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울려오는 전세대들의 목소리
부단한 전진과 혁신에 참다운 충성과 애국이 있다
조선혁명박물관에 전시된 60여년전 황해제철소 강철직장의
2중천리마직장궐기결의문을 펼치고
시대가 발전하고 조국이 전진할수록 오늘의 성과에 자만할것이 아니라 포부와 리상, 목표를 더 높이 세우고 계속혁신, 계속전진의 한길로 줄달음쳐야 한다는것이다.
바로 이것이 참다운 충성이고 애국임을 60여년전 황철의 로동계급은 자기들의 헌신적인 땀과 노력으로 우리 혁명사의 갈피에 뚜렷이 아로새기였다.
《로동계급의 대는 바뀌여도 당과
조선혁명박물관에는 1960년대 황해제철소 천리마강철직장의 로동계급이 2중천리마직장칭호를 쟁취할것을 궐기해나선 때로부터 그 영예를 지니는 날까지 8년 남짓한 기간에 무려 5번이나 스스로 보충, 갱신하여온 결의문이 전시되여있다.
온 나라의 방방곡곡에서 기적의 천리마가 기세차게 날아오르던 그때 그들은 전국천리마작업반운동선구자대회에서 하신
이에 만족하지 않고 그들은 몇달후 또다시 2중천리마직장칭호를 쟁취할것을 궐기해나섰다.그때가 바로 1962년 1월이였다.모두가 천리마를 탄 기세로 달리고있는 때에 답보 그 자체는 곧 퇴보이며 오직 부단한 전진과 혁신으로써만 당에 대한 충성심을 검증받을수 있다는것이 당시 그들모두의 가슴속에 간직된 굳은 신념이였다.
그들의 한결같은 심정을 반영한 2중천리마직장궐기결의문에는 이런 내용들도 있다.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구호밑에 서로 돕고 이끄는 공산주의집단으로 꾸리겠다.》
《국가계획 33만t에 비해 증산과제 50만t을 어김없이 보장하기 위해 로의 천정수명을 120회이상 보장하겠다.
1호평로는 80t에서 100t으로, 2호평로는 100t에서 150t으로, 5호평로는 고정로로 개조하겠다.
로동생산능률을 125%이상 제고하겠다.》
사회주의경제건설의 1211고지를 맡겨준 당의 크나큰 믿음과 기대에 강철증산성과로 보답하려는 황철로동계급의 충성심의 열도가 결의문의 글줄들에 그대로 비껴있다.
그때부터 그들은 결의문에 쪼아박은대로 강철생산을 늘이기 위해 하루하루를 충성과 애국의 나날로 이어갔다.
제일먼저 기치를 든 사람들은 2호평로의 용해공들이였다.그들은 제강시간을 종전보다 3시간 45분이나 단축하는 기적을 창조함으로써 1962년 새해에 들어와 단 열흘동안에 계획보다 260여t의 강철을 더 생산해냈다.그들의 모범을 본받아 3호, 4호평로에서도 혁신을 창조하였다.
그뿐이 아니다.1호평로작업반에서는 로안의 온도를 책임적으로 보장함으로써 한차지당 평균 116t, 최고 130t의 강철을 생산하여 작업반이 생겨 처음 보는 놀라운 혁신적성과를 이룩하였다.
그러던 1962년 8월말, 황철로동계급은
올해에 강철고지를 점령하는가 못하는가 하는것은 전적으로 황해제철소 강철전사들이 어떻게 투쟁하는가에 달려있다고 말할수 있다고,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기간에 강철고지를 점령하기 위하여 120일전투를 벌려야 하겠다고 하신
강철직장 로동계급의 이런 불같은 일념에 떠받들려 일평균 강철생산량은 1 200t수준을 뛰여넘었다.
강철생산량이 뛰여오르게 되자 조괴공들도 분발해나섰다.그들은 매일 예견했던 계획량보다 더 많이 쏟아져나오는 쇠물을 한g도 허실하지 않기 위해 현장에서 낮과 밤이 따로없이 교대로 작업을 진행해나갔다.
이렇게
이들의 투쟁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1963년에 들어와 이들은 하루에 평균 1 300~1 400t의 강철을 생산하여 한해동안에 2만 2 900여t의 강철을 증산하였고 1964년에는 추상수영웅을 비롯한 5호평로의 용해공들이 180t짜리 평로를 200t능력으로 개조하여 년간 1만t의 강철을 더 뽑아낼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았다.1965년에는
사실 이러한 기적적인 성과만으로도 그들은 벌써 2중천리마직장의 영예를 지닐수 있었다.하지만 그들은 자기들이 내세웠던 목표를 달성했다고 서뿔리 인정하지 않았다.
시대가 발전할수록 어디서나 더 요구되는것이 바로 강철이 아닌가.오늘의 성과, 지금의 생산량으로 만족할수 없다.당이 바라고 조국이 요구한다면 우리는 강철생산목표를 더 높이 세워야 한다.…
바로 이런 사람들이였기에 1967년에 들어와 그들은 5년전에 작성하였던 2중천리마직장궐기결의문을 두차례나 수정보충하였다.
《올해 강철생산계획 55만t을 12월 10일까지 완수하며 올해말까지 5만t을 증산하겠다.》
그 맹세를 실천하기 위하여 굴함없는 투쟁을 벌려온 그들은 1969년 9월
그들의 분발심은 1970년에 들어서면서 더욱 고조를 이루었다.영광스러운 당 제5차대회가 열리게 될 뜻깊은 해를 보통때처럼 보낼수가 없었던것이다.하기에 그들은 또다시 결의문을 펼쳐들었다.
거기에 《보충결의문 1970년 2월 15일》이라고 써넣은 강철직장 로동계급은 그밑에 당대회전으로 년간계획 80만t을 어김없이 수행하며 절약투쟁을 강화하여 있는 설비와 자재, 로력으로 생산을 보장할것을 쪼아박았다.
그것은 결코 말로 하는 맹세가 아니였다.영광스러운 당대회를 높은 로력적성과로 맞이하기 위해 떨쳐나선 강철직장의 로동계급은 말그대로 하루하루를 열흘, 백날맞잡이로 살며 투쟁하였다.
그 나날 직장안의 전체 용해공들은 서로 힘과 지혜를 모아 평로의 구조를 기술적으로 개조하는 한편 선진적인 기술에 의한 새로운 용해방법을 적극 받아들여 제강시간은 년초에 비하여 평균 2시간반이나 줄였으며 시간당생산성은 1.8배이상으로 높이는 성과를 거두었다.
전국적인 제철, 제강부문의 직종별사회주의경쟁에서 4월에는 황철의 강철직장 5호평로가 단연 1등의 자리를, 5월과 8월에는 4호, 1호평로가 각각 2등의 자리를 차지했다는 사실, 한 로장이 공훈용해공칭호를 수여받은 사실을 놓고서도 이들의 투쟁열이 얼마나 뜨거웠는가를 잘 알수 있다.
조선로동당 제5차대회를 몇달 앞두고 그들은 강철증산으로 당을 받들어갈 신념의 맹세를 담아 보충결의문을 또다시 채택하였고 그 결의를 끝까지 실천하였다.
그렇게 8년 남짓한 기간에 여러 차례 보충결의문을 채택하면서 부단히 전진하여온 강철직장의 천리마기수들은 1970년 11월 마침내 2중천리마기수의 값높은 영예를 지니게 되였고 직장은 2중천리마직장으로 되였다.
그때로부터 세월은 멀리도 흘러 수십년전 황철의 전세대 로동계급이 불꽃튀는 용해장에서 리용하던 결의문의 표지도 이제는 색이 바랬고 그안의 글줄도 잘 알아볼수 없다.그러나 거기에는 오늘도 새세대 로동계급이 후세토록 변함없이 계승해야 할 참다운 삶의 귀감, 투쟁의 본보기가 있다.
바로 그것은 당의 구상을 앞장에서 받드는 참된 혁명가, 조국의 전진속도에 보폭을 맞추는 열렬한 애국자가 되려거든 단 한시도 정체함이 없이 부단한 전진과 혁신의 활로를 개척하며 끊임없이 배가되는 분발력을 발휘해야 한다는것이다.
이 땅에 생을 둔 사람들이여, 다시금 새겨안자.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전세대가 지녔던 충성과 애국의 정신을 만장약하고 부단히 높이 세운 목표를 점령하기 위해 분발하고 또 분발한다면 누구나 오늘의 진군길에서 영예로운 승리자가 될것이다.
본사기자 안정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