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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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7일 수요일 6면

세계상식

5.4운동


중국에서 선진적인 청년지식인들이 선봉에 서고 광범한 근로인민대중이 참가한 반제반봉건적인 애국혁명운동이다.

5.4운동의 동기로 된것은 1919년 1월에 열린 빠리강화회의에서 제국주의렬강들이 중국인민의 자주권을 유린하고 일제의 중국침략을 도와준것이였다.당시 회의에 참가한 중국대표는 제국주의렬강들이 과거에 중국에서 빼앗아낸 모든 리권들을 돌려주고 일제가 중국에 강요한 《21개조》를 페기할것을 요구하였다.

하지만 미, 영, 프제국주의자들은 그 요구를 모조리 거부하고 산동지방의 리권을 일제에게 넘겨줄것을 결정하였으며 중국의 반동군벌정부는 이 치욕적인 결정을 접수하려고 하였다.

이는 광범한 중국인민의 격분을 자아냈다.먼저 프랑스에 있는 중국류학생들이 들고일어나 중국대표가 강화조약에 조인하지 말것을 요구하였다.

1919년 5월 4일 베이징대학을 비롯한 베이징의 각급 학교의 학생들이 투쟁에 나섰다.3 000여명의 청년학생들은 천안문앞에 모여 《21개조를 페지하라!》, 《조약체결을 거부하라!》, 《매국역적을 처단하라!》 등의 구호를 웨치며 시위를 벌렸다.

반동정부가 탄압에 나서자 베이징의 청년학생들은 총동맹휴학에로 넘어갔으며 5월 6일 《베이징중등이상학교학생련합회》를 조직하고 전국의 청년학생들을 투쟁에로 호소하였다.

천진, 보정, 상해, 남경, 무한, 복건성, 산서성, 섬서성, 절강성, 강서성 등 여러 지역의 청년학생들이 호응하여 투쟁에 떨쳐나섰다.6월 3일-4일 반동정부는 1 000여명의 학생들을 체포투옥하였다.6월 3일이후 학생운동의 중심은 베이징에서 상해로 옮겨지고 로동계급이 점차 투쟁의 주요력량으로 되였다.6월 5일-11일 상해의 6만~7만명의 로동자들이 파업을 단행하였다.각지의 상인들도 문을 닫고 이에 합세하였다.

투쟁이 전인민적운동으로 확대발전되는데 질겁한 반동군벌정부는 체포된 학생들을 석방하고 강화조약조인을 거부한다는것을 선포하지 않을수 없었다.

5.4운동은 중국의 발전과 진보에 중대하고도 심원한 영향을 주었다.이 운동후 중국의 정세에서는 매우 큰 변화가 일어났다.중국에서 선진사상이 급속히 파급되기 시작하였다.중국로동계급은 독자적인 정치적력량으로 력사무대에 등장하였다.

중국에서는 5월 4일을 청년절로 기념하고있다.청년절을 맞으며 전국적범위에서 진행되는 여러가지 경축행사들은 중국의 청년운동에 활력을 불어넣고 청년들이 사회주의현대화국가건설에 열정, 지혜와 재능을 다 바쳐나가도록 하는데서 중요한 계기로 되고있다.

본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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