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동신문
2026년 5월 3일 일요일 5면 [사진있음]
주체문학예술사에 뚜렷한 자욱을 남긴 문예인들
혁명시인 조기천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조기천은 언제나 시대의 가장 본질적인 사상정서를 노래한 혁명시인이였습니다.》
주체문학예술사에 특출한 자리를 차지하는 장편서사시 《백두산》이 창작된 때로부터 근 80년이 되여온다.
장편서사시 《백두산》은 오늘도 우리 인민들과 청소년들속에서 사랑을 받고있다.그것은 이 작품이 위대한 수령님의 불멸의 혁명업적을 대서사시적화폭에 담아 숭엄하면서도 장중하게 구사한 우리 나라의 첫 장편서사시이기때문이다.
장편서사시 《백두산》과 더불어 조국과 인민의 기억속에 영생하고있는 혁명시인이 바로 조기천선생이다.
그의 창작생활은 길지 않다.그러나 그의 창작생활은 탁월한 수령의 품속에서 작가의 삶과 창작적개성이 꽃펴나고 시대의 기념비적걸작이 태여난다는것을 깊이 새겨주고있다.
조기천선생은 1913년 함경북도 회령군(당시)에서 출생하였다.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긴탓에 살길을 찾아 부모를 따라 이국으로 떠난 그는 그곳에서도 조국에 대해 잊지 않았고 항일의 전설적영웅 김일성장군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조국해방을 굳게 믿었다.
뜨거운 조국애를 안고 살아온 그는 나라가 해방되자 조국으로 귀국하여 창작활동을 벌렸다.그때 그의 가슴속에 열렬히 끓어번진것은 항일무장투쟁에 대한 서사시를 창작하는것이였다.
1946년에 그는 꿈결에도 뵙고싶던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뵈옵는 무상의 영광을 받아안게 되였다.이날 수령님께서는 그의 간곡한 요청을 받아주시여 오랜 시간 항일혁명투쟁시기에 있었던 가지가지의 이야기들을 들려주시였다.
조기천선생은 커다란 창작적흥분과 열정에 휩싸이게 되였다.그는 위대한 수령님의 불멸의 혁명업적과 고매한 풍모를 장편서사시 《백두산》에 담기 위하여 길도 제대로 나지 않은 천고의 밀림을 헤치고 백두산에 올라 시상을 무르익혔으며 시어를 한자한자 골라 서사시를 엮어나갔다.
해방된 조국에서 수령에 대한 열화같은 신뢰심을 안고 창작한 장편서사시를 그는 위대한 수령님께 직접 랑송해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위인상을 온넋으로 절감한 그는 수령님의 건국로선이 구현되는 벅찬 현실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를 격조높이 구가하는 시대의 나팔수가 되였다.
《땅의 노래》를 비롯한 그의 시들에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건국로선에 대한 견결한 옹호정신과 우리 인민이 받아안은 참된 삶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세차게 맥박치고있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에 그는 종군작가로 인민군군인들과 함께 최전선에까지 나갔다.그때에 보고 듣고 느낀 강렬한 체험에 기초하여 그는 조국수호정신이 맥박치는 시작품들을 창작하였다.
조선의 창작가라면 마땅히 수령의 사상과 뜻으로 살아야 하며 조국을 위한 투쟁의 앞장에 서야 한다는것이 그의 신념이고 의지였다.
수령의 사상과 뜻을 충성다해 받들어온 그였기에 해방직후에 위대한 수령님의 불멸의 업적을 형상한 장편서사시 《백두산》과 같은 혁명적인 시작품들을 훌륭히 창작할수 있었다.
주체문학예술사에 쌓은 조기천선생의 공적은 장편서사시 《백두산》과 더불어 영원히 빛나고있다.
본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