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진 산중초소에서 수십년
자강도체신관리국의 중계공들
《보석이 땅속에 묻혀있어도 빛을 잃지 않는것처럼 애국의 마음은 그것이 비록 크지 않아도 귀중한것이며 언제나 아름다운것입니다.》
얼마전 자강도체신관리국을 찾았던 우리는 수십년을 하루와 같이 외진 산중의 TV중계소를 지켜가는 사람들에 대해 알게 되였다.그들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 시대 인간들이 걸어가는 헌신의 길, 량심의 길에 대해 다시금 새겨안게 하였다.
지금으로부터 30여년전 산중의 TV중계소로 20대의 청년이 들어섰다.류영철동무였다.체신부문의 어느한 학교를 졸업한 그는 체신관리국에서 일하게 되여있었다.하지만 TV중계소에 중계공이 부족하여 애로를 느끼고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결심을 달리하였다.결코 의무감때문만이 아니였다.비록 심심산골 그 누가 보지 않는 곳이지만 우리 당의 목소리를 전하는 중요한 초소라는 자각이 그를 TV중계소로 이끌었던것이다.
당조직에서는 그의 결심을 적극 지지해주었다.이렇게 되여 들리는것은 바람소리, 새소리뿐인 인적없고 한적한 산중의 중계초소에 류영철동무가 서게 되였다.그와 함께 일하게 된 중계공 김명철동무의 마음도 같았다.
그때부터 오늘까지 30여년간 그들은 어려운것이 없지 않았지만 자기의 일터를 우리 당이 맡겨준 사상진지의 한 구간, 누구도 대신할수 없는 애국의 전호로 여기고 헌신의 자욱을 묵묵히 새겨갔다.중계기의 원리를 손금보듯 파악하며 그 어떤 정황속에서도 TV중계를 원만히 보장하기 위해 애썼다.험한 산비탈길을 오르내리며 선로들에 대한 순회점검을 정상적으로 진행하였으며 바람이 세차게 불고 눈이 많이 내리는 날이면 하루에도 몇번이나 산판을 오르내리였다.
떠가던 구름도 쉬여간다는 산중의 중계초소에는 장마철이면 벼락이 무섭게 치군 했다.언제인가는 벼락에 의하여 중계기가 고장난적도 있었다.그때 류영철, 김명철동무들은 심한 고열로 앓고있었다.하지만 그들은 하루밤을 꼬박 밝히며 끝끝내 중계기를 수리해놓고야말았다.TV앞에 마주앉아 끊임없이 비약하는 조국의 변천상을 보며 기뻐하는 인민들의 모습을 그려보는것이 그들의 제일 큰 보람이고 락이였다.
어쩌다 집에 내려가면 그들은 의례히 마을사람들에게 TV화면의 질이 어떤가고, 잘 나오는가고 물었다.그때마다 동네사람들은 잘 나온다고, 정말 고맙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어느덧 세월은 흘러 그들의 머리에도 흰서리가 내리기 시작했다.하지만 일터에 대한 애착은 수십년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당이 부르는 곳에 삶의 닻을 내리고 성실한 애국의 땀방울을 아낌없이 바쳐가는 류영철, 김명철동무들, 이런 훌륭한 인간들이 새겨가는 헌신의 자욱들이 고임돌이 되여 조국을 굳건히 떠받들고있는것이다.
특파기자 고철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