄이 많이 나오겠는데 제일 걸리는건 용접봉문제입니다.용접기술전문가인 실장동무가 도와줄수 없겠습니까?》
이렇게 되여 박흥진동무는 자기의 고심어린 노력이 깃들어있는 연구자료들을 탄광에 보내주었으며 좋은 착상이 떠오르면 한밤중이라도 탄광지배인에게 전화를 걸어 알려주군 했다.
하지만 왜서인지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자기의 방조를 받을 때마다 쟁쟁한 용접기술자가 한명만 있어도 탄광이 허리를 펼것같다고 입버릇처럼 외우군 하는 지배인의 목소리가 귀전에서 사라질줄 몰랐던것이다.
언제부터인가 그는 머리속으로 탄광에서 기술사업을 하는 자기의 모습을 그려보군 하였다.그러다가는 인차 도리머리를 젓군 하였다.
지난 기간 대학에서 연구사업을 하면서 늘 집을 떠나 생활해온 그였다.교육위원회로 소환된 후 이제야 안착된 생활을 하게 되였다고 못내 기뻐하던 안해의 모습을 그려볼수록 온 가족이 탄광으로 내려가자는 말이 선뜻 나가지 않았던것이다.
더우기 평양학생소년궁전에서 마음껏 희망의 나래를 펼치고있는 사랑스러운 두 딸의 전도도 마음에 걸려서였다.
그러던 어느날 박흥진동무는 자신께서 10년만 젊었어도 갱에 들어가 탄부들과 석탄을 캐고싶다고 하신
그는 평범한 농장원가정에서 나서자랐다.군사복무를 마친 그가 김책공업대학입학통지서를 받은 날 집안사람들은 물론 온 마을사람들이 기뻐하였다.그의
(숨이 지는 마지막순간까지 당에 충성다하겠다고 맹세다졌던 내가 당의 뜻을 앞장에서 받들 대신
이날 박흥진동무는 일기장에 또박또박 써나갔다.
무릇 인간에게 있어서 두려운것은 죽음이 아니라 량심을 저버리는것이라고.량심을 저버리는 그 순간에 벌써 마음속엔 어둠이 깃들고 육체는 살아있어도 정신은 불구로 되며 그래서 력사에는 목숨을 바쳐 량심을 지킨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무수히 전해져오고있다는데 대하여.
이렇게 인간의 량심, 공민의 량심, 혁명적량심을 지켜 탄광으로 탄원한 그에게 크나큰 영광이 차례졌다.
진정 그것은 평범한 일군의 지나가는 말 한마디에서도 시대의 부름을 느낄줄 알고 누가 꼭 짚지 않아도 당이 바라는 곳에 스스로 자기를 세울줄 아는 백옥같은 량심을 지닌 인간들만이 받아안을수 있는 크나큰 사랑과 믿음이였다.
직위나 명예보다 귀중한것
여러건의 발명과 수십건의 새 과학기술성과도입, 수십건의 창의고안…
이것은 박흥진동무가 지난 30년동안 금야청년탄광 공업시험소 기사로 사업하면서 이룩한 과학기술성과들이다.그러나 그에게는 박사메달도, 높은 급의 국가수훈도 없다.
탄광의 발전을 위해 많은 과학기술적문제들을 해결하면서도 그 어떤 명예나 대가도 바라지 않은 그렇듯 깨끗한 마음을 그가 사업과 생활의 여가시간에 틈틈이 써온 수기의 글줄에서 찾아본다.
《사람의 한생은 보이지 않는 량심과 사심과의 심리적인 대결과정이라고 말할수 있다.…고지식성으로 하여 남들처럼 가정의 행복을 지켜주지 못한 자책감도 이겨내야 했고 육체적인 고통으로 남모르는 눈물을 흘린 날도 적지 않았다.그러나 후회는 하지 않는다.…삶의 긍지와 보람을 당과
이 땅에 태를 묻은 사람이라면 어머니당을 위해, 고마운 이 제도를 위해 충성의 한길, 애국의 한길을 순결하게, 곧바르게 걸어나가야 한다.》
이 글을 통해서도 우리는 한생을 량심적으로 살아온 한 인간의 고결한 정신세계를 뜨겁게 안아보게 된다.
사실 대학에서 교원생활도 했고 중요기관의 일군으로도 사업한 박흥진동무가 금야청년탄광에 내려오자 탄광일군들은 물론 상급단위의 일군들도 쉽지 않은 재사가 왔다고 하면서 탄광의 기술적문제들을 푸는데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공업시험소 소장의 직무를 맡기려고 하였다.하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나는
이런 자각을 안고 그는 탄광에 이사짐을 풀자마자 금야일대에 자리잡고있는 지질탐사대들을 찾아 발이 닳도록 뛰여다니였다.탄광주변에 어떤 광물들이 묻혀있는지 알아야 그에 기초하여 용접봉심선과 피복제를 새로 만들수 있었기때문이였다.그렇게 몇달동안 주변의 지질상태를 파악하고난 그는 안해에게 큼직한 배낭을 만들어줄것을 부탁하였다.해당 지역들을 찾아다니며 필요한 광물들을 캐여 날라오자는것이였다.이것을 알게 된 일부 사람들이 어떻게 그 무거운 광물들을 등짐으로 나르겠는가고, 탄광을 위한 일인데 자동차라도 해결받자고 제기해나섰다.그러는 그들에게 박흥진동무는 나라사정이 어려운데 어떻게 우리 생각만 하겠는가고 하면서 굳이 사양하며 배낭을 메고 먼길을 떠났다.그렇게 그가 무거운 광물배낭을 지고 걸은 길이 얼마였던가.
그 나날 지방원료에 의한 용접봉생산에서는 큰 전진이 이룩되였으며 그는 탄광에 없어서는 안될 보배로 떠받들리우게 되였다.
언제인가 그가 대형굴착기의 중요부속품생산에서 나서는 과학기술적문제를 해결하였을 때였다.
탄광일군들은 정말 대단한 성과라고 하면서 그에게 학위론문을 쓸것을 권고하였다.
그러나 그는 빙그레 웃으며 도리머리를 저었다.학위론문을 쓸 시간이면 과학기술적문제들을 하나라도 더 풀어 나라에 리득을 주겠다는것이 그의 진정이였다.아마도 이 세상에 학위를 바라지 않는 지식인은 없을것이다.그러나 그에게 있어서 그 어떤 학위보다 더 귀중한것은 당의 걱정을 하나라도 덜어드리는것이였으니 이런 고결한 인생관을 가진 사람앞에 누구인들 진심으로 머리숙이지 않을수 있으랴.
그렇듯 순결한 량심을 지닌 그였기에 70고령에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세멘트생산에 필요한 다원소복합개량제개발에 나섰다.일은 그가 도의 한 일군으로부터 어느한 지역에 다원소광물이 무진장하게 매장되여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때부터 시작되였다.
(지금 당에서 지방건설에 쓰일 세멘트생산때문에 근심하고있는데 우리 도에 흔한 그 광물로 다원소복합개량제를 만들어 세멘트공장에 보내주면 좋지 않겠는가?)
그는 시험로부터 쌓기로 마음먹었다.나이도 적지 않은지라 로를 쌓는 일이 헐치 않았다.옆에서 일손을 거들어주던 한 젊은 기사가 탄광에서 제기되는 과학기술적문제들만 풀재도 시간이 모자라는데 아바이는 괜히 사서 고생한다고 푸념을 늘어놓았다.
그러는 그에게 박흥진동무는 진정넘친 어조로 말하였다.
《탄광일이든 지방건설이든 당에서 걱정하는 문제를 한가지라도 푸는게 우리 시대 기술자들의 의무가 아닐가!》
우리 잠시 그날의 로당원의 고백앞에 자신의 량심을 비추어보자.나라에서 품들여 배워준 지식과 기술을 나는 과연 무엇을 위하여 바치고있는가를, 당에서 안타까와하고 걱정하는 문제를 외면하고 자기의 안락만을 위해 살지는 않았는가를.
솔직히 말해서 박흥진동무도 마음만 먹으면 자기의 기술과 능력을 자신과 가정을 위해 바칠수 있었고 탄광을 떠나 먹을알이 있는 일터로 자리를 옮길수도 있었다.그러나 그는 30년세월을 하루와 같이 기사로 일하면서 오직 나라에서 걱정하는 문제를 푸는 일에 전념하였다.
하다면 그렇듯 한생토록 애국의 한길만을 걸어온 그의 가슴속에는 과연 무엇이 소중히 자리잡고있었는가.
모든것이 부족하고 어려운 속에서도 탄광의 석탄생산에 이바지한 공로로 그가 어느한 대회에 참가한적이 있었다.
그때 그는 우리 나라 굴지의 기계공장에서 책임일군으로 사업하고있는 금야청년탄광의 이전 지배인과 감격적인 상봉을 하였다.그가 아무런 학위도 없이 그냥 기사로 일하고있다는것을 알게 된 책임일군은 무척 놀라와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난 그래도 동무의 실력이면 지금쯤 높은 학위라도 받았을줄 알았는데.이거 정말 미안하게 됐소.…》
아예 그럴것없이 우리 공장으로 옮겨오지 않겠는가고, 동무만 동의한다면 지금까지의 미안한 감정까지 합쳐 늘 업고다니겠다고 하는 일군에게 박흥진동무는 이렇게 말했다.
그 마음은 고맙지만 나는 숨이 지는 순간까지
나에게는 그 어떤 높은 직무도 명예칭호도 필요없다, 오직
언제나 조국앞에 떳떳하겠다는 애국적량심, 한생을 총화하게 되는 그런 자리에서도 나는 조국의 아들로서 해야 할 일을 다하지 못했다고 자책하는 그 마음으로 하여 그의 한생은 만사람의 존경을 받는것이다.
진정 그의 고결한 모습은 참다운 충실성은 가장 깨끗한 량심을 떠나 생각할수 없음을 우리모두에게 가르쳐주고있다.한생토록 백옥같은 량심을 지켜가는 참된 인간들이야말로 우리 조국의 자랑이고 크나큰 재부이다.
글 및 사진 본사기자 정영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