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남긴 마지막당부
얼마전 신천계급교양관을 찾았던 우리는 참관자들이 쉬이 발걸음을 떼지 못하는 한편의 미술작품앞에 이르게 되였다.
차디찬 감방에서 결박당한 손에 연필을 쥐고있는 리지적인 모습, 그 주인공은 시인 강승한동지였다.그 모습을 바라보며 그가 최후의 시각에 남긴 시구절을 조용히 읊어보았다.
…
우리 부르고
부르고싶었던 노래
다 부르지 못하고
떠나간다만
사랑하는 동지들이여
후대들이여
그대들이 우리의 노래를
이어서 불러달라
…
이 나라에는 시인도 많고 그들이 지은 시들도 무수히 많다.하다면 어찌하여 사람들은 76년전의 시인을 오늘도 잊지 않고 기억하며 그가 남긴 시를 두고두고 외우고있는것인가.
《신념으로 걷는 길이 혁명의 길이고 죽어도 버릴수 없는것이 혁명가의 신념입니다.》
학창시절에 외워 자주 읊어오던 시의 구절구절을 다시금 음미해보느라니 원쑤들을 전률케 했던 76년전 그날 시인의 억센 기상이 그대로 우리의 눈앞에 보이는듯싶었다.
강승한동지를 체포한 미제침략군놈들은 그가 어떻게 하나 제놈들을 찬미하는 글을 쓰게 하려고 악랄하게 발악하였다.하지만 그 무엇으로써도 그의 가슴속에 굳게 자리잡은 조선로동당원의 의지를 굽힐수 없었다.
악에 받친 놈들은 그를 사형장으로 끌어냈다.그날은 바로 1950년 10월 17일, 강승한동지가 서른두살이 되는 생일날이였다.비록 심장은 박동을 멈추었어도 시인은 영생의 모습으로, 신념의 강자로 이 땅에 다시 태여났다.
강승한, 그의 이름은 애국시인이라는 값높은 부름과 함께 이 땅의 공민들 지어는 나어린 소년단원들까지 알고있다.
그가 생전에 이 땅에 남겨놓은 시작품이 많아서가 아니다.그리고 그가 지은 시들을 다 알아서도 아니다.
바로 그것은 시인이 생의 마지막시각에 적들의 총구앞에 나서면서 사랑하는 조국산천에 새겨놓은 단 한편의 시, 그 마지막당부가 그토록 절절하고 가슴을 세차게 울려주기때문이다.
그는 원쑤들의 총구앞에서 죽음에 대한 공포도, 그 어떤 후회도 없었다.당원의 신념을 지키고 조국앞에 지닌 공민의 본분을 다한것으로 하여 오히려 떳떳하였다.
펜으로 쓴 글은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희미해지거나 지워질수 있다.그러나 온넋으로 쪼아박은 신념의 토로는 절대로 퇴색되거나 없어지지 않는다.
지난 수십년간 신천계급교양관을 참관한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수첩마다에 아니 증오로 높뛰는 가슴마다에 이 시를 쪼아박았고 복수결의모임들에서 이 시를 격조높이 읊으며 천백배의 피값을 기어이 받아낼 결의를 다지였다.
오늘은 우리 세대가 미술작품앞에서 애국시인이 남긴 마지막당부를 새기였다면 래일에는 우리 후대들이 이 자리에서 그와 마음속대화를 나누며 투철한 반제계급의식을 더욱 굳게 가다듬을것이다.
본사기자 백광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