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고불멸의 항쟁사를 길이 전하는 혁명의 성지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를 찾아서(3)
《세상에
삼지연못가를 떠난 우리의 일행은 해가 서산으로 뉘엿뉘엿 넘어갈무렵에야 무두봉등판에 이르렀다.
하늘이 불그스레한 노을빛으로 물들기 시작하더니 뒤이어 천리수림은 온통 이글이글 불타는듯싶었다.
우리는 서둘러 무두봉밀영을 찾았다.
무두봉허리의 넓은 구간에 전개되여있는 밀영은
백두산혁명전적지관리소 교양과장 김금향동무의 말에 의하면
그의 이야기를 듣느라니 잊지 못할 그날의 숭엄한 화폭이 금시 어려오는듯싶었다.
혁명전적지들에 소중히 보존되여있는 하나하나의 사적건물과 사적물들은 물론 백두대지의 나무 한그루, 풀 한포기에도
백두산정을 오래도록 바라보시며 백두산에 오면 어떤 신념과 의지로 혁명의 전구들을 지켜야 하며 어떤 마음가짐으로 이 한길만을 가야 하겠는가 하는 결심이 더욱 굳어진다고, 그래서 마음과 어깨는 무거워지지만 새로운 힘이 용솟음친다고 하신
무두봉을 내린 후 백두산아래 첫 려관으로 불리우는 무두봉답사자려관에 이르니 많은 답사자들로 붐비였다.
혁명의 성산 백두산정으로 오르려면 이곳에서 하루밤을 묵고 올라가야 한다고 우리를 안내하던 일군은 이야기하였다.
온 나라가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답사열기로 끓고있다는것을 웅변적으로 보여주는 이곳에서 류숙하면서 우리는 빨찌산의 숙영의 밤처럼 답사자들이 오락회를 펼친 모습도 목격하였다.
백두산으로 향한 출발의 아침이 드디여 밝아왔다.차창으로는 백두산의 웅장한 모습이 안겨왔고 삼복철도 다 잊혀질듯 때없이 랭기서린 바람이 세차게 불어쳤다.
높이 자란 나무들로 무성한 숲은 점차 키를 낮추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수림이 끝나고 부석들이 깔린 등판이 나지기 시작했다.
백두다리를 가까이하여 차에서 내려서니 여기서부터는 키낮은 나무마저도 볼수 없고 만병초며 이름모를 들꽃들만이 바람에 흔들거렸다.
우리는 백두산정에로 오르기 시작하였다.
로상에는 비줄기가 휘뿌려지기도 하고 짙은 안개로 한치 앞도 가려볼수 없다가도 일순간에 밝은 해살이 백두산의 봉우리들을 환히 비쳐주는 등 천변만화가 펼쳐지였다.드디여 우리는 백두산정에 올랐다.신기하게도 안개가 말끔히 걷히였는데 우리는 격정을 누를길 없어 붉은기를 흔들며 일제히 환성을 올리였다.
천지호반과 층암절벽너머로는
백두산남쪽의 청봉과 베개봉, 곤장덕과 삼지연, 동쪽으로 두만강의 흐름을 따라가며 펼쳐진 무포와 대홍단…
참으로 백두산의 줄기줄기마다에는 인민의 자유와 해방을 위하여, 조국의 자유독립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치신
백두산정에서의 시간은 살같이도 흘러갔다.
우리의 마음속에는
소백수골에 들어선 우리는 먼저 절세위인들의 영상을 모신 모자이크벽화에 정중히 인사를 드리였다.
우리의 눈앞에는 간고한 항일전의 나날 성스러운 조선혁명의 책원지였던 여기 백두산밀영을 찾으시였던
몇발자욱만 내짚으시면 백두산밀영고향집뜨락에 들어서시련만 걸음을 돌리시던
푸른 밀림을 향해 뙤창문을 건듯 들고 오늘도 항일전의 못잊을 사연들을 전하여주는듯싶은 추억깊은 고향집, 사연깊은 노루발쪽문손잡이이며 쪽무이포단, 통나무벽체에 걸려있는 초연스민 배낭들…
그 모든것에 어리여있는 절세위인들의 뜨거운 숨결, 잊을수 없는 력사의 나날들을 생생히 전하는 백두산밀영고향집을 앞에 두시고 우리의
백두산에 첫 자욱을 내디디신 때로부터
그날
그이의 말씀에 담겨져있는 심오한 뜻을 다시금 새겨보며 붉게 타오르는 노을과 같이 숭엄한 빛을 발산하는 붉은기를 바라보느라니 백두산에 뿌리를 둔 우리 혁명이 무엇으로 하여 그토록 위대하고 끝없이 강화발전되는가에 대한 생각으로 가슴은 세차게 높뛰였다.
바라보면 볼수록 붉은기 나붓기는 이 귀틀집에서 발톱까지 무장한 강도 일제와 싸워이길 비범한 전략전술과 조국해방의 웅략을 무르익히시던
우리의 가슴속에는 백두의 광풍에도 굽힘없이 서있는 붉은기의 넋이 그대로 신념의 기둥이 되여 억척같이 자리잡고있었다.
백두산밀영지구 혁명전적지관리소 소장 최련희동무는 우리에게 이런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우리 인민의 마음의 기둥인 백두산에 밀영들이 건설된 때로부터, 다시말하여 소백수골에 혁명의 사령부가 꾸려지게 된 때로부터 백두산밀영은 조선혁명의 본거지로, 중심적령도거점으로 되였다.백두산밀영은 조선혁명의 책원지인 동시에 심장부였으며 조선인민혁명군의 중핵적인 작전기지, 활동기지, 후방기지였다.
바로 백두산밀영으로부터 미구에 수많은 비밀근거지들이 생겨나 북부, 중부조선의 곳곳에 부채살같이 뻗어나갔다.
우리는 그의 안내를 받으며 사자봉밀영, 선오산밀영, 곰산밀영, 압록강안밀영을 비롯한 위성밀영들도 돌아보았다.
다음날에는 백두산밀영지구를 떠나 대홍단혁명전적지에 이르렀다.
대홍단벌이 펼쳐진 곳, 300여명의 적들에게 무리죽음을 준 전적지에는 무산지구전투승리기념탑이 높이 솟아있어 우리들의 추억을 1939년의 그 나날에로 이끌어갔다.
항일전의 군복차림 그대로이신
이어 우리는 력사의 자욱을 더듬어가며 신사동혁명전적지와 무봉혁명전적지를 거쳐 삼지연시에 도착하였다.
시내에 들어서던 우리는 눈앞에 펼쳐진 환희로운 현실에 다시금 감탄하지 않을수 없었다.
뭇사람들이 일컬어온 천지개벽이라는 말만으로야 어찌 이 변혁의 폭과 깊이를 다 표현할수 있겠는가.
시내의 여러곳으로는 봇나무거리, 밀영거리, 청봉거리, 리명수거리, 못가거리, 베개봉거리가 시원히 뻗어있었다.그 량쪽으로 색갈도 각각이고 모양새도 특색있는 공공건물들과 살림집들이 산간특유의 이채로움을 뽐내고있었다.
현대적인 지방공업공장들과 병원이며 학생소년궁전은 물론 특색있는 문화휴양지와 봉사시설들까지 그쯘하게 갖춘 삼지연시는 실로 모든것이 지방이 변하는 우리 시대의 숨결로 높뛰는 고장, 세기를 뛰여넘은 인민의 리상향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닐만큼 백만점짜리 산간문화도시였다.
이 백두산아래의 첫 도시를 두고 과연 누가 그전날의 처서군마을이라고 감히 말할수 있으랴.
중앙이 지방을 부러워하게 하고 지방의 진흥이 우리 국가의 전진과 발전을 대표하게 하는 거창한 우리 위업의 본보기, 기준이 바로 여기 백두산아래 첫동네에 펼쳐졌다는 그 자체가 백두에서 시작된 혁명의 명맥을 천대만대로 굳건히 지켜가려는 우리 당의 투철한 뜻과 의지를 보여주는것 아니랴.
더욱 이채로운것은 삼지연시가 수많은 답사자들과 관광객들로 흥성이고있는것이였다.
어머니당의 은정속에 백두의 대자연과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 독특한 건축미와 특색있는 봉사기능을 갖추고 솟아오른 여러 봉사기지에서 사람들은 삼지연지구의 경관부감과 온천욕 등 이곳 특유의 정서와 별미를 맛보며 관광의 나날을 즐겁게 보내고있다.
우리는 경건한 마음을 안고 백두밀림에 거연히 서시여 조국강토를 환한 미소속에 바라보시는
그러느라니 삼지연시를 혁명전통교양의 위력한 거점으로, 문명한 산간도시의 전형으로 훌륭히 꾸리는것은
실로
만고의 영웅, 절세의 애국자이신
그 따뜻한 축복속에 우리 조국이 줄기차게 전진하고 우리 인민의 천만가지 행복이 꽃펴난다는 생각으로 우리의 가슴은 마냥 부풀어올랐다.
* *
조국해방 81돐을 맞으며 이어진 우리의 백두산기행길은 여기서 끝났다.
비록 길지 않은 나날이였지만 그것은 탁월한
필승의 신념과 의지를 백배해주는 백두의 행군길, 이길을 걷고 또 걸으며 우리 인민은
본사기자 박세진
특파기자 전철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