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심을 내리기 전에
청진시 청암구역당위원회 일군들의 체험에서
청진시 청암구역당위원회가 조직한 농업부문 지도일군들의 협의회는 몇시간째 계속되였다.
일부 일군들은 구역에서 알곡생산을 높이자면 결정적으로 습해를 받는 밭을 논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하였고 다른 사람들은 조건이 어려운것만큼 밭에 거름을 많이 내고 비배관리를 잘하면 정보당수확고를 높일수 있다고 하였다.두 주장에는 다 타당성이 있었다.
물론 구역당책임일군에게도 자기나름의 생각이 있었다.하지만 결심채택을 서두르지 않았다.그는 일군들에게 농장들에 내려가 농장원들과 담화를 하면서 합리적인 방도를 찾은 다음 협의회를 계속하자고 하였다.
《일군들은 언제나 인민들속에 깊이 들어가 그들과 허물없이 담화도 하면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료해하고 군중에게 의거하여 대책을 세워나가야 합니다.》
지난 시기 청암구역은 농사에서 도적으로 제일 뒤자리를 차지하였다.사람들은 그 원인을 불리한 자연지리적조건에서 찾았다.동해안북부지역의 수백리구간에 위치하고있는 구역은 찬바다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더우기 비물이 제대로 빠지지 않는 습지가 적지 않아 알곡을 정보당 2~3t만 내도 사람들은 안도의 숨을 쉬군 하였다.
몇해전 구역당책임비서로 사업을 시작한 리영철동무는 알곡증산을 위한 사업에 선차적인 관심을 돌리였다.농사와 관련한 협의회부터 조직한것도, 농장원들의 목소리에서 알곡증산의 지름길을 찾을데 대하여 강조한것도 그래서였다.
다음날 삼해농장으로 나간 그는 경리를 만났다.나이도 젊고 전개력도 강한 경리는 논풀이를 많이 해야 알곡생산구조를 바꿀수 있고 주저앉은 농장도 일으켜세울수 있다고 하였다.그러면서 당장 논을 풀자면 걸린 문제가 적지 않은데 그렇다고 한해두해 미룬다면 언제 가도 알곡생산을 늘일수 없다고 하였다.
구역당책임일군은 제2작업반 농장원 김동무와 년로보장을 받고있는 최로인도 만났다.그들은 지난 시기 논풀이공사가 탁상공론으로 된것은 그때 일군들이 군중의 힘을 믿지 못했기때문인것같다고 하였다.
그들의 평가는 정확했다.구역의 알곡생산이 추서지 못하고있는것은 일군들이 현실에 깊이 들어가지 않고 군중의 지혜와 열의를 발양시키기 위한 사업을 실속있게 하지 못한데 근원이 있었다.
며칠후 협의회는 다시 열리였다.분위기는 이전과 달랐다.거의 모든 참가자들이 밭을 논으로 전환시킬데 대한 방안을 지지하였다.농장원들과 무릎을 마주하고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 알곡증산의 혁신적인 방도를 찾고 자기들의 사업도 검토하면서 마음가짐을 새롭게 한것이 분명했다.
그날 협의회에서는 밭을 논으로 전환할데 대한 문제가 짧은 시간에 결정되였다.그렇다고 모든 일이 얼음에 박밀듯 된것이 아니였다.
논풀이공사계획을 세우는 사업이 진행될 때였다.일부 일군들은 여전히 사무실에서 맴돌면서 농장들에서 올라오는 자료를 종합하여 우에 보고하는 식으로 사업하였다.
무슨 일을 하나 결심하고 전개해도 품을 들이지 않고 적당히 하려는 그릇된 일본새가 되살아난것이였다.
낡은것이란 이렇게 집요한것이였다.이런 현상을 방임한다면 논풀이면적과 저류지공사, 물길공사 등 관개공사의 량은 물론 거기에 필요한 로력과 설비, 연유 등을 정확히 타산할수 없고 공사에 혼란을 조성할수 있었다.
구역당위원회에서는 해당 일군들이 농장들에 내려가 포전상태를 눈으로 확인하고 농장원들의 의견도 들으면서 공사계획을 과학적으로 현실성있게 세우도록 하였다.
논풀이공사에 필요한 설비를 어떻게 해결하겠는가 하는것은 일군들이 제일 고심한 문제들중의 하나였다.이 고리를 옳게 풀어야 대중의 사기도 높일수 있고 공사를 목적한대로 내밀수 있었던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 구역당일군은 사구농장에 나갔다.그는 농장초급일군들에게 물길공사와 논수평고루기작업을 어떻게 하려는가고 물었다.그러자 그들은 잠시 주밋주밋하더니 구역에 《풍년》호뜨락또르가 있으면 좀 보장해달라고 하였다.
구역당일군은 그달음으로 구역농업경영위원회 부위원장을 만났다.그런데 그에게서도 시원한 대답을 들을수 없었다.구역에 《풍년》호뜨락또르가 없었던것이다.
그들은 아래에 내려가 방도를 찾기로 마음먹고 직하리에 나갔다.그때 리당비서는 자기 농장에서는 《천리마》호뜨락또르를 리용하려 한다고, 그 뜨락또르에 뒤삽을 련결하면 작업능률이 《풍년》호뜨락또르보다 높지는 못하겠지만 논두렁짓기나 논수평고루기를 얼마든지 할수 있을것이라고 하였다.그러면서 그 묘안은 농장뜨락또르운전수들과 몇차례 토론하는 과정에 찾은것이라고 덧붙였다.
대중속에서 나온 방도는 구역의 당, 행정일군들이 공사와 관련한 결심을 책임적으로, 단호하게 내리도록 하는데서 큰 작용을 하였다.
그리하여 삼해, 사구, 부거, 직하 등 여러 농장에서 논풀이공사가 활기를 띠고 진행되게 되였다.결과 구역에서는 3년동안에 습해를 받던 180여정보의 밭을 논으로 전환하고 여러 대상의 관개공사를 병행하여 정보당수확고를 평균 2배이상 높였으며 해마다 알곡생산계획을 넘쳐 수행하게 되였다.
만약 구역당일군들이 현실속에 깊이 들어가지 않고 군중과의 담화를 소홀히 하였더라면 이와 같은 결실을 이루어내지 못했을것이다.
하기에 그들은 한결같이 말하고있다.일군들은 무슨 일이든지 결심을 내리기 전에 군중의 목소리부터 들어야 한다고.
본사기자 김승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