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의 귀중함을 가슴깊이 새기고
30여년세월 한모습으로
체육성 체육시설관리국 로동자 석옥숙동무와 그의 남편 강기남동무가 그렇듯 오랜 세월 원군길을 걷고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하지만 그들부부는 원군을 제일가는 가풍으로 여기며 누가 알아주건말건 자기들이 선택한 길을 묵묵히 이어가고있다.
석옥숙동무가 군인들과 끊을수 없는 인연을 맺게 된것은 30여년전 전연초소를 지키던 오빠가 뜻밖에도 군사임무수행중에 영웅적으로 전사하였다는 소식에 접하고서였다.
그는 조국을 위해 귀중한 청춘을 서슴없이 바친 오빠의 마음까지 합쳐 인민군대원호사업에 자기의 모든것을 깡그리 바칠 결심을 품게 되였고 그때부터 당의 대건설구상을 높이 받들고 위훈의 자욱을 새겨가고있는 군인건설자들을 찾아 원군길에 나섰다.
수도의 건설장들과 안변청년발전소건설장을 비롯하여 군인건설자들이 있는 곳이라면 그 어디서나 원호사업에 진정을 바쳐가는 그의 모습을 찾아볼수 있었다.안변청년발전소건설에 동원되였던 강기남동무와 한가정을 이룬 후에도, 자식들을 낳아키우는 속에서도 그의 원군길은 변함없이 이어졌다.
그 나날 그는 전국원군미풍열성자대회에 참가하여
지난 4월에도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간석지건설장을 찾은 그들부부는 자기들이 성의껏 마련한 원호물자를 군인건설자들에게 안겨주었다.
정녕 그들부부처럼 오랜 세월 인민군대원호사업에 깨끗한 애국적량심을 바쳐가는 참된 공민들이 많기에 내 조국은 나날이 더욱 강해지고있는것이다.
안정철
로의사가 걷는 길
함경북도종합병원 과장 채성옥동무가 원군길을 걷게 된데는 남다른 사연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근 40년전 어느 깊은 밤 그는 우연히
청진의학대학에서 강좌장으로 사업하고있던
그때부터
뜨거운 정성이 명약이 되여 마침내 더는 군사복무를 할수 없다던 병사는 다시 초소에 서게 되였으며 그때부터 채성옥동무의 가정은 그 병사가 복무하는 부대와 남다른 인연을 맺게 되였다.
그러나 부모와 함께 원군길을 이어갈 때까지만 해도 그는 변심없이 이길을 간다는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것을 미처 다 알수 없었다.나라가 어려움을 겪던 고난의 행군, 강행군시기 생활상어려움이 겹쳐들자 그는 일시적으로 원군사업을 중단하게 되였다.
그후 나라가 어려운 때일수록 군대가 강해야 한다는 어머니의 당부를 듣고 다시 이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제는 예순살이 넘었지만 그는 원군길을 끝까지 이어가라던 부모의 당부를 늘 되새겨보며 인민군군인들을 위한 일을 스스로 찾아하고있다.
본사기자 김일경
병사들이 따르는 우리 어머니
신의주시 신선동에서 살고있는 한옥희녀성은 병사들을 위한 일이라면 큰일, 작은 일 가리지 않고 발벗고나서는 사회주의애국공로자이다.
병사들을 위한 일이자 자기자신과 가정의 행복을 위한 일이라는것이 근 20년세월 원군길을 걸어오면서 그가 가슴깊이 새긴 삶의 좌우명이다.
초소의 병사들을 위하는 길에서 인생의 더없는 행복과 보람을 찾는 그였기에 지난해에도 평안북도피해복구에 동원된 군인들을 친자식처럼 여기고 그들에게 뜨거운 정을 부어주었다.
언제인가는 병치료때문에 병원에 갔다가 우연히 알게 된 한 인민군병사의 건강회복을 위하여 온갖 정성을 기울인적도 있었다.
지금도 한옥희녀성은
인민의 행복을 위한 창조물을 일떠세우기 위해 땀과 열정을 다 바쳐가는 병사들을 위해서라면 아까울것이 없다는 고결한 인생관을 안고 사는 한옥희녀성을 병사들은 《우리 어머니》라고 정답게 부르며 따르고있다.
본사기자 정영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