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사이유강화조약
제1차 세계대전을 공식적으로 종결지은 조약이다.
강화조약은 교전국들사이의 전쟁상태의 종결 및 정상적관계수립을 위하여 맺는 정치조약이다.일반적으로 전쟁포로의 송환, 전쟁배상, 전패국의 지위와 발전에 관한 문제 등에 대하여 규정한다.
강화조약의 성격과 내용은 교전국들의 국가사회제도와 전쟁목적에 의하여 정해진다.제국주의자들이 침략전쟁후 맺는 강화조약은 전패국을 예속시키고 략탈적인 전쟁배상을 강요하며 새로운 침략전쟁준비를 위한 조건을 마련하는것을 기본으로 내세운다.
베르사이유강화조약이 그러한 강화조약의 대표적실례이다.
1919년 6월 28일 프랑스 빠리교외의 베르사이유궁전에서 미국, 영국, 프랑스를 비롯한 련합국들과 전패국인 도이췰란드사이에 체결되였다.조약에 따라 도이췰란드는 적지 않은 지역을 여러 나라에 넘기였다.도이췰란드의 모든 식민지들은 렬강들에 의하여 분할되였다.
베르사이유강화조약은 도이췰란드에 막대한 전쟁배상금을 부과하는 한편 10만명이상의 군대를 가지지 못하며 땅크와 비행기는 물론 1 000t급이상의 함선조차 보유할수 없다는것을 규정하였다.세계인민들의 강력한 투쟁에 의하여 전쟁범죄자처벌을 위한 특별재판소의 설치 및 전쟁범죄와 관련한 일련의 조항들도 결정하였다.
그러나 제국주의자들의 비호책동에 의하여 전쟁범죄자들은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았다.도이췰란드에서 반동세력은 보존되였다.
미국은 도이췰란드에 막대한 차관을 주어 군국주의를 되살렸다.도이췰란드의 배상규모와 조건은 여러번 변경되고 나중에는 지불이 정지되였다.
1930년대에 들어와 나치스도이췰란드가 출현하고 히틀러는 대도이췰란드제국건설에 달라붙었다.징병제를 실시하여 36개 사단에 55만명의 상비군을 설치할데 대한 국방군편성법을 발표하였다.공군의 공식편성을 선언하였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자본주의렬강들은 히틀러정권에 불안을 느끼면서도 그의 반공정책에 공감하고 양보함으로써 도이췰란드를 공산주의를 말살하는데 리용하려 하였다.이에서 고무를 받은 파쑈도이췰란드는 1935년 3월 베르사이유강화조약의 군사조항을 페기하였다.그후 오스트리아, 체스꼬슬로벤스꼬를 강점하고 뽈스까를 침공함으로써 베르사이유강화조약을 완전히 짓밟았다.
본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