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제의 야만성은 조선전쟁에서 낱낱이 드러났다
파쑈도이췰란드가 일으킨 제2차 세계대전은 반인륜적인 집단학살과 대량파괴라는 참혹한 후과를 초래하였다.
그 여파가 가라앉기도 전에 조선반도에서 미제와 그 추종세력들에 의해 치떨리는 전쟁범죄가 재현되였다.
극악한 무차별파괴
미제는 세계전쟁사에서 류례를 찾아볼수 없는 가장 야만적인 폭격과 포격으로 우리 조국강토를 재더미로 만드는 범죄행위를 감행하였다.
《륙전법규와 관습에 관한 규칙》 제25조 《평화적도시의 공격》에서는 평화적도시, 촌락, 주택 또는 건물은 어떤 수단에 의하여서도 공격 또는 포격할수 없다고 규정하였다.제27조 《포격의 제한》에서는 공격 및 포격을 진행함에 있어서 종교, 예술, 학술, 자선용에 제공되는 건물, 력사적인 기념물, 병원과 병자 및 부상자의 수용소는 군사적목적에 사용되지 않는한 될수록 피해를 면하게 하기 위하여 필요한 모든 수단을 다 취하여야 한다고 규정하였다.《공전에 관한 규칙》 제22조 《비전투원 등에 대한 폭격의 금지》에서는 일반인민을 위협하며 군사적성질을 가지지 않는 사유재산을 파괴하거나 혹은 훼손하며 비전투원을 살해하는것을 목적으로 하는 공중폭격은 금지한다고 규정하였다.
《전시해군무력에 의한 포격에 관한 조약》 제1조 《포격의 금지》에서는 《방비되지 않은 항구, 도시, 부락, 주택 또는 건물에 대하여 해군무력으로 포격하는것을 금지한다.》고 규정하였다.
미제는 전쟁법규상의 이러한 요구들을 모두 무시하고 무차별적인 폭격과 포격으로 무고한 평화적주민들을 무참히 학살하고 우리의 도시와 농촌들을 페허로 만들었다.
거리와 마을, 공장과 기업소들, 살림집과 학교들, 병원과 진료소들, 극장과 영화관들 지어는 절간들과 옛 무덤을 비롯한 민족문화유산들과 력사유적들까지도 가차없이 파괴하였다.
전쟁 전 기간 미공군비행대는 80만회, 해병대와 해군비행대는 25만회이상이나 출격하여 태평양전쟁시기 일본본토에 떨군것의 3.7배에 달하는 근 60만t의 폭탄과 나팜탄을 우리 공화국의 전 지역에 쏟아부었다.
1952년 한해동안에만 하여도 미제는 20여만개의 폭탄을 투하하였으며 5억여발의 기총탄을 쏘아대고 1 500여만개의 나팜탄을 떨구었다.평양에만도 지뢰탄, 소이탄을 포함한 각종 폭탄 5만 2 380개를 투하함으로써 1㎢당 1 000개의 폭탄을 퍼붓는 기록을 세웠다.
미제는 1952년 7월 11일과 12일에만도 400여대의 전투기로 평양에 6 000여개의 나팜탄, 시한탄 등을 투하하여 8 000여명의 부녀자와 로인, 어린이들을 살해하였다.
미제가 전쟁 3년간 총 1 400여회에 걸쳐 42만 8 000여개의 폭탄을 쏟아부음으로써 전쟁이 끝날무렵 평양에서는 성성한 건물을 찾아볼수 없었다.
1950년 8월초 흥남지구에 날아든 미제침략군 폭격기들이 흥남중앙병원을 목표로 28개의 폭탄을 퍼부어 의사, 간호원 18명과 117명의 환자들을 살해하고 106명의 환자들에게 중상을 입힌것, 출생한 후 6개월부터 4살까지의 어린이들을 보육하고있는 흥남탁아소에 대형폭탄을 퍼붓고 기총사격을 가하여 완전히 파괴하고 54명의 어린이들을 무참히 살해한것은 미제의 야만성을 폭로하는 수많은 자료들중의 하나이다.
미제의 만행으로 공화국각지의 공장, 기업소건물 5만 941동, 각급 학교건물 2만 8 632동, 병원, 진료소를 비롯한 보건시설건물 4 534동, 과학연구기관건물 579동, 출판 및 문화기관건물 8 163동, 살림집 207만 7 226동이 혹심하게 파괴되였으며 56만 3 755정보의 농경지가 피해를 입고 15만 5 500정보의 논밭면적이 줄어들었다.
미제는 끊임없는 폭격과 포격으로 수풍발전소, 장진강발전소, 허천강발전소, 부전강발전소 등 수많은 발전소들도 파괴하였다.
평양의 영명사와 부벽루, 성천의 동명관, 해주의 부용당, 개성의 남대문, 의주의 남문, 묘향산의 보현사, 금강산의 표훈사, 유점사 등 우리 선조들이 남긴 우수한 민족문화유산들도 미제야만들에 의해 재가루로 되였다.
모란봉극장을 비롯하여 평남도립극장, 평양국립극장, 함흥영화관, 함남도립극장, 원산시립도서관, 강원도 철원도서관 등 수많은 문화시설들도 무참히 파괴되였다.
우리 나라에 와서 평양의 피해상황을 료해한 국제민주녀성련맹조사단은 보고서에서 다음과 같이 폭로하였다.
《전쟁이 시작된 후 지금까지 시내폭격은 계속되고있다.그중에서도 1951년 1월 3일의 폭격은 제일 참혹하였다.…80여대의 폭격기들은 1월 3일 해질무렵부터 이튿날 정오까지 15분내지 20분의 간격을 두고 계속적인 폭격을 하였다.먼저 소이탄을 퍼붓고 다음에는 휘발유통을, 다음에는 대형폭탄을 퍼부었다.또한 소이탄과 시한탄을 동시에 퍼부었다.소이탄과 휘발유통으로 인하여 시내는 불바다를 이루었다.이것은 또한 시민들이 구호사업을 진행 못하게끔 하는 수단이다.그렇기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산채로 파묻혀 죽었으며 질식되여 죽었다.수많은 시체들이 아직 그속에 파묻혀있다.》
조국해방후 새 생활창조로 들끓던 도시와 마을들이 불길속에 잠기고 맑은 아침의 나라로 불리우던 이 나라의 청신한 공기가 숨쉬기조차 가쁜 매연으로 화하였으며 활기와 웃음에 넘치던 수많은 생명들이 싸늘한 시체로 변하였다.노래에도 있듯이 새들도 사라지고 꽃들도 재가 된 참혹한 전쟁이였다.
인류력사에는 침략군의 만행자료들이 수많이 기록되여있지만 이처럼 군사시설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거리와 마을들을 완전히 재더미로 만들고 농경지들을 황페화시킨 실례는 아직 없다.
반인륜적인 대량살륙만행
미제의 민간인대량학살범죄는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한다.
미제는 력사상 가장 야수적이고 잔악한 방법으로 무고한 인민들을 대량학살하였다.
살인마로 악명높았던 미8군사령관 워커는 《…설사 그대들앞에 있는것이 어린이나 로인이라 할지라도 그대들의 손이 떨려서는 안된다.죽이라! 그렇게 함으로써 그대들은 자신을 파멸로부터 구원하며 또 〈유엔군〉병사의 책임을 다하여야 한다.》라고 뇌까렸다.
미제야수들은 중세기적인 방법으로 사람들을 무참하게 도살하였다.어머니와 자식이 함께 있는것은 너무도 행복하다고 지껄이며 어머니의 품에서 아이들을 떼놓고 배고파 우는 어린이들에게 휘발유를 뿌리고 불태워죽인 살인마들이 바로 이놈들이였다.
미제는 일시적으로 강점하였던 지역들에서 당, 정권기관, 근로단체일군들, 로동자, 농민, 사무원, 청소년들 지어는 종교인 등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남녀로소 관계없이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참혹하게 학살하였다.
특히 신천에서 감행한 미제의 대학살만행은 악명높은 히틀러도당도 무색케 하는 인간살륙의 극치였다.
살인귀들은 산 사람의 몸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달거나 생매장하여 죽이였으며 귀와 코를 자르고 눈알을 뽑거나 가죽을 벗겨죽이고 코를 꿰여 끌고다니거나 달군 인두로 몸을 지지며 사지를 찢고 각을 떠 죽이고 톱으로 몸통을 켜거나 나무에 꺼꾸로 달아매고 머리나 잔등에 못을 박거나 개를 풀어 물어뜯게 하는 등 도저히 상상조차 할수 없는 귀축같은 만행을 저질렀다.미제는 강점기간 군내 총인구수의 4분의 1에 달하는 무려 3만 5 000여명의 주민들을 이런 잔인한 방법으로 학살하였다.
미제살인귀들의 대학살만행으로 하여 각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빼앗기거나 불구가 되였으며 남자가 없는 지대, 무인지대까지 생겨나게 되였다.
당시 우리 인민의 피해상을 직접 목격한 외국의 한 문필가는 조선에서 미국인들은 히틀러도당의 경험을 충분히 계승했을뿐 아니라 사람들을 대중적으로 학살하는 방법에 있어서 그들을 훨씬 릉가한다고 폭로하였다.
미제가 감행한 대중적인 학살만행은 전시 민간집단의 성원을 살해하는 행위, 집단적처형을 엄중한 전쟁범죄로 규정하고 그를 금지한 전쟁법규들을 란폭하게 유린한 행위였다.개별적인 미군장교들과 병사들의 우발적인 행동에 의해서 초래된것이 아니라 미국정부의 정책에 따라 조직성과 계획성을 띠고 대규모적으로 감행된 특대형범죄행위였다.
미제가 1990년대중엽에 남의 나라 령공을 침범하였다가 죽은 미군비행사들에 대하여 1인당 수천만US$라는 엄청난 보상을 요구한적이 있다.
무고한 우리 인민의 생명과 건강, 생활상안정을 마구 란도질한데 대하여 사죄 한번 한적이 없으면서도 응당한 징벌로 초래된 저들의 손해에 대해서는 이처럼 파렴치하게 놀아대는것이 날강도 미제의 행태이다.
침략전쟁을 도발하고 인민들을 무참하게 학살한 미제침략자들의 피비린 죄악의 력사는 절대로 지워지지 않으며 외곡한다고 하여 달라지지도 않는다.사실들은 미제야말로 인간의 탈을 쓴 잔악무도한 야수, 희세의 살인귀무리이며 지난 조선전쟁은 조선민족멸살을 목적으로 벌려놓은 대학살전쟁이였다는것을 똑똑히 보여주고있다.
우리 인민은 참기 어려운 아픔과 시련을 이겨내고 영웅적인 투쟁으로 원쑤들에게 무리죽음을 안기였다.미제의 《강대성》의 신화를 산산이 깨버렸다.오만한 미제식인종들에게 자주적인민의 힘이 과연 어떤것인가를 똑똑히 가르쳐주었다.
허영민
야만적인 폭격을 감행하는 미제공중비적들
페허로 된 평양시의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