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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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7월 20일 월요일 2면

속사리가 전하는 이야기

위대한 수령님께서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금강군 속사리인민들에게 안겨주신 은혜로운 사랑


전승절이 하루하루 다가오고있다.

이 땅 그 어디에서나 위대한 전승을 안아오신 어버이수령님에 대한 열화의 그리움이 뜨겁게 흐르고있고 그 누구의 마음속에서나 수령님을 흠모하는 격정의 노래가 끝없이 울려나오고있다.

그와 더불어 우리 수령님께서 인민을 얼마나 사랑하시였는지, 이 나라의 평범한 사람들이 그이의 심중에 얼마나 귀중한 존재로 자리잡고있었는지를 가슴뜨거이 알게 해주는 감회깊은 이야기들도 만사람의 심금을 울리며 전해지고있다.

그가운데는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1211고지와 더불어 인민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진 강원도 금강군 속사리에서 있었던 하나의 감동깊은 사실도 있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참으로 김일성동지는 력사에 있어본적이 없는 혁명의 위대한 수령, 인민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시며 만민이 우러르는 절세의 위인이시다.》

강원도 금강군 속사리라는 지명은 우리 전승사에, 후대들의 기억속에 전선원호의 상징으로 뚜렷이 아로새겨져있다.

가증스러운 적비행기의 폭격으로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잃고서도 눈감은 살붙이를 땅에 묻은 그 걸음으로 무거운 벼가마니를 등에 진채 방아간으로 향했던 사람들, 씨뿌린 밭이 폭격으로 뒤집히면 다시 밭을 갈고 또 씨를 뿌린 사람들, 그렇게 가꾼 곡식을 불타는 고지에로 목숨을 내대고 날라간 사람들이 바로 속사리사람들이였다.

바로 그런 속사리사람들의 행적에 싸우는 고지에로의 원군길만이 아닌 전선에서 후방에로의 안전한 소개길도 있었음을 우리는 그 시기의 체험자들의 회상자료를 통하여 새롭게 알게 되였다.

당시 금강군 속사리에서 전쟁을 체험한 평안남도 회창군의 리옥영녀성은 이렇게 회상하였다.

《그때 제 나이가 7살이였습니다.지금도 기억에 생생합니다.1951년 11월 첫눈이 내릴 때 우린 속사리로부터 100리안팎에 있는 안전한 지대인 산월리로 소개할데 대한 지시를 받고 소개길에 올랐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전쟁이라면 의례히 있게 되는 소개나 피난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였다.

바위가 부서져 가루가 되고 다람쥐마저 몸둘 곳을 몰라 전사들의 품으로 뛰여들었다는 우리 조국의 영웅고지 1211고지와 잇닿아있는 최전방의 화선지대였던 속사리, 적기들의 맹폭격과 포격, 기총사격으로 모든것이 불타고 페허로 되였던 때에 인민들의 운명을 구원해준 집단소개에 대한 이야기는 정녕 얼마나 위대한 사랑의 세계를 전하고있는것인가.

가장 횡포한 제국주의떼무리와의 가렬한 전쟁을 가장 열렬한 사랑과 정으로 이기신 우리 수령님의 빛나는 전승사의 갈피에는 1951년 10월 20일에 하신 뜻깊은 교시가 기록되여있다.

이날 오후 군사부사령관으로부터 전화로 강원도인민들이 전선원호사업에 모든것을 다하고있다는 보고를 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선지역 인민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고 하시면서 자신께서 전번에 1211고지일대에 나갔다 돌아오는 길에 그곳 인민들을 만나보았다고, 그들이 전선원호에 모든것을 다할수록 그들을 후방으로 소개시켜 미제의 폭격으로부터 인명피해도 막고 생활도 안착시켜주어야 하겠다는 결심이 더욱 굳어진다고 교시하시였다.

우리 수령님께서 1211고지일대에 나갔다 돌아오는 길에 만나보았다시며 감회깊이 추억하신 인민들, 그들이 바로 강원도 금강군의 속사리사람들이였다.

이제는 세상이 다 아는 이야기이지만 1951년 9월 지혜산에 오르시여 적들의 《추기공세》를 짓부셔버리기 위한 승리의 붉은 화살표를 힘있게 그어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산을 내리시는 길에 속사리에 있는 불당골의 한 농가에 들리시였었다.

한창 조마당질을 하고있던 집주인의 인사를 반갑게 받아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실한 조이삭을 손에 드시고 조농사를 잘 지었다고 못내 만족해하시면서 여기서 사는지 오래되였는가, 식구는 몇이나 되며 군대에 나간 아들이 있는가고 다정히 물으시였다.

농민은 송구스러운 마음을 안고 아들이 둘씩이나 있는데 몸이 편치 못하여 군대에는 나가지 못하고 소를 몰고 직동령과 매봉산에 전선원호사업을 나갔다고 말씀드리였다.그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호탕하게 웃으시며 전선에서 원쑤놈들과 직접 가슴팍을 맞대고 싸워야만 전쟁승리에 이바지하는것이 아니라고, 아들들이 군대에는 나가지 못했어도 이렇게 인민군대를 도와서 잘 싸우고있지 않는가고 하시면서 그의 마음을 너그러이 풀어주시였다.

그때 우리 수령님의 마음속에 원군길에 모든것을 다 바치는 속사리사람들에 대한 더없는 사랑과 함께 불비쏟아지는 전선지역 인민들의 생명을 무조건 끝까지 지켜주실 의지가 얼마나 억세게 자리잡았는가를 10월의 그 뜻깊은 교시가 다 전하여주고있다.

인민의 생명안전, 실로 이것은 가렬한 전쟁의 3년간 우리 수령님의 심중을 한시도 떠난적 없는것이였다.

한초한초의 시간, 한명한명의 전투원이 그리도 귀했던 때에 적후에 떨어진 한 어린이를 위한 구출작전을 몸소 조직해주시고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 미처 안전한 지대로 피신하지 못한 유가족이 있다는것을 아시고 친히 자동차까지 보내주시여 도와주도록 해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열화같은 인민사랑의 분분초초가 그대로 전쟁의 2만 7 000여시간이 되지 않았던가.

《속사리에서 산월리로 소개되여갈 때 저를 비롯한 아이들과 애기어머니, 로인들과 환자들은 군용차까지 타고갔습니다.그 군용차들은 1211고지쪽에서 나왔는데 산월리로 가는 교차점인 신교리까지 우리를 태워다주고 돌아갔습니다.》

당시에는 7살밖에 안되는 철부지소녀로서 전선으로 달리는 그 군용차들에 탄약 한발, 식량 한가마니도 실어준적 없는 자기들을 위해 포화속을 누비며 군용차들이 달렸다고 이야기하는 회상자의 목소리는 눈물에 젖어있었다.

살륙과 파괴의 대명사이며 가장 참담한 불행의 근원인 전쟁,

이 처절한 소용돌이속에서 인명피해나 희생은 불가피한것으로 되여왔다.전선으로 한시바삐 달려야 할 중요군수기재가 평범한 인민들의 소개사업에 동원된다는것 또한 도저히 믿을수 없는 일로 되여왔다.

허나 우리가 피로써 지키려는 조국이란 곧 인민의 생명이고 생활이며 미래라는 가장 숭고한 인민관을 지니신 우리 수령님께 있어서 전선의 용사들만이 아닌 후방인민들 한사람한사람의 생명은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가장 귀중한것이였다.

하기에 우리 수령님의 구상과 결심의 첫자리에는 언제나 인민의 생명안전이 놓여있은것 아니던가.

《속사리에서 안전한 지역인 산월리에 가보니 이미 수십채의 빈집까지 마련되여있었습니다.탄우가 비발치는 화선에서 후방으로 옮겨온것만 해도 꿈만 같았는데 소개후의 생활조건까지 보장되여있었으니 정말 그때 어린 마음에도 놀라움을 금할수 없었습니다.》

들을수록 가슴젖는 이야기였다.

위험에 처했던 인민들의 생명뿐 아니라 생활까지도 다 맡아주는 이렇듯 위대한 사랑이 전쟁의 참화속에서 이 나라 인민을 품어안고 지켜준것 아니던가.

속사리사람들은 싸우는 이 나라 그 어디에서나 볼수 있었고 만날수 있었던 너무도 평범한 사람들이였다.

바로 이런 사람들을 위해 전쟁의 중하를 한몸에 걸머지신 우리 수령님의 사랑의 교시들이 전파를 타고 울렸고 철화속을 누비며 군용차들이 달렸으니 조국해방전쟁의 승리는 곧 우리 수령님의 인민에 대한 열화같은 사랑의 승리임을 가슴뿌듯이 절감하게 해주는 이런 이야기들이 그 얼마나 많이 새겨졌던가.

그렇다.속사리사람들의 남다른 체험에 대한 이야기는 간고하고 준엄한 시련의 시기일수록 인민을 더 뜨겁게 품어안아 생을 이어주고 빛내여주는 조선로동당의 본도가 어디에 그 뿌리를 둔것인가를 뚜렷이 증명하고있다.

리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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