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에서 주는 혁명임무를 받아안을 때마다 참된 충신이 간직했던 투철한 신조를 항상 새겨보자
《…그에게는 애당초 〈내 능력에 맞는 일〉이 따로 있지 않았다.당이 맡겨주는 혁명임무이자 나에게 가장 알맞는 일이며 어떤것이든 타고난듯이 잘해내야 한다는 각오밖에 없었다.그래서 모르면 허심하게 배우고 열백밤을 패면서라도 자기의 능력과 수준을 높여나갔다.》
당이 맡겨주는 혁명임무이자 나에게 가장 알맞는 일이며 어떤것이든 타고난듯이 잘해내야 한다.
바로 이것이 당에서 맡겨준 혁명임무를 대하는 현철해동지의 투철한 관점, 한생의 신조였다.
《모든 일군들과 당원들과 근로자들은 당과 혁명, 조국과 인민앞에 지닌 숭고한 사명감을 깊이 자각하고
누구나 혁명임무수행에서 주인다운 자각을 간직하고 높은 책임성과 헌신성을 발휘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자주 외우군 한다.하지만 혁명임무수행에 필요한 전문가적인 자질이 없거나 부족한 경우에 그것을 갖추기 위해 노력을 하고 훌륭한 결실을 이룩할 때까지 완강하게 분투하는데서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
그 차이는 명백히 매 사람의 사상정신적준비정도의 차이이다.
아무리 생소한 분야이고 태여나서 처음 해보는 일이라고 해도 열심히 배우고 또 배워 당에서 맡겨준 혁명임무를 반드시 가장 완벽하게 수행하겠다는 사상적각오가 투철하면 시간을 쪼개가며 자기의 실무수준을 높일수 있고 성과를 거둘수 있다는것을 현철해동지의 고결한 삶이 증명해주고있다.
1960년대에 인민군대의 문화예술부문 사업을 맡게 된 현철해동지에게 있어서 예술활동과의 인연이라고 한다면 친위중대시절의 오락회와 류학시절 예술소조공연에 참가해본것이 전부였다.
부족되는 자질과 능력을 갖추기 위하여 현철해동지는 문학예술작품창작과 관련한
뿐만아니라 대덕산초소에 찾아가 근무도 서보고 창작가들과 함께 1211고지방어전투에 참가했던 체험자들도 만나 생동하고 격동적인 세부들을 찾아내여 원래 영화문학대본에는 없었던 장면도 보충함으로써
당에서 맡아보라고 한 일에 대하여서는 오늘 시작했다가 래일 그만두는한이 있어도 일생일대의 임무로 여기고 있는 지혜를 다 바쳐 최고로 잘해야 한다는 사상관점이 투철하였기에 현철해동지는 항상
어느한 군단에서 정치부장으로 사업할 때 군단안에 당의 혁명사상만을 공기처럼 꽉 채워놓기 위하여 그 누구보다도 고심을 많이 한 사람, 당에서 바라는대로 군단주둔지역을 철벽의 방어선으로 구축하기 위하여 제일 궂은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파도세찬 바다길에 서슴없이 오른 사람이 바로 현철해동지였다.
이사짐을 실으라고 군단에서 평양으로 보낸 차에 군인들의 정치사상교양에 절실히 필요한 새로 나온 예술영화 《유격대의 오형제》의 영화필림을 싣고 돌아온 현철해동지의 행동을 두고 군단장과 참모장이 아무래도 저 꼬챙이같은 정치부장의 이사짐은 자기들이 맡아줘야 할것같다고 했다는 이야기에도 혁명임무수행을 위함에 모든것을 지향시키는 그의 숭고한 정신세계가 비껴있다.
파도가 세차게 이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군인들과 한 약속이라고 하면서 새로 나온 영화필림을 싣고 바다길에 나선 그의 모습에서 섬초소의 군인들은 어떤 불리한 정황에서도 당이 맡겨준 혁명임무를 기어이 수행하기 위하여 애쓰는 참된 일군의 모습을 보았다.
당의 사상과 의도를 군인대중에게 깊이 침투시키기 위해 피타게 사색하고 노력하던 나날에 태여난 현철해식주문대장에 대한 이야기도 참으로 가슴뜨겁다.섬초소의 전사들이 다음번에 가져올 책과 악기, 훈련기재창안제작에 필요한 부속품들까지 적어놓도록 한 자그마한 주문대장을 통해서도 우리는 혁명임무수행에 대한 현철해동지의 주인다운 자각과 높은 책임감, 불같은 열정과 헌신성을 엿볼수 있다.
이런 높은 책임성을 지니고 자기 사업에 정통하고있은 그였기에 1970년 10월 서남전선 대련합부대를 찾아오신
수첩 하나 펴들었을뿐 한번 들여다보지도 않고 지휘관들의 사상정신상태와 구성, 군인들의 생활형편, 싸움준비완성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수자적으로 꼭꼭 찍어가며 솔직히 보고드리는 현철해동지의 모습에서 깊은 인상을 받아안으신
당에서 맡겨준 혁명임무수행에 대한 현철해동지의 투철한 사상관점과 주인다운 자각, 헌신적인 일본새는 직무가 계속 바뀌여도, 세월이 흐르고 환경이 달라져도 언제나 변함이 없었다.
언제 어디서나 혁명임무수행에서 경중을 가리지 않는것, 직무의 변동이나 높고낮음에 관계없이 충신의 자세를 절대로 흐트러뜨리지 않는것, 나이가 점점 많아져도 배움과 창조의 열의가 좀처럼 식을줄 모르고 혁명적열정을 더더욱 왕성하게 분출시키는것, 이것이 바로 당에서 맡겨준 혁명임무이자 자기에게 가장 알맞는 일로 여기고 한생토록 그 수행에 정력을 다 바쳐온 현철해동지특유의 사업습관이고 행동방식이였다.
굳이 학력을 론한다면 현철해동지는 선박공학을 전공한 사람이였다.그러나 총정치국에서 문화예술부문 사업과 간부사업, 당조직사업을 맡아보았다.그는 오래동안 쌓아온 지식과 경험이 풍만한 결실로 맺어지는 40대나이에조차 초년생으로서 교육사업과 후방사업이라는 새로운 세계에 몸을 잠그었다.
현철해동지는 매번 직무가 바뀌울 때마다 새 학교를 다니는 심정에서 자기를 채찍질하군 하였다.
현철해동지에게 있어서 당이 맡겨준 혁명임무는 그 어느것이나 곧
1976년 6월부터 1990년 8월까지 열네해동안 인민군대의 후방일군들을 키워내는 교장사업을 할 때 어찌 보면 군단정치부장을 할 때보다 낮은 자리에 옮겨앉았다고 할수 있었지만 현철해동지는 당이 준 혁명임무의 중요성을 깊이 절감하고 보다 더 적극적으로, 헌신적으로 사업하였다.
일부 교수내용들이 현실의 요구에 뒤떨어진것을 두고 가슴아파하며 다른 사람들에게는 부업이 말그대로 부업이지만 우리 학교에서는 필수적인 주업이라고 하면서 당장 부업과목을 새로 내오지는 못하더라도 실습시간으로 많이 배당하고 점수평가에서도 고려하자는 의견을 제기할 때까지 현철해교장이 얼마나 많은 교수제강들을 검토하며 진지한 사색과 탐구의 낮과 밤을 보냈는가를 다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전군의 후방사업의 여부가 이 교정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여기는 일군, 특강에 한번 출연해도 틈없이 째인 론리에 적절하고 생동한 실례들을 안받침하여 학생들스스로가 교정에서의 하루하루에 어떤 목적을 세우고 어떤 뜻을 재워야 하는가 하는 물음앞에 자기를 세워보게 하는 일군이 바로 그였다.
사흘이 멀다하게 도서실에 새책을 요구하고 어떤 때에는 사서가 평양에 있는 친척에게 부탁하여 소포로 책을 부쳐오게까지 하였어도 그의 향학열, 독학열을 도저히 충족시킬수 없었다.
이런 그가 1980년대중엽 먹는기름생산과 관련한 전국적인 보여주기사업에 출연하여 각종 공정들에 대하여 구수하고 조리있게 설명할 때 뭇사람들은 그를 식료가공전문가로 착각하기까지 하였었다.
따로 정해진 전공이 없는 일군, 당의 요구, 당정책을 관철하기 위한데 필요한것이라면 전문가가 되여야 한다는것을 혁명실천과정으로 증명한 일군이 후날 후방총국장의 중임을 지녔던 현철해동지였다.
당에서 주는 혁명임무를 받아안을 때마다 현철해동지가 간직했던 투철한 신조를, 그가 걸음걸음 찍어온 뚜렷한 자욱들을 되새겨보며 누구나 자기의 량심에 손을 얹고 물어보아야 한다.
나는 지금 당에서 맡겨준 혁명임무를 나에게 가장 알맞는 일로 여기고있는가.그렇게 할 대신 조건타발, 능력타발, 지식타발을 하면서 쉬워보이는 다른 일터를 넘겨다본적은 없었는가.허심하게 배우고 피타게 실천하면서 부족되는 자질과 능력을 전문가수준으로 끌어올리려고 아글타글 애쓰고있는가.
누구나 현철해동지의 고결한 삶을 거울로 삼고 자기 맡은 일터에서 혁명임무에 대한 주인다운 자각과 책임감을 높이 발휘해나갈 때 당정책관철을 위한 오늘의 투쟁에서는 더 큰 승리가 이룩될것이다.
본사기자 백성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