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제도가 꽃피운 아름다운 이야기
집단의 뜨거운 축복속에
얼마전 륙해운성 옥류선박운영국의 일군들은 한자리에 모여앉았다.이제 며칠후에 있게 될 한 종업원의 결혼식문제때문이였다.
그들이 평범한 종업원의 결혼식을 놓고 그처럼 왼심을 쓰는데는 사연이 있었다.
군사복무를 마치고 갓 배치된 로동자 박효동동무에게는 어머니가 없었다.하기에 이곳 일군들과 종업원들은 사회생활의 첫발을 내짚은 그가 한점 그늘없이 맡은 일을 잘하도록 따뜻이 돌봐주고 이끌어주었다.그리고 훌륭한 처녀가 한생의 길동무로 나섰을 때에는 모두가 자기 가정의 일처럼 기뻐하며 새살림을 펼 보금자리를 꾸리는 일에 아낌없는 지성을 바쳤다.
그날 국책임일군은 모임참가자들에게 말했다.
《우리가 그 동무의 어머니를 대신하여 결혼상을 성의껏 차려줍시다.》
하여 지난 11월 박효동동무는 수많은 사람들의 뜨거운 축복속에 새 가정을 이루었다.
뜻깊은 결혼식날 아낌없는 축하를 보내주는 국일군들과 종업원들을 보며 그의 눈굽은 저도 모르게 젖어들었다.사심없는 정으로 품어안고 보살펴준 그들모두가 친부모, 친혈육의 모습으로 안겨와서였다.
축하의 꽃다발을 아름벌게 받아안으며 그는 가슴속에 그들먹이 차오르는 격정을 이렇게 터치였다.
《동지들의 사랑과 믿음을 언제나 잊지 않고 고마운 어머니조국을 위해 힘껏 일하겠습니다.》
본사기자 엄수련
정든 교정에 다시 서기까지
지난 11월 어느날 옥전제1중학교 교정에 들어선 리광혁동무의 가슴은 후덥게 달아올랐다.
한해전까지만 해도 더는 교단에 설수 없다고 하던 그가 이렇게 정든 교정에 다시 들어서게 된데는 가슴뜨거운 사연이 있었다.
영예군인으로서 10여년세월 후대교육사업에 헌신해온 그는 지난해 뜻밖의 병으로 침상에 눕게 되였다.그의 가슴은 다시는 교단에 설수 없다는 생각으로 하여 미여지는듯 아팠다.그러던 그에게 생의 활력을 되찾아준것은 동지들의 뜨거운 사랑과 헌신이였다.
학교일군들과 교원들은 교육사업으로 바쁜 속에서도 병원에 자주 찾아와 의료일군들과 치료대책을 토의하였고 퇴원한 후에는 그의 몸상태가 하루빨리 회복되도록 친혈육의 정을 다하였다.
언제인가 리광혁동무가 집단과 동지들의 짐이 될수 없다고 미안한 심정을 터놓았을 때에도 학교일군들은 그를 엄하게 질책하며 병치료에서 신심을 가지도록 고무해주었다.도당위원회일군들도 평범한 영예군인교육자를 위해 지성을 아끼지 않았다.
이런 뜨거운 마음에 떠받들려 그의 건강은 하루가 다르게 회복되여갔고 오늘은 이렇게 다시 일터에 서게 되였던것이다.
하기에 정든 교정으로 들어서며 그는 굳게 마음다졌다.
사람들모두가 화목한 대가정을 이루고 사는 이처럼 고마운 제도, 고마운 품을 위해 지혜와 열정을 깡그리 바쳐가리라고.
글 및 사진 본사기자 백광명
리광혁동무(앞줄 왼쪽에서 두번째)
우리 담당의사
얼마전 대동강구역 문흥2동에서 살고있는 리경형로인의 집으로 한 녀성이 들어섰다.그는 문흥종합진료소의 호담당의사 박수정동무였다.
조국보위초소에서 한생을 빛내인 나이많은 로인의 건강을 위해 온갖 정성을 기울이던 그가 로인이 앓는다는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온것이였다.
그날 리경형로인의 눈앞에는 흘러온 나날이 어제런듯 떠올랐다.
마치도 친자식인듯 아침이면 꼭꼭 전화로 문안인사를 하고 저녁에는 또 저녁대로 혈압상태는 어떠한가, 식사는 잘하는가 등 건강과 생활의 구석구석을 세심히 보살펴온 호담당의사,
비록 혈육은 아니지만 살뜰한 정은 나날이 깊어만져 친딸과도 같이 여겨지는 박수정동무였다.그가 자기를 비롯한 동안의 주민들뿐 아니라 새 거리로 이사간 전쟁로병의 건강과 생활도 정성다해 돌보아주었다니 로인의 심정이 어찌 뜨거움에 젖어들지 않을수 있으랴.
하기에 로인은 우리에게 이 사실을 전하며 천리마시대 보건일군들이 지녔던 뜨거운 인간애를 그대로 체현한 우리 시대 참된 보건일군의 모습을 보았다고, 그런 아름다운 인간생명의 기사들을 키워준 고마운 우리 당에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고 자기의 격동된 심정을 터놓았다.
본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