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 발전을 담보하는 큰일을 해제꼈다
새로운 세멘트생산능력조성사업에서 성과를 거둔 황해북도안의 여러 단위 일군들과 로동계급
지난 1월 황해북도에서 경암세멘트공장에 10여만t의 세멘트생산능력을 더 확장하기 위한 공사를 성과적으로 결속하였다.
결과 지방의 원료원천으로 질높은 세멘트를 더 많이 생산하여 도의 경제발전과 인민생활향상을 위한 건설사업을 보다 활력있게 내밀수 있는 확고한 전망이 열리게 되였다.
《당의 부름이라면 한마음한뜻으로 떨쳐일어나 산도 옮기고 바다도 메우는 기적을 끊임없이 창조해나가는것은 우리 인민의 투쟁전통이며 기질입니다.》
두해전 도에서는 자체의 세멘트생산능력을 높이기 위한 문제가 진지하게 토의되였다.
여기서 관건은 경암세멘트공장의 생산능력확장공사를 대담하게 전개하는것이였다.
하지만 당시 도에는 리계순사리원사범대학건설을 비롯한 많은 대상공사가 벌어지고있는것으로 하여 시공력량이 긴장하였다.
결국 협의회의 초점은 자연히 시공력량문제, 로력보장문제에로 집중되였다.
그때 이 공사를 자기 단위에 맡겨줄것을 제기해나서는 일군이 있었다.
도무역관리국의 책임일군이였다.
협의회에 참가한 사람들이 놀라움을 표시하였다.
물론 관리국이 전투력있는 집단으로 온 도에 소문이 났지만 여러 대상공사를 진행하고있는중이여서 이렇듯 방대한 공사과제를 감당해낼수 있겠는가 하는 우려심도 없지 않았던것이다.그러나 그의 결심은 확고하였다.
도의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일감을, 그것도 제일 방대한 일감을 맡았다는것을 알면 우리 관리국의 일군들과 종업원들이 한결같이 떨쳐나설것이며 그 힘이면 못해낼 일이 없다는것이 그의 배심이였다.
도의 책임일군들도 이 제의를 적극 지지해주었다.그리고 건설장비와 자재들을 우선적으로 보장해주기 위한 대책을 세우는 한편 공사를 힘있게 떠밀어줄수 있게 일군들의 임무분담도 명백히 하였다.
이렇게 되여 두해전 11월말 세멘트생산능력을 확장하기 위한 공사는 첫걸음을 내디디게 되였다.
건설에 동원된 평산화강석광산을 비롯한 10여개 단위 일군들과 로동계급은 공사를 짧은 기간에 끝낼것을 궐기해나섰다.
물론 공사기일문제를 놓고 신심이 없어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았다.
그것은 이전에 세멘트생산공정을 일떠세우는데만도 1년반이라는 시일이 걸렸는데 그보다 능력이 근 2배에 달하는 회전로에 의한 세멘트생산공정을 한해동안에 과연 확립할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비상한 자각이 이들로 하여금 그러한 우려와 주저를 단호히 털어버리게 했다.
당에서는 모든것이 부족한 속에서도 우리 인민들의 세기적숙망을 하루빨리 실현해주기 위해 새로운 지방발전정책을 제시하고 지방이 변하는 새시대를 펼쳐주지 않았는가.년초에 착공식이 진행되면 년말에는 어김없이 준공식이 거행되는 시대의 벅찬 흐름에 우리도 따라서야 한다.
관리국책임일군의 호소가 모두를 다시금 각성시키였다.
결코 로력과 시간문제인가.
이 물음앞에 누구나 자신들을 세워보았다.
조건상의 문제이기 전에 지방의 세기적변혁을 하루빨리 안아오려는 당의 숭고한 뜻을 받드는 길에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치려는 각오가 부족한데 있었다.
《어떻게?》가 아니라 《무조건!》, 《끝까지!》만이 필요한 길이였다.
이렇게 되여 경암새제품개발설계연구소 소장을 책임자로 하는 설계력량이 무어지고 설계가 진행되는데 맞게 공사를 동시에 진행하기 위한 작전이 토의되였다.
리현남동무를 비롯한 책임성높은 일군들에게 현장지휘를 맡기고 경암광물가공공장의 제관작업반과 가공작업반에서 설계가 완성되면 즉시에 설비제작에 진입하도록 하는것을 비롯하여 구체적인 조직사업을 진행하였다.
관리국에서는 부족되는 시공력량문제도 방법론있게 풀어나갔다.
아래단위에 인원을 내라고 하면 다른 사업들에 지장을 줄수 있었다.
관리국초급당위원회에서 이 문제를 맡아나섰다.
당조직들과 근로단체조직들이 발동된 가운데 종업원들속에 공사의 중요성을 인식시키기 위한 정치사업이 활발히 벌어졌다.
하여 아래단위 일군들과 로동자들속에서는 세멘트생산능력확장공사에 참가할것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해당 단위의 종업원들은 두배, 세배로 일할것을 결의해나섰다.
이런 나날속에 능력확장공사는 더욱 고조되게 되였다.
앞장에는 설계를 맡은 기술자들이 섰다.
그들은 불과 몇명밖에 안되였지만 공사를 일정대로 진척시키기 위해 낮과 밤을 잊고 분투하였다.처음 해보는 설계여서 제기되는 기술적문제들도 적지 않았지만 이들은 앞선 단위들의 경험도 참고하면서 자체의 실정에 맞게 설계를 완성해나갔다.
밤새 도면을 완성하여 모의를 해보는 과정에 부족점을 찾고 다시 설계를 해야 했던 나날은 그 얼마였고 몰려오는 졸음을 쫓으며 밤을 지샌적은 그 얼마였던가.
비단 설계를 맡은 성원들만이 아니였다.
설비제작을 맡은 경암광물가공공장과 사리원전자기구공장, 사리원수지마대공장을 비롯한 여러 단위의 종업원들도 구조물기초공사와 건축공사현장 등에서 새로운 혁신창조의 불길을 세차게 지펴올리였다.
이들의 투쟁을 적극 떠밀어준것은 도당책임일군들이였다.그들은 현장에 자주 나와 공사진척정형을 알아보고 걸린 문제도 제때에 풀어주었을뿐 아니라 당결정관철을 위해 분투하는 건설자들을 위한 후방공급정형을 정상적으로 알아보고 즉시적인 대책을 세워주면서 힘과 용기를 북돋아주었다.이렇듯 자기들과 한전호에 선 심정으로 공사를 제 날자에 결속하기 위해 노력하는 도일군들의 모습에서 건설자들은 오늘의 투쟁의 전구에서 자기들이 맡은 임무의 중요성을 더욱 가다듬으며 공사를 박력있게 밀고나갔다.
그러던 지난해 5월 이들은 뜻밖의 난관에 부닥치게 되였다.
자체로 제작한 회전로의 육중한 동체를 들어올려 구조물에 앉힐수 있을만큼 능력이 큰 기중기차가 없었던것이다.회전로동체 한토막의 중량만 해도 40여t, 하지만 이들에게 있는 건설장비는 10여t급기중기차 한대와 유압식적재기, 굴착기가 전부였다.다른 단위에서 필요한 기중기차를 빌려올 생각도 해보았지만 거기에 얼마만한 시일이 걸릴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객관적조건만을 따진다면 공사를 제기일에 보장할수 없는 상황이였다.
바로 그때 관리국책임일군이 자를 들고나섰다.
그는 로동체의 길이를 재여도 보고 매 건설장비들의 능력도 타산해보며 신통한 방도를 내놓았다.
10여t급기중기차와 유압식적재기, 굴착기들에 쇠바줄을 걸고 회전로동체를 동시에 천천히 들어올리자는것이였다.
물론 위험성도 없지 않았다.아차 실수하면 지금까지의 모든것이 헛공사로 될수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대담하게 그길에 뛰여들었다.
결국 손에 땀을 쥐게 하는 18시간동안의 작업끝에 회전로동체를 설치하고야말았다.
이처럼 공사에 동원된 일군들과 근로자들은 없는것은 만들어내고 부족한것은 찾아내면서 자체의 세멘트생산능력을 확장하기 위한 투쟁을 줄기차게 내밀었다.
그 나날 이들이 그린 설계도면은 근 1만매, 자체로 제작한 설비, 부분품만 해도 70여종에 수천개에 달한다.또 수천㎡의 부지를 정리하고 기초를 파며 수많은 구조물을 일떠세웠다.
사실 자체로 건축공사와 설비조립 등 방대한 공사를 짧은 기간에 한다는것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하지만 이들은 끝끝내 자기들의 손으로 지역발전을 강력히 떠밀수 있는 창조물을 보란듯이 일떠세우고야말았다.
우리는 여기에 백철훈, 최형일, 신현철동무들이 자진하여 구조물조립을 위해 아찔한 허공에서 교대없이 용접작업을 벌려나간것을 비롯하여 공사과정에 있었던 가지가지의 투쟁이야기를 다 전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이들의 투쟁과정은 당정책관철을 위함이라면 아무리 어려운 일도 자기자신의 일로 여기고 주저없이 떠맡아나서는 혁명적자각과 완강한 개척정신만 있으면 뚫지 못할 난관, 점령 못할 목표가 없다는것을 다시금 새겨주고있다.
바로 이런 정신과 투쟁기풍으로 이들은 지난 5년간 경암타일공장과 경암목재가공공장, 은파주름판지공장, 기능회복원, 물놀이장을 비롯하여 도의 경제발전과 인민들의 문화생활향상에 이바지하는 창조물들에 혁신의 자욱을 새기였다.그리고 지금은 또다시 도의 전력문제를 푸는데 이바지할 일념 안고 초행길이나 다름없는 발전소건설에 진입하여 애국의 땀방울을 바쳐가고있다.
본사기자 리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