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가정의 가장 큰 재부
중구역 교구동 50인민반에서 살고있는 함경수로인의 애국적소행
얼마전 본사편집국에 한 작가가 편지를 보내왔다.그는 편지에 이렇게 썼다.
《지난해에 저는 소설을 창작하기 위해 온 나라에 널리 알려진 벽성군 옥정농장에 갔댔습니다.그곳에서 저는 한 애국자를 알게 되였습니다.사회주의농촌을 돕는데 깨끗한 량심과 지성을 바쳐가고있는 중구역 교구동 50인민반에서 살고있는 함경수로인입니다.》
알고보니 함경수로인은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나는 무엇을 바쳤는가라는 물음에 늘 자신을 비추어보면서 애국의 마음을 가다듬어야 합니다.》
함경수로인이 옥정리의 농사를 돕기 시작한것은 몇해전부터였다.새시대 농촌혁명강령의 덕택으로 방방곡곡의 농촌들이 천지개벽되는 모습을 신문과 TV화면으로 볼 때마다 그의 눈앞에 제일먼저 어려온것은 다름아닌 고향 옥정리였다.대학을 졸업하고 몇해동안의 로동생활을 거쳐 청년동맹일군, 당일군으로 성장하였으며 년로보장을 받기 전까지 중요기관에서 사업한 그가 고향을 떠난지도 어언 수십년이 되였다.그러나 순간도 고향을 잊고 산적없는 그였다.
우리 당이 울려준 농촌이 변하는 새시대의 종소리가 내 고향 옥정리도 두드리겠구나 하는 생각이 갈마들수록
하다면 농민영웅의 피줄을 이어받고 농촌에 태를 묻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는 서둘러 옥정농장에 전화를 걸었다.그리고 몹시 흥분된 목소리로 다우쳐물었다.
옥정농장을 위해 내가 도울것이 무엇인가? 아니, 내가 할 일이 무엇인가?
그로부터 얼마후 그는
그렇게 시작된 걸음은 계속 이어졌다.그 나날 그가 마련한 새 품종도입시험에서도 일정한 성과가 이룩되여 앞으로 농장의 알곡수확고를 높이는데 큰 도움을 줄수 있게 되였다.
사실 그는 여러해전에 뜻밖의 일로 몸을 심하게 다쳐 안해와 자식들의 부축이 없이는 먼길을 다니기 힘든 상태이다.무릇 사람이 머리에 흰서리가 내리면 고향생각이 제일 많이 난다고 하지만 함경수로인의 애국적소행은 비단 향토애 하나만 가지고 설명할수 있는것이 아니다.
그는 년로보장을 받기 전까지 중요기관 책임일군으로서 국력강화를 위하여 헌신적으로 사업하였다.
당과 국가의 크나큰 신임속에 직무는 높아지고 맡은 초소는 여러번 달라졌지만 그에게서 한가지만은 변하지 않았다.그것은 다름아닌 당에서 중시하고 나라에 필요한 일이라면 설사 그것이 자기가 맡은 분야의 일이 아니라고 하여도 스스로 자기가 걸머져야 할 본분으로 여기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기어이 해내는것이였다.
당에서 감자농사혁명방침을 제시하면 그 관철에 이바지할수 있는 일감을 찾았고 두벌농사를 중시하면 즉시 농촌에 달려나가 농업부문 일군들과 무릎을 마주하고 방도를 모색하였으며 온 나라의 수림화, 원림화를 실현할데 대한 문제가 강조되면 좋은 나무종자를 구해다가 퍼치기 위해 애쓴것을 비롯하여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가 조국을 위해 찾아한 일들을 꼽자면 끝이 없다.
혁명이 맡겨준 자기의 직분에 무한히 충실하면서도 나라를 위해 많은 일을 스스로 하는 나날에 그는 인생의 가장 큰 영광과 영예를 받아안았다.
영웅이란 남들보다 몇배 더 자기를 바치며 당과 조국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한 사람들이다.그런 공적만으로도 함경수로인은 당과 국가가 영웅들에게 베풀어주는 크나큰 혜택속에 여생을 편안히 보내도 되는 자격을 가진다고 말할수 있다.그러나 그는 영웅이라는 고귀한 칭호를 향유의 수단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는 출장길에서 심하게 다쳐 병상에 매인 몸이 된 상태에서 로력영웅칭호를 수여받았다.그때의 심정에 대하여 그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영웅이 되면 응당 영웅구실을 해야 할텐데 한창 일할수 있는 나이에 병상에 매이고 년로보장까지 받았으니 정말 괴로왔습니다.나를 영웅으로 내세워준 당과 조국의 사랑에 조금이나마 보답하려는 마음으로 농촌지원의 길에 나서기는 했지만 그것만으로야 어떻게 다 갚겠습니까.》
함경수로인의 한생은 어디서 무엇을 하든 조국을 위한 고심과 노력으로 이어진 참으로 충성스럽고 애국적인 삶이라고 말할수 있다.하다면 순간의 공백도 없고 말년에 이르러서도 변함이 없는 고결한 삶은 어디에 뿌리를 두고있는가.
그가 어렸을 때
《남을 위해 바치는것이 곧 자기를 위하는것이다.》
그때는 그 말뜻을 다 리해하지 못했다.그러나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에는 조국을 위해 피를 바치고 전후에는 영예군인의 몸으로 당의 뜻을 받들어 농사를 잘 짓고 상처입은 까치산에 푸른 숲 우거지게 하였으며 생의 말년에도 마을의 로당원들과 함께 거름을 생산하고 나무를 심고 가꾸며 고향을 위해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친
그들이 가르쳐준 고결한 인생관은 고향 까치산의 잣나무처럼 그의 가슴에 깊이 뿌리내렸고 그로 하여 그는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인생의 한구간한구간을 조국을 위한 헌신으로 이어올수 있었다.그 과정에 남보다 더 많은 짐을 지고 분투하는데서 긍지와 보람을 찾게 되고 혹 일감이 없으면 그처럼 안타까와하며 새로운 일감을 찾는것이 그의 생활로, 삶으로 되였던것이다.
그가 지금 제일 간절히 바라는것은 사랑하는 자식들이 영웅가정의 바통을 변함없이 이어가는것이다.하기에 그는 자식들에게 늘 이렇게 당부한다.
너희들의 할아버지나 내가 남보다 특별히 잘나서 영웅이 된것이 아니다.
이 땅의 어느 가정에나 어느 시대에 살았든, 무슨 일을 했든 조국의 부강번영을 위한 길에 자신을 바치며 한생을 깨끗하게 산 애국적인 전세대가 있다.문제는 그들이 지녔던 충성과 애국의 넋을 어떻게 이어가는가, 다시말하여 자기의 근본을 어떻게 잊지 않고 지키는가 하는것이다.
집에 정히 간수한 부모의 영웅메달, 훈장과 렬사증을 늘 바라보며 산다고 하여 근본을 지키는것이 아니다.당과 조국을 위해 바친 그들의 피와 땀을 잊지 않고 한생을 그들처럼 살기 위해 끝없이 노력할 때 인생의 자욱자욱이 애국으로 빛나는 법이다.
어제날 우리의 부모들이 그러했던것처럼 당의 믿음을 명줄처럼 간직하고 조국과 혁명을 위해 한생을 깡그리 바치며 새세대들도 그길에서 참되게 살도록 이끌어주는 함경수영웅과 같은 참된 공민들, 이런 충신, 애국자들이 우리 국가를 떠받드는 초석이고 주추이다.
글 본사기자 김송이
사진 본사기자 정철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