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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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19일 일요일 6면

세대가 바뀌고 혁명이 전진할수록 더욱 투철한 반제계급의식을 지니자

9개의 조선인민군입대증이 전하는 사연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수 없는것처럼 반제반미교양, 계급교양을 떠나서 우리 인민의 자주적삶과 인간의 존엄과 가치에 대하여, 혁명의 승리, 사회주의의 승리에 대하여 생각할수 없습니다.》

항구구역 후포동에 살고있는 리영애녀성의 가정에는 9개의 조선인민군입대증이 소중한 가보로 간직되여있다.

이 입대증들은 2개의 렬사증과 나란히 그의 집벽면에 걸려있다.

사람들이 그에 대해 물을 때면 리영애녀성은 이런 사연을 들려주군 한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의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인 1950년 가을 곡산군의 어느한 마을의 세포위원장이였던 리영애녀성의 아버지는 전선원호물자들과 식량을 안전한 곳에 묻어두느라 늦게야 후퇴의 길에 올랐다가 원쑤놈들에게 체포되게 되였다.

놈들은 그가 저들의 말에 순응하지 않는다고 하여 끌고가던 도중 악착하게 학살하였다.

그때 2살밖에 안되였던 리영애녀성도 어머니의 등에 업혀 언니와 함께 놈들에게 잡혀있었다.

놈들은 리영애녀성의 어머니에게도 달려들어 갖은 악행을 다하였다.

그후 그들은 인민군대의 재진격에 의해 구사일생으로 살아날수 있었다.

조국해방전쟁이 우리의 승리로 끝났지만 리영애녀성의 어머니는 행복한 생활을 얼마 누려보지 못하고 놈들에게 당한 악행의 어혈로 인차 세상을 떠나고말았다.

고아가 된 그의 자매는 나라의 은덕속에 자랐다.

리영애녀성은 자라면서 마을사람들과 언니, 선생님으로부터 자기에게서 아버지와 어머니를 빼앗아간 원쑤놈들의 만행에 대한 이야기를 골수에 사무치게 새기였고 대를 이어 복수의 길을 걸을 굳은 맹세를 다지였다.

리영애녀성은 아버지의 사진조차 보지 못하고 자랐다.원쑤놈들이 사진까지 모조리 불태워버렸던것이다.

하지만 그는 최후의 순간에도 김일성장군 만세!》를 소리높이 웨치며 후대들에게 천백배의 복수를 부탁하였을 아버지의 모습을 눈이 아니라 뇌리에, 가슴속에 똑똑히 새기였다.

나라에서는 신념을 지켜 마지막순간까지 원쑤놈들과 용감히 싸운 리영애녀성의 아버지를 애국렬사로 내세워주었다.

아버지의 애국의 넋을 안고 자란 리영애녀성은 후날 인민군군관과 가정을 이루었다.

그의 남편의 가슴속에도 한생 군복을 입고 원쑤를 천백배로 갚을 결심이 꽉 차있었다.

그의 아버지 김정렬동지도 지난 조국해방전쟁의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 원쑤놈들에게 야수적으로 살해되였던것이다.

가정을 이루었을 때 남편은 리영애녀성에게 애국렬사인 자기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원쑤놈들은 김정렬동지를 체포하게 되자 진짜《빨갱이》를 잡았다고 쾌재를 올리며 비밀을 대라고 온갖 악착한 고문을 다 들이댔다.

하지만 그에게서 한마디도 들을수 없게 된 원쑤놈들은 김정렬동지를 창고에 가두어놓고 며칠동안 물 한모금 주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김정렬동지를 끌어낸 놈들은 그가 공화국을 위해 충실히 일하였다고 하면서 악에 받쳐 수십발의 총탄을 퍼부었고 총창으로 찔러 무참히 학살하였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성장한 남편의 형제들은 군복을 입고 조국보위의 길에 나섰다.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며 남편은 해방후 위대한 수령님의 은덕으로 땅을 분여받고 마음껏 농사를 지어 많은 애국미를 나라에 선참으로 바치였고 전쟁승리를 위해 모든것을 다했던 아버지가 과연 마지막순간에 자손들에게 무엇을 절절히 당부하였겠는가, 아마도 한시도 원쑤를 잊지 말고 대를 이어 천백배로 복수하라고 그리고 조국을 굳건히 지키라고 피절은 웨침을 남기였을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안해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자식들을 많이 낳아 복수자들로 키워 대를 이어 혁명의 총대를 잡게 하자.

그후 그의 가정에는 끌끌한 네남매가 태여났고 그들은 모두 부모의 뜻대로 조국보위초소에서 청춘시절을 자랑스럽게 빛내이였다.

오늘도 맏아들인 김명철동무는 혁명의 군복을 입고 계급투쟁의 전초선에 굳건히 서있다.

지난해 사회안전원이였던 맏사위가 임무수행중 뜻밖에 희생되였을 때에도 리영애녀성은 자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사회주의제도를 굳건히 지키는 길에서 마친 생은 떳떳하고 자랑스러운것이라고.

그는 손자, 손녀들이 군복을 입고 조국보위초소로 떠날 때마다 2개의 렬사증에 어린 사연을 다시금 들려주군 하였다.

이렇게 되여 그의 가정에는 9개의 조선인민군입대증이 생겨나게 되였다.

리영애녀성은 자식들과 손자들을 대를 이어 조국보위초소에 세우는것만으로 자기의 본분을 다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여 오래전부터 원군길을 걸었고 나라를 위한 좋은 일도 적극 찾아하였다.…

리영애녀성은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며 자손들이 행복에 도취되여 피절은 원한을 순간이라도 잊고 살가봐 2개의 렬사증곁에 조선인민군입대증들과 군복입은 사진들을 나란히 걸어놓았다고, 조국보위는 자기 집안의 가풍이라고 절절히 말하고있다.

그의 가정의 사연깊은 2개의 렬사증과 9개의 조선인민군입대증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가르치고있다.

오직 피는 피로써 결산하여야 하며 세대와 세대를 이어 계급의 총대, 혁명의 총대를 더욱 억세게 틀어잡는 여기에 우리의 삶과 행복을 지키는 길이 있다고.

본사기자 유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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