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이 값높은 칭호로 내세워준 사람들
로력영웅 공훈광부 안정민동무
검덕광업련합기업소 금골광산 승리갱 소대장 안정민동무에게는 30여년간 품고 사는 소중한것이 있다.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하늘같은 믿음과 기대에 광물증산성과로 보답하기 위해 그는 오랜 세월 누가 보지 않는 막장길에 깨끗한 량심을 바쳐왔다.
나라가 어려움을 겪던 시기 그는 자기가 지켜선 막장을 애국의 전호로 여기고 소대원들과 함께 한t의 광물이라도 더 생산하기 위해 아글타글 노력하였다.
광물증산을 위해 광부가 있다는 신조를 지녔기에 그는 굳은 암질때문에 채광하기 힘든 구간이 나타나면 남먼저 어깨를 들이밀었고 착암기부속품이 미처 보장되지 못할 때면 밤길을 앞장서 걷기도 하였다.애써 마련해놓았던 채광장을 뒤떨어진 소대에 양보한적이 한두번이 아니였고 그러면서도 해마다 맡겨진 계획만은 어김없이 넘쳐 수행하도록 소대원들을 이끌었다.
당에서는 늘 조국의 무거운 짐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 고생을 락으로 여기며 막장길에 모든것을 다 바쳐가는 그를 온 나라가 알도록 로력영웅으로, 사회주의애국공로자로 영광의 단상에 내세워주었다.
뿐만아니라 2013년에 공훈광부의 값높은 칭호도 안겨주었다.
이제는 점차 나이가 들면서 막장일이 힘에 부칠 때면 그는 두해전 가을
애국은 말로써가 아니라 실천행동으로 표현되여야 한다는 인생관을 지니고 그는 지금도 년로한 몸이지만 수천척지하막장에 보답의 뚜렷한 자욱을 새겨가며 소대원들을 증산투쟁에로 힘있게 불러일으키고있다.
본사기자 안정철
공훈사적강사 박춘화동무
룡포혁명사적관 관장 박춘화동무는 법동군의 외진 산골에서 40여년세월
대학을 졸업하고 어느한 혁명사적관 강사로 사업하던 그가 20대 꽃나이시절에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룡포혁명사적관의 강사가 된것은 조국의 운명을 지켜 산골막바지에까지 거룩한 발자취를 아로새기신
그 나날 그는 수십명의 부모없는 아이들을 맡아키워 조국보위초소와 혁명사적부문에 내세웠다.그가 자기 일터를 얼마나 귀중히 여겼는가 하는것은 군사복무를 마치고 대학을 졸업한 딸을 룡포혁명사적관 강사로 내세운것만 놓고서도 잘 알수 있다.
당에서 그토록 중시하는 혁명사적사업에 청춘의 희망도, 가정의 행복도 다 바쳐온 그에게 2002년 4월 공훈사적강사칭호가 수여되였다.
오늘도 그는
본사기자 정영철
공훈교원 리현동무
중앙교수강습소 소장 리현동무는 수십년간 후대교육사업에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쳐가고있는 사회주의애국공로자이다.
어느한 연구소에서 연구사로 사업하던 그가 중학생들을 가르치는 교단에 선것은 30여년전이다.그때 그는 연구사업만 하던 자기가 꽤 학생들을 가르칠수 있겠는가 하는 위구심도 없지 않았다.하지만 후대들을 당에서 바라는대로 훌륭히 키우겠다는 각오를 가지고 그는 직업적혁명가로서의 첫발을 내짚었다.
지칠줄 모르는 열정을 지니고 그는 학생들의 수준과 심리적특성에 맞는 앞선 교수방법들을 탐구하기 위해 혼심을 쏟아부었다.학생들을 다방면적으로 준비된 쓸모있는 인재로 키우는것은 전적으로 교육자에게 달려있다는 자각을 안고 시간을 쪼개가며 수십개의 학과목에 정통하기 위해 아글타글 노력하는 과정에 그는 100여명의 학생들을 7.15최우등상수상자로 키워냈고 선진적인 교수방법이 구현된 우리 식의 본보기수업을 수많이 창조하여 전국에 일반화함으로써 10월8일모범교수자대렬에 들어섰다.
그후 당의 크나큰 신임에 의해 부교장, 교장을 거쳐 중앙교수강습소 소장으로 사업하면서 그는 초등 및 중등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성실하고 진지한 노력을 기울이였다.
당과 국가에서는 이러한 그를 당 제8차대회와 제14차 전국교원대회를 비롯한 여러 대회에 불러주었고 2024년 2월에는 공훈교원의 값높은 영예를 안겨주었다.
두해전 그는 피해지역의 어린이들과 학생들이 학업을 계속할수 있도록 은정어린 조치를 취해준 당의 숭고한 뜻을 높이 받들고 백수십일간 이동교육대를 책임지고 앞장에서 이끌어 우리 당의 교육정책의 정당성을 현실로 증명하고 당에 커다란 기쁨을 드리였다.
그는 오늘도 당에서 그토록 믿고 내세워주는 직업적혁명가라는 남다른 영예와 긍지감을 안고 당이 맡겨준 혁명초소를 지켜가는 길에 깨끗한 량심을 바쳐가고있다.
본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