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미더운 청년들이 조국의 교단을 지켜간다
농촌과 산골, 섬마을학교들에 탄원진출한 사범대학, 교원대학졸업생들에 대한 이야기
온 나라 곡곡에서 탄원열풍이 날로 승화되고있는 속에 감동깊은 소행이 사람들의 심금을 뜨겁게 울리고있다.
《조국과 인민의 부름앞에 말로써 대답할것이 아니라 자기 한몸을 내대고 실천으로 대답하는것이 애국자의 자세입니다.》
지난 3월부터 4월까지의 기간에 전국적으로 100여명의 사범대학, 교원대학졸업생들이 정든 고향과 도시를 떠나 농촌과 산골, 섬마을학교들에로 탄원진출하였다.
탄원의 줄기찬 흐름, 그 세찬 흐름의 원천과 동력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그에 대한 대답을 우리는 당의 뜻을 받들어 농촌과 산골, 섬마을의 교단을 찾아 주저없이 달려가 참된 삶의 뿌리를 내린 각지 대학졸업생들의 숭고한 정신세계에서 찾아본다.
향유의 권리앞에 보답의 의무가 있다
도시에서 농촌으로, 산골로, 섬마을로!
말하기는 쉬워도 사실 부모의 품을 두고 도시를 멀리 떠나 외지고 생소한 고장에서 청춘시절을 보내고 한생을 바친다는것은 결코 헐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김종태해주사범대학을 졸업한 김은현동무는 륙지와 멀리 떨어진 강령군 순위도의 순위기술고급중학교에서 교육자의 첫걸음을 떼였다.
어떻게 그런 장한 결심을 내릴수 있었는가라는 물음에 처녀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지난 1월, 신의주온실종합농장건설장을 찾으시고 새해를 맞이한 청년건설자들을 축하격려해주신
귀중한 청춘시절을 우리 국가발전사의 류례없는 변혁기와 같이하면서 향유와 안락이 아니라 고생과 단련을 청춘기의 보람찬 선택으로 했고 극복할줄 알고 혁신할줄 알며 애국할줄 아는 억센 의지와 열혈의 정신을 배양한 그 나날들은 천금을 주고도 살수 없는 한생의 제일 값진 재부로 된다고 하신 그이의 말씀을 자자구구 새겨안는 김은현동무의 가슴속에서는 탄원의 결심이 더욱 확고해졌다.
하여 그는 20대꽃나이에 외진 섬마을학교의 교원이 되였다.
원산사범대학을 졸업하고 법동군 로탄기술고급중학교로 탄원한 김진향동무는 지금도 대학에 입학하던 때의 격정을 생생히 간직하고있다.
그가 첫 등교길에 오르던 날 딸이 받아안은 교복이며 책가방을 눈물에 젖어 쓸어보며 그의
《우리 당이 정말 고맙구나.난 나라에 부담밖에 준것이 없는데…》
병으로 사회보장을 받은지도 몇해가 흘렀던 그때 외동딸이 대학에 입학했다는 소식만도 가슴벅찬데 당에선 학부형구실까지 도맡아 교복으로부터 학습장에 이르기까지 일식으로 안겨주었으니 그 넘치는 고마움을 어찌 한두마디에 다 담을수 있었으랴.
농촌과 산골, 섬마을학교들에 탄원진출한 대학졸업생들속에 중등학원출신의 청년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은 실로 많은것을 생각하게 한다.
지난 4월 평성사범대학을 졸업한 조은정동무와 평성교원대학을 졸업한 장유정동무는 대흥군 흑수기술고급중학교로 탄원해갔다.
탄원지로 떠나기 앞서 못잊을 학창시절이 흘러간 따뜻한 요람인 평성중등학원을 찾은 조은정동무는 한점 그늘없이 자란 성장의 추억이 소중히 깃들어있는 학원의 곳곳을 오래도록 돌아보았다.중등학원을 떠나던 그날 그는 탄원증서를 가슴에 꼭 안고
(산골아이들도 꼭 나라의 기둥감들로 훌륭히 키우겠습니다.)
처녀들에게 있어서 흑수기술고급중학교는 결코 생소한 곳이 아니였다.한번도 가본적은 없지만 바로 거기에는 10여년전 학교로 탄원해온 첫 교원으로서
바로 그와 같은 교육자가 되고싶은 열망을 안고 소문난 최우등생이였던 조은정동무도, 꿈이 많았던 장유정동무도 심심산골의 교단을 찾아 스스로 인생의 어려운 선택을 했던것이다.
지난 6월초, 교원이 되여 처음으로 맞은 생일날에 조은정동무는 참으로 류다른 꽃다발을 받아안았다.5월에도 눈이 내리는 고장이라 꽃을 보기가 힘들었던 그때 어린 학생들이 수채화구로 정성담아 그린 축하의 꽃다발은 처녀교원을 울리고야말았다.갈수록 사랑스럽고 정이 드는 학생들을 품에 꼭 안고 그는 입속말로 이렇게 외웠다.
이 산골을, 정든 교단을 영원히 뜨지 않겠다고.
이것은 사리원교원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토산군 양사기술고급중학교에서 교편을 잡은 김조향동무의 심정이기도 하다.
소중히 자래운 꿈도 많았고 마땅히 누릴수 있는 향유의 권리도 있었다.하지만 우리 청년들은 조국의 부름에 깨끗한 량심과 값비싼 진정을 바치는것으로 계승자의 사명에, 공민의 도리앞에 충실하였다.
그 어디를 둘러보아도 청춘기의 세대들이 영달과 향락만을 추구하고있는 이 세계에서 이 땅의 청춘들은 고생과 시련을 오히려 락으로 여기며 조국의 부름앞에 한몸 내대고 사회와 집단앞에 성실하며 미래를 위해 투신하는 혁명적인 새세대로 성장하고있다.
향유의 권리앞에 보답을 먼저 놓고 도시를 떠나 섬마을로, 농촌으로, 산골로 앞을 다투어 달려간 수많은 대학졸업생들, 그들이 바라는것은 오직 하나 조국의 부강번영뿐이다.
당의 뜻 받들어 리상을 꽃피우리
함흥사범대학을 졸업하고 부전군 릉구기술고급중학교 교원이 된 리유경동무는 자기에 대한 이야기에 앞서 한 탄원자처녀에 대한 이야기부터 먼저 시작하였다.
사회주의애국청년동맹창립 80돐 기념대회에 참가하여
탄원자들의 숭고한 정신세계에 공감은 하면서도 선뜻 따라서지 못하고 조건이 좋은 도시학교에서 교원이 될것을 꿈꾸던 자신을 돌이켜볼수록, 당의 리상을 꽃피우는 길에서 청춘의 영예와 보람을 찾을줄 아는 애국청년들앞에 스스로 자신을 세워볼수록 그의 생각은 깊어졌다.
당이 바라는 사람이 된다는것은 한마디로 당의 뜻과 리상을 자기의것으로 받아들일줄 알고 그 실천에 한몸 바칠줄 아는 참인간이 된다는것이 아니겠는가.
그는 제일 어렵고 힘든 초소에서 교육자로 한생을 빛내일 결심을 안고 도시를 떠나 부전군의 산골로 먼길을 떠났다.바로 그 시각 차광수신의주사범대학을 최우등으로 졸업한 류복심동무는 파도세찬 배길을 달려 철산군의 어느한 섬에 있는 기술고급중학교로 들어서고있었다.
그 섬마을의 교단에는 다름아닌 자기가 꼭 서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그의 꾸밈없는 이야기는 얼마나 진실하고 뜨거운것인가.
리수덕원산교원대학을 졸업하고 고성군 영웅해금강기술고급중학교의 교단에 선 김봄동무 역시 사람들 누구나 칭찬하는 탄원자들중의 한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졸업한 그달음으로 한순간의 주춤도 없이 조국의 최남단인 탄원지로 달려갔다.그의 마음속에는 과연 무엇이 간직되여있었는가.
김봄동무가 중학교졸업을 앞두었던 어느날 교원인 그의 어머니는 농촌학교학생들의 교육수준을 올리기 위해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농촌마을로 떠나게 되였다.
어머니와 함께 있게 될 방학기간을 남모르게 기다려온 그에게서는 저도 모르게 이런 말이 튀여나왔다.농촌마을에 꼭 가야 하는가고.
그때 어머니는 그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했다.
당에서 농촌학교학생들의 실력이 낮아서 걱정하고있다고.
그날의 추억을 더듬어보며 김봄동무는 말하였다.
《그날부터 저는 앞으로 대학을 졸업하면 농촌마을아이들을 도시아이들 못지 않게 배워주는 교원이 되겠다고 결심했댔습니다.더우기 도시와 농촌간의 교육수준차이를 결정적으로 줄일데 대한 당 제9차대회 과업을 받아안고보니 내가 택한 길이 옳았구나 하는 생각에 정말 기뻤습니다.》
비단 김봄동무만이 아니다.
우리 나라를 교육이 발전된 나라, 교육으로 흥하고 강성하는 교육강국, 인재강국으로 일떠세우는것은 우리 당의 드팀없는 목표이고 불변한 의지이라고 하면서 송도사범대학을 졸업한 강춘국동무는 장풍군 솔현기술고급중학교에 남먼저 달려가 산골아이들의 정다운 선생님이 되였고 신포시의 한 기술사범대학을 졸업한 박혜경동무는 검덕로동계급의 아들딸들을 부흥강국의 훌륭한 기둥감들로 키우는 성장의 밑거름이 될 맹세를 안고 단천시 금골고급중학교의 교단을 지켜섰다.
누구나 다 그러하지만 회령시에 있는 교원대학을 졸업하고 소재지에서도 70여리 떨어진 원령기술고급중학교 령천분교에 안해와 함께 진출한 강원진동무의 정신세계는 참으로 만사람을 감동케 한다.
지금으로부터 10여년전 군사복무시절 표창휴가를 받고 우연히 원령리를 지나던 그는 책가방을 메고 어디론가 급히 가는 몇명의 학생들을 만나게 되였다.분교선생님이 병으로 못나와서 10여리길을 걸어 본교로 간다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은 그날 그는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그날부터 대학을 졸업하는 날까지 오랜 세월이 흐르도록 그의 가슴속에서는 비를 맞으며 본교를 찾아가던 령천분교 학생들의 모습이 도무지 지워지지 않았다.
사실 누구나 칭찬하고 탐나하는 대학의 초급일군이며 더우기 금방 새 가정을 이룬 강원진동무에게는 하고싶은 일도, 부르는 곳도 많았다.하지만 그는 령천분교의 높지 않은 교단을 선택하였다.
당에서는 지방과 농촌의 교원대렬을 질량적으로 강화하기 위하여 고심하고있는데 이런 때 제대군인당원인 나부터 그 뜻을 받드는 맨 앞장에 서야 한다는것이 바로 그의 깨끗한 량심이였던것이다.
6.6절을 맞으며 분교의 학생들이 출연하는 소박한 공연무대를 펼쳤던 날 그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뜨겁게 호소하였다.
우리모두 최우등생이 되여 전국적인 학과경연에도 참가하고 재간둥이자랑을 가득 안고 평양에 가서 TV무대에도 참가하자고, 우리 령천분교아이들도 꼭 나라의 보배가 되자고.
어머니당을 성심다해 받들고 따르는 우리 청년들의 충정의 열도는 그 어디에도 비길데 없다.
진정 그지없이 숭고하고 아름다운 정신세계를 지니고 외진 곳에서 열과 정과 사랑을 다해 조국의 밝은 미래를 키워가고있는 강계사범대학 졸업생 리성민, 신의주교원대학 졸업생 김충심, 리수덕원산교원대학 졸업생 김예성, 혜산교원대학 졸업생 심미향동무들을 비롯한 사범대학, 교원대학의 많은 졸업생들에 대한 이야기를 어찌 말이나 글로 다 전할수 있겠는가.
혁명의 전진과 더불어 세대교체는 계속되고있다.새세대들의 변질을 노리는 원쑤들의 집요한 책동도 멎은적 없다.하지만 우리 당의 혁명사상과 리상을 자신의것으로 받아들이고 자기의 사명과 시대적의무에 언제나 충실하여 자기 당, 자기 조국과 시련을 함께 이겨내며 자신들을 스스로 단련하고 완성해나가는 이처럼 미덥고 끌끌한 젊은 혁명가들이 있기에 우리 조국은 날로 아름다와지고 더욱 끄떡없이 전진하는것이다.
당의 사상과 의지로 숨쉬며 당의 두리에 성벽을 이루고 당의 리상을 앞장에서 받들어가는 계승자들의 대부대가 있다는 이것이야말로 우리 조국의 제일가는 밑천이며 가장 큰 자랑이다.
본사기자 조향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