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식솔, 어디 가나 친형제
10년세월을 변함없이
며칠전 보천군 호산농장 농장원 주은하동무의 집에 반가운 손님이 들어섰다.
혜산시안전부 안전원인 리영제동무가 먼길을 걸어 찾아왔던것이다.그의 모습을 바라보는 주은하동무는 자기 가정이 리영제동무와 깊은 인연을 맺고 흘러온 나날이 돌이켜졌다.
그의 가정이 리영제동무를 알게 된것은 10년전부터였다.그때 부모를 잃은 청년과 가정을 이루게 된 주은하동무는 남편에게 친형처럼 따르는 안전원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였다.그가 바로 리영제동무였다.
부모잃은 청년의 건강과 생활을 따뜻이 돌보아주고 맡은 일을 잘하도록 이끌어주던 리영제동무는 그가 가정을 이루게 되였을 때에는 친부모된 심정으로 결혼상을 차려주었고 많은 가정용품들도 마련해주었다.
그후에도 리영제동무와 그들부부사이에는 변함없는 친혈육의 정이 계속 이어졌다.
그들가정에 아이들이 태여날 때에도, 명절날에도 리영제동무가 찾아오군 하였다.집을 찾을 때마다 생활에서 애로되는 점은 없는가, 건강은 어떠한가, 아이들은 잘 크는가를 따뜻이 헤아려주던 리영제동무의 모습에서 그들부부는 친혈육의 정을 느끼였다.
이렇게 이어온 정은 10년세월이 흐른 오늘도 변함이 없었다.
인민들을 위한 좋은 일을 적극 찾아하는 리영제동무의 모습은 주은하동무와 그의 가족성원들의 눈에 고마운 우리 제도의 모습으로 새겨졌고 더 많은 일을 하여 보답할 결심을 더욱 굳혀주었다.
녀교원의 진정
얼마전 위원군 읍에서 살고있는 김정실녀성은 위원고급중학교 초급반 학생인 딸의 10점시험지를 기쁨속에 보고 또 보았다.그러느라니 딸애의 소학교담임교원이였던 박춘애동무의 모습이 삼삼히 떠올랐다.
몇해전 소학교에 입학하였지만 신체상장애로 하여 다른 애들처럼 마음껏 공부할수 없는 딸을 두고 그가 걱정만 하고있을 때 위원소학교 교원인 박춘애동무가 집에 찾아왔다.그는 자기도 자식을 키운 어머니라고, 친딸처럼 여기고 꼭 공부를 잘할수 있도록 하겠으니 자기에게 맡겨달라고 하는것이였다.
그때 김정실녀성은 녀교원의 가슴속에 어떤 뜨거운것이 간직되여있는지 다는 알수 없었다.
수십년을 교원으로 일해오면서 후대들을 위해 천만품을 아끼지 않는 우리 나라에서는 마음속에 그늘을 안고있는 학생이 한명도 있어서는 안된다는것을 가슴속에 깊이 새겨온 박춘애동무였다.하여 그는 때로는 퇴근시간도 잊고, 때로는 학생을 자기 집에 데려다가 공부시키며 뜨거운 진정을 기울이였다.
박춘애교원만이 아니였다.온 학교가 떨쳐나 김정실녀성의 딸애를 위해 정성을 기울이였다.
이런 열정과 사랑이 열매를 맺어 공부를 하는것이 불가능하다고 하던 딸애가 최우등의 성적으로 소학교를 졸업하게 되였고 고급중학교 초급반에 가서도 늘 우수한 성적을 거두게 되였던것이다.
딸애의 시험지를 보고 또 보는 김정실녀성의 가슴속에는 세상에서 가장 우월한 우리 나라 사회주의제도에 대한 고마움이 그들먹이 차올랐다.
영웅가정의 친혈육들
지난 5.1절 아침 락랑구역 승리2동에 살고있는 로력영웅인 최창조로인은 깊은 생각에 잠겨있었다.
보람찬 로동생활을 하던 나날에 5.1절을 뜻깊게 맞이하던 일들이 떠올랐던것이다.
그가 이런 상념에 잠겨있는데 문두드리는 소리가 울리더니 여러명의 사람들이 들어섰다.그들은 최창조로인의 한생이 흘러간 혁명사적지건설국 연공사업소의 일군들과 종업원들이였다.
뜻깊은 명절날 함께 일하던 종업원들을 만나게 된 그의 기쁨은 이를데없이 컸다.
지난 시기에도 자주 찾아와 기념비적창조물들을 일떠세우던 나날들을 함께 추억하며 부디 건강하여 새세대 연공들이 전세대들처럼 살며 일하도록 이끌어달라고 부탁하군 하던 그들이였다.명절날과 생일날은 물론 여느날에도 수시로 찾아와 앓을세라, 생활에 불편이 있을세라 항상 관심하며 영웅의 건강과 생활을 따뜻이 돌보아주었다.언제인가는 지배인 박대성동무가 먼 출장길에 로인의 건강에 좋은 귀한 보약재를 마련해가지고 찾아오기도 하였다.
비록 년로보장을 받고 일터는 떠났어도 여전히 혁명선배로 존대하며 친혈육의 정을 부어주는 일군들과 종업원들의 진정앞에서 고마움을 금치 못하며 영웅은 여생을 나라를 위한 보답의 길에 다 바칠 마음 안고 지금도 년로한 나이이지만 사업소에 자주 나가 일손을 돕군 한다.
본사기자 유광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