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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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5월 17일 일요일 3면

현장지도의 참의미를 깨닫기까지

태산탄광 초급당일군의 체험중에서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일군들은 늘 들끓는 현실에 침투하여 모든것을 직접 자기 눈으로 보고 실태를 전면적으로 분석해야 하며 군중속에 깊이 들어가 그들과 같이 살면서 그들을 발동하여 제기되는 문제를 풀어나가야 합니다.》

얼마전 우리가 태산탄광을 찾았을 때였다.초급당비서 김철송동무는 콘베아를 비롯한 설비들의 리용률을 높이던 나날의 체험담을 들려주었다.그것은 현장침투의 참의미를 새기던 교훈적인 이야기였다.

* *

전화종소리가 다급하게 울리였다.초급당비서는 송수화기를 들었다.태산갱에서 콘베아의 사슬련결고리들이 끊어져 생산에서 지장을 받고있는데 부속품이 부족하다는 지령원 홍동무의 목소리가 전류를 타고 들려왔다.

(콘베아가 또 애를 먹인단 말이지.빨리 공무에 나가보아야겠군.)

작업복을 갈아입고 사무실을 나선 초급당비서는 공무중대로 종종걸음을 놓았다.

그의 머리속에는 한달전에 있었던 일이 더듬어졌다.

그날 그가 련합기업소에서 조직한 회의에 참가하고 탄광으로 돌아왔을 때는 저녁무렵이였다.마침 태산갱에서는 일생산총화가 진행되고있었다.초급당비서는 서둘러 그 모임에 참가하였다.

모임에서 갱기사장 박동무는 그날 로력과 설비의 가동정형을 이야기하면서 콘베아상태가 좋지 못하여 몇시간동안 생산을 제대로 하지 못한 문제를 제기하였다.그러면서 콘베아운전공들이 경험주의, 요령주의를 부리면서 자검자수를 책임적으로 하지 않은데 그 원인이 있다고 하였다.

모임에서 초급당비서는 콘베아운전공들의 기술기능수준을 높일데 대한 문제, 순회점검과 업간점검을 책임적으로 하여 불량개소들을 제때에 발견하고 대책을 세울데 대한 문제 등을 강조하였다.

모임이 끝난 후 해당 일군들의 협의회에서 그는 설비리용률을 높이기 위한 여러가지 분공조직사업을 하였다.초급당위원들이 설비운전공들을 한명씩 맡아 교양사업을 방법론있게 하는 한편 설비점검검열위원회 성원들이 매일 자기가 담당한 단위들에 나가 설비들의 상태를 검열하고 편향들을 제때에 바로잡도록 하였다.

(이쯤하면 콘베아때문에 속을 썩이는 일이 없겠군.)

초급당비서의 마음은 한결 개운해졌다.

그런데 이번에는 예비부속품을 넉넉히 마련하지 못하여 콘베아의 리용률을 높일수 없게 되였으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수 없었다.

공무중대의 작업현장에서 중대장을 만난 초급당비서는 부속품생산이 늦어지는 원인을 물었다.그러자 중대장은 부속품소재가 제때에 보장되지 못하였기때문이라고 하였다.그러면서 최단시간안에 콘베아부속품을 생산하여 막장에 보내주겠다고 하였다.

사실 공무중대는 탄광의 병기창이라고 할수 있다.전동기와 감속기, 콘베아를 비롯한 설비들의 리용률을 높여 더 많은 석탄을 생산하는가 못하는가 하는것이 공무중대의 역할에 크게 달려있었다.하기에 중대의 초급일군들과 로동자들은 그때에도 콘베아카프링을 실정에 맞게 개조할 착상을 하고 열심히 노력하고있었다.

현장을 돌아보면서 당초급일군들을 만나 로동자들과의 사업을 실속있게 할데 대하여 강조한 그는 공무중대를 떠났다.

그날 저녁 초급당비서는 지배인과 함께 부속품소재보장대책을 예견성있게 세우기 위한 문제를 토의하였다.그후 예비부속품들이 넉넉히 마련되여 콘베아의 리용률이 어느 정도 높아졌다.

그러던 어느날 밤이였다.태산갱에 나가 한교대 일할것을 계획한 초급당비서는 막장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교대작업을 마친 채탄1중대 1소대 탄부들과 길을 어기게 되였다.그들은 그날 석탄생산계획을 넘쳐 수행하였다고 초급당비서에게 이야기하고는 곧 자리를 떴다.

초급당비서가 막장에 도착하니 채탄1중대 3소대 탄부들이 작업을 하고있었다.그런데 석탄생산량이 예상보다 많지 못하였다.탄부들과 함께 한참이나 땀을 흘리고난 초급당비서는 휴식시간에 한 채탄공과 무릎을 마주하였다.채탄공은 전교대성원들이 콘베아의 긁개가 못쓰게 된것을 알면서도 자기 교대생산만 생각하면서 제때에 수리하지 않아 자기들이 그것을 수리하게 되였고 결국 생산을 제대로 할수 없었다고 이야기하는것이였다.

무엇인가 뇌리를 치는것이 있었다.

(본위주의, 바로 여기에 근본원인이 있었구나.)

콘베아리용에서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그 해결을 위해 뛰였다고는 하였지만 운전공들과 채탄공들, 공무기지성원들모두가 설비리용률을 높이는 사업을 자기 일처럼 여기도록 하는데는 관심을 돌리지 못하였던것이다.

늘 생산현장에 들어간다고 하였지만 탄부들의 마음속깊이에 들어가지 못하다나니 겉치레식으로 일할수밖에 없었다는것이 되새겨져 초급당일군의 마음은 무거워졌다.

그후 초급당위원회는 설비관리를 대중자신의 사업으로 전환시키는데 힘을 넣었다.

모든 탄부들이 설비관리의 주인이라는 관점을 지니고 애국심을 높이 발휘하도록 하는 한편 설비관리과정에 이룩된 성과와 경험을 적극 일반화하였다.설비관리에서 본위주의울타리를 마스고 종업원모두의 사업으로 전개되는 과정에 설비리용률은 훨씬 높아졌다.

* *

설비들의 리용률을 높이던 나날을 잊을수 없다고 하면서 초급당비서는 이렇게 덧붙였다.

《일군들이 현장침투를 실속있게 할 때 걸린 문제해결의 열쇠도 찾을수 있고 증산목표점령의 지름길도 열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본사기자 김승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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