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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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21일 일요일 6면

세대가 바뀌고 혁명이 전진할수록 더욱 투철한 반제계급의식을 지니자

나라가 없었던탓에

한 로과학자가 남긴 수기를 펼치고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의 사회주의조국은 인민들에게 참된 삶과 행복을 안겨주는 진정한 조국입니다.》

며칠전 평양의학대학병원 의사 김철호동무가 우리를 찾아왔다.

올해 69살인 그는 고마운 조국의 품속에서 근로자들모두가 전민과학기술인재화의 구호높이 기술형의 인간, 지식형의 인간들로 튼튼히 준비해나가고있는 벅찬 현실을 목격하느라니 아버지의 피눈물나는 과거사가 돌이켜진다고 하면서 한권의 책을 내놓았다.김일성상수상자이며 로력영웅, 원사, 교수, 박사인 김진수선생이 남긴 수기집이였다.

《인생의 황혼기에 이르고보니 나라없던 그 세월에 겪은 쓰라린 체험, 해방후 조국의 품속에서 흘러간 보람찬 나날이 때없이 돌이켜지군 한다.어버이수령님 찾아주신 조국이 아니였더라면 길가의 막돌처럼 버림받던 내가 어떻게 인생을 값높이 빛내일수 있었겠는가.

이 땅에서 전체 인민의 지식인화가 실현되여가는 오늘날 광명과 암흑의 두 생활을 이야기하는것은 내가 새세대들앞에 지켜야 할 도리가 아닐가 생각된다.》

이렇게 시작된 로과학자의 수기는 그 자체가 눈물겹기도 하고 가슴벅차기도 한 인생담이였다.

그의 유년시절은 굶주림과 추위, 모진 학대와 박해속에서 흘렀다.

문덕군 룡반리에서 그가 다섯 남매의 맏이로 태여난 해는 1925년, 일제의 가혹한 식민지통치가 악랄하게 감행되던 시기였다.

대대로 소작살이를 하는 그의 집은 생활형편이 말이 아니였다.

푼전이라도 손에 쥐기 위해 밤늦게까지 짚신을 삼던 할아버지와 아버지, 하루종일 허리를 펴지 못하고 일을 하면서도 온갖 천대와 멸시를 받은 할머니와 어머니…

이것은 그의 가정만이 겪은 고통이 아니였다.일제의 학정밑에서 신음하던 이 나라 모든 가정들의 불우한 운명이였다.

어린 그에게 차례진것은 가난과 굶주림, 고된 농사일뿐이였다.하지만 그에게도 꿈이 있었다.그것은 학교에 가서 공부하는것이였다.

같은또래의 잘사는 집 아이들이 으시대며 학교로 다니는것을 볼 때마다 그의 가슴속에는 서러움과 함께 배움의 욕망이 솟구치군 하였다.

오래전부터 아들애의 마음을 읽고있었던 그의 부모는 어떻게 해서라도 맏이만은 공부를 시키려고 갖은 고생을 다하였다.이렇게 부모가 피땀으로 번 돈으로 그는 일제놈들이 운영하던 어느한 학교에 들어갔다.그러나 그곳은 말이 학교였지 감옥과도 같았다.몸이 아파 조금만 늦게 나와도 왜놈교원은 의자를 들고 오래동안 서있게 하는 벌을 주었고 조선말을 하면 마구 매질하였다.

당시 우리 나라의 인적 및 물적자원에 대한 일제의 수탈정책은 더욱 악랄해졌다.일제의 검은 마수는 그가 다니던 자그마한 학교에도 뻗쳤다.

일제는 월사금을 배로 올리고 학생들이 무조건 제 날자에 돈을 바치도록 강요하였다.그를 비롯한 적지 않은 가난한 집 학생들이 돈을 제 날자에 바치지 못했을 때에는 가혹한 욕질과 매질이 차례졌다.

그러던 어느날 왜놈교원이 그를 비롯한 학생들에게 학교에서 조직하는 운동회에 참가하라고 하는것이였다.신통히도 월사금을 제 날자에 못바친 학생들이였다.

다음날 운동회에 참가한 그는 깜짝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입으로 회가루를 헤집어 왜놈엽전을 찾아물고 돌아오는 종목에 나가게 되였던것이다.

순간 형언할수 없는 설음이 북받쳐올랐지만 그는 하는수없이 이 종목에 참가하였다.

입주변을 회가루로 매닥질하며 그는 자그마한 엽전을 찾아내느라 진땀을 빼였다.더 끔찍한 일은 그 이후에 일어났다.학생들의 입술이 하나같이 보기 흉하게 부풀어올랐던것이다.이루 말할수 없는 아픔이 그들의 온몸을 엄습하였다.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날 너무도 가슴아파 온밤 눈물을 흘렸다.며칠후 그는 월사금을 내지 못하여 학교에서 쫓겨나고말았다.

해방이 되여서야 그는 인간의 참된 삶을 누릴수 있었다.조국은 어제날 소작농의 아들을 교정으로 불러주었다.그리고 의사가 되려는 그의 희망을 활짝 꽃피워주었다.

의료일군으로 성장한 그는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수많은 전상자들을 치료하였다.

갖은 수모와 멸시를 천분으로 여기며 비참하게 살아오던 소작농의 자식을 품어안아준 조국에 대한 사랑이 커갈수록 그 품을 빼앗고 또다시 노예살이를 강요하려는 원쑤들에 대한 증오의 감정도 그만큼 격렬해졌다.

사랑과 증오의 이 감정을 안고 그는 피흘리며 쓰러진 인민군용사들을 소생시켜 초소에 다시 설수 있게 하였다.그에게 있어서 그 한명한명의 전사는 조국을 지키는 총이였고 원쑤를 족치는 폭탄이였다.

천리마대고조시기에도 아니 한생을 그는 이런 마음으로 일했다.

로과학자가 남긴 수기는 단순히 체험담이 아니라 새세대들의 마음속에 조국의 귀중함을 새겨주는 교과서였다.

평양의학대학병원 의사 김철호동무의 말에 의하면 아버지는 림종을 앞두고 자기의 명예는 타고난것이 아니라고, 조국이 있어야 재능이 빛나고 인생도 빛난다고 하면서 이렇게 당부하였다고 한다.

나라가 없었던탓에 갖은 수모와 멸시를 받던 피맺힌 과거를 잊으면 또다시 노예가 되고 배움의 꿈도 짓밟히게 된다고, 투철한 계급적각오를 만장약하고 귀중한 조국을 목숨바쳐 지키라고.

우리는 수기집을 펼치고 다시금 더듬어보았다.그러느라니 그 글줄들이 수십년세월 나라의 의학과학기술발전에 참답게 이바지한 로과학자가 자손들에게 남긴 당부로 귀전에 메아리쳐왔다.

그가 누구이든,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든 일하면서 배우고 배우면서 일할수 있는 모든 조건이 갖추어진 사회주의 우리 제도를 굳건히 지키고 빛내여가는 계급의 전위투사가 되라!

본사기자 신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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