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상과 포부가 나날이 높아간다
원산시 중용리를 찾아서
《우리식 사회주의를 수호하고 전진시키기 위한 간고한 투쟁행정에서 누구보다 고생을 많이 한 우리 농업근로자들이 부유하고 문명한 사회주의리상향에서 행복한 생활을 마음껏 누리게 하려는것은 우리 당의 확고한 의지입니다.》
신록이 짙어가는 7월의 이 계절 새 농촌마을의 새 주인들을 찾아가는 우리의 기행길은 원산시 중용리에로 이어졌다.문천시를 경유하여 항구도시인 원산시를 15리가량 앞두고 우측방향으로 꺾어드느라니 벌가운데 있는 마을이라는데로부터 그 지명이 유래되였다는 중용리가 눈앞에 안겨왔다.잠시후 목적지에 이른 우리는 크게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현대적인 단층, 소층살림집들이 층층으로 들어앉아 마치도 수도의 경루동을 그대로 떠옮겨온듯한 인상을 주는 아름다운 전경이 안겨들었던것이다.아기자기한 단층살림집들을 바라볼 때면 그것이 제일인듯싶었는데 소층아빠트들에 눈길을 얹으니 마음은 또 거기에 끌렸다.백수십세대의 살림집들이 하나같이 멋지고 특색이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한걸음 옮기면 휴식터가 보였고 또 한걸음 옮기면 배구장이 발목을 잡았다.살림집들주변에 은행나무, 복숭아나무, 감나무를 비롯하여 갖가지 수종의 나무들과 다양한 꽃관목들, 푸른 잔디밭들이 조화를 이루어 그야말로 비단우에 꽃을 더한 격이였다.
동구길에서 만난 농장경리인 로재근동무는 불과 몇해어간에 두번씩이나 새집들이경사를 맞이한 동리에서 사는 사람들이 어제날의 모습을 털어버린 새 사람이 되였다고, 특히 리상과 포부가 높아가고있는것이 눈에 띄게 알린다고 하고나서 이렇게 말을 이었다.
《솔직히 저를 비롯한 리일군들은 몇해전까지만 해도 농촌에서 〈이쯤하면〉 하는 만족감에 사로잡혀있었습니다.우리부터가 시야가 좁고 목표가 낮았으니 농장원들이야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이렇게 말하며 그는 우리를 리발실과 미용실 등 농장원들의 편의를 도모할수 있는 조건들이 갖추어진 편의시설로 이끌었다.
그 건물은 7년전에 일떠선것이였다.사람들은 농촌에 희한한 편의시설이 생겼다고 좋아했고 더우기 당시로서는 아근에 그만한 시설이 없었던것으로 하여 리일군들은 자기들이 이루어놓은 자그마한 성과에 만족해하였다.
만족병에 걸려 더 높고 대담한 목표를 제기하지 못하던 그들을 정신차리게 해준것은 새시대 농촌혁명강령실현의 첫해에 리에 일떠선 백수십세대의 멋쟁이 새 보금자리들이였다.
온 마을이 새집들이경사로 흥성이던 날 로재근동무를 비롯한 리일군들은 평범한 농업근로자들을 공산주의사회의 첫어구에 남먼저 들어서게 하려는 당의 의도에 비추어볼 때 자기들의 리상과 목표가 너무도 낮았음을 자인하였다.
《그때부터 우리들의 만족병이 뚝 떨어졌습니다.농촌이 언제 도시를 따라가랴 하는 낡은 관념이 완전히 깨여져나간 셈입니다.》
그러면서 로재근동무는 인츰 종전의 편의시설을 헐어버리고 새로 번듯하게 일떠세우려 한다고, 마을꾸리기계획을 대담하게 세우고 일판도 통이 크게 벌리겠다고 했다.그의 진지한 어조에서도 우리는 리상을 높이 세우고 큰걸음을 내짚는 중용리사람들의 지향을 엿볼수 있었다.
이윽고 우리는 29인민반 최성희동무의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마침 점심시간이여서 집에 들어온 집주인은 과학기술서적을 마주하고있었다.알고보니 그는 제4작업반 3분조장이였다.
《몇해전까지만 해도 저는 안목이 좁은탓에 책이 아니라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농사를 지었고 과학과 기술이 아니라 경험과 뚝심으로 일했답니다.농사는 하늘이 아니라 사람이 짓고 과학이 짓는다는것을 뒤늦게야 깨달았습니다.》
최성희동무의 자책어린 목소리였다.포전으로 오고가며 하루가 다르게 솟아오르는 살림집들을 볼 때마다 그는 농사를 본때있게 지으리라 결심을 굳게 다지였다.그러나 경험과 욕망만으로는 절대로 다수확을 낼수 없었다.
몇해전 모내기때였다.그는 종전의 경험만 고집하면서 평당포기수와 포기당대수보장에서 나서는 요구를 제대로 준수하지 않았다.결국 많은 품을 들였지만 응당한 소출을 거둘수 없었다.원인을 알고싶어 그는 농장기술일군들을 찾아가기도 하고 농업과학기술도서들도 들여다보았다.그 과정에 아무리 열성이 높아도 선진영농방법의 도움이 없이는 다수확을 낼수 없다는 심각한 교훈을 찾았다.
그때부터 그는 종자선택과 소독은 어떻게 하는것이 좋고 살초제는 어느 시기에 치는것이 더 효과적인가 하는 문제를 비롯하여 모든 농사일을 기술적요구대로 하기 위하여 애썼다.
분조원들도 열심히 공부했다.하여 지난 시기 뒤떨어졌던 분조가 다수확분조의 영예를 지니였다고 하면서 최성희동무는 이렇게 말하였다.
《흔히 낟가리의 높이는 땅에 묻어가는 땀방울의 무게와 정비례한다고 하지만 저는 다르게 말하고싶습니다.전야에 땀만이 아니라 지식을 바쳐야 풍년낟가리가 높아진다고 말입니다.》
그러면서 앞으로 자기 농장에도 첨단정보기술들이 도입된 지능형통합생산체계가 구축될것이라고, 그때 한몫 단단히 하자면 더 많은 지식을 습득하여야 하겠기에 짬시간마다 책을 본다고, 분조원들의 학습열의도 대단하다고 자랑스럽게 덧붙였다.
지능화, 무인화를 지향해가는 농장의 밝은 래일을 그려보며 우리는 25인민반에서 살고있는 김영권동무의 집으로 걸음을 옮기였다.
농장에서 처음으로 논판양어를 받아들인 그도 역시 아담하게 꾸려진 방안에서 양어와 관련한 책을 보고있었다.우리에게 어줍은 표정을 짓던 그는 자기는 자랑이 아니라 교훈을 말하겠다고 하는것이였다.
《저는 한때 훌륭한 리상은 도시에서만 실현할수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입니다.》
그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되였다.
몇해전 당의 은정속에 마련된 새 농촌살림집을 받아안은 날 그는 온밤 잠들수 없었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그에게도 제나름의 리상이 있었다.하지만 농촌에서는 언제 가도 그것이 꽃필수 없다고 여기였다.그래서 포전에서 일하면서도 눈길은 항상 많은 아빠트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시내쪽을 향했다.비둘기마음은 콩밭에 가있다고 도시를 넘보며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는 그가 농사일을 잘할리 만무했다.조직과 집단에서는 자기 고장을 도시부럽지 않게 꾸려갈 생각을 하라고 충고를 주었지만 듣지 않았다.점차 일하기가 싫어졌고 사람들의 말밥에 올랐으며 나중에는 법적제재까지 받았다.
하지만 이런 그에게도 남들과 꼭같이 보금자리가 차례졌던것이다.그는 잘못 살아온 지난날을 탓하지 않고 새 농촌살림집을 안겨준 당의 은덕에 조금이나마 보답할 마음을 가다듬으며 리상을 다시 세웠다.그는 밤잠을 잊고 살았다.새벽이면 도시거름을 실어날랐고 밤에도 전지불을 켜들고 포전을 가꾸었다.이 나날 알아야 꿈도 커지고 리상도 높아진다는것을 깨닫고 농업과학기술보급실의 열성독자가 되였다.
하여 3년전부터 온 마을이 자랑하는 다수확농장원이 되였다.분배몫이 늘어나니 살림살이도 나날이 윤택해졌다.
당에서 마련해준 새 보금자리는 리상과 포부가 커가는 집이라고, 앞으로 자기 고장을 도시가 부러워하는 문화농촌으로 번듯하게 꾸리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하는 그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중용리사람들의 안목이 확실히 넓어지고있음을 느끼였다.
리상과 포부를 높이 세우고 새 생활, 새 문명을 창조하고 향유하려는 강렬한 열망은 중용리의 곳곳마다에 맥박치고있었다.
지난 시기 휴식일이면 집안에서 소소한 일거리로 시간을 보내던 농장원들이 이제는 다양한 문화정서생활을 누리고있다는 이야기, 마을에 꽃집과 함께 어항집도 늘어나고있다는 이야기, 농사밖에 모르던 사람들이 시도 쓰고 악기도 다루며 집터밭에 남새종자만이 아니라 꽃씨도 함께 뿌린다는 이야기…
들을수록 마음이 흥그러워졌다.
보다 아름다울 중용리의 래일을 눈앞에 그려보며 취재를 마치는 우리의 귀전에는 농촌변혁의 새시대에 중용리라는 지명의 의미도 달라져가고있다고 하던 리당일군 박철석동무의 말이 되울려왔다.
《마을의 면모로 보나 농장원들의 생활수준으로 보나 도시부럽지 않은 우리 고장을 찾는 사람들마다 중용리의 의미가 완전히 달라졌다고 말합니다.벌의 한가운데가 아니라 문명의 한복판에 있다고 말입니다.》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높은 리상과 포부를 가지고 자기 고장에서 새 생활, 새 문명을 창조하고 향유해가는 중용리사람들의 미더운 모습은 새시대 농촌혁명강령의
그래서 기행길을 이어가는 우리의 마음도 사뭇 흐뭇하기만 하였다.
글 본사기자 신철
사진 본사기자 신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