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은 어떤 일군들을 기억하는가
취재길에 우리는 종종 이런 목소리를 듣군 한다.이 체육관과 은덕원은 전 군당책임비서가 발기하고 일떠세운것인데 지금도 덕을 톡톡히 본다.이 다리는 전 리당비서가 있을 때 건설한것인데 차디찬 물속에 남먼저 뛰여들어 교각을 일떠세우던 그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삼삼하다.…
참된 생의 자욱은 세월의 이끼에 덮이지 않는다.하다면 인민은 어떤 일군을 영원히 기억하는것인가.
《자신을 위해서는 비록 남기는것이 없어도 인민을 위해 자신을 바치는것을 더없는 생의 보람으로, 량심으로 여기고 투쟁할 때 참된 영예가 차례지는것이며 그런 일군을 당과 인민은 언제나 기억하고 자랑하게 되는것입니다.》
얼마전 정평군에 대한 취재길에서였다.
금진강6호청년발전소에 이른 우리는 웅장한 언제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한 로인을 보게 되였다.발전소건설에 참가했다는 정평군 읍 150인민반 문상율로인이였다.
집집의 창가마다 흘러넘치는 밝은 불빛을 보느라면
오랜 세월 재난만을 들씌운 금진강을 다스리는것은 정평사람들의 세기적인 숙망이였다.발전소를 건설하면 농사에 필요한 물문제도 전기문제도 풀수 있었지만 막대한 세멘트와 로력, 륜전기재때문에 계속 미루어왔다.
그런 어려운 건설을 고난의 행군시기에 군자체의 힘으로 해낼 대담한 용단을 내린 사람이 바로 오기석책임비서였다.귀한 세멘트로가 아니라 이 고장에 흔한 돌과 자갈, 모래와 진흙으로 언제를 쌓아 물문제도 전기문제도 완전히 풀자는것이 그의 결심이였다.
발전소건설은 정말 힘겨웠다.하지만 행복은 누가 가져다주는것이 아니라 제손으로 창조해야 한다면서 기초굴착작업장에 남먼저 뛰여들고 차오르는 물을 퍼내기 위해 바닥에 들이댄 뜨락또르의 운전칸에 위험을 무릅쓰고 오르는 등 어려운 고비마다에 어깨를 들이미는가 하면 때로는 방송선전차의 마이크를 들고 《어디에 계십니까 그리운
그처럼 어려웠던 시기 발전소건설의 선구자가 된 영웅책임비서를 정평사람 누구나 잊지 못해한다면서 로인은 눈굽을 찍었다.
세상을 떠난 후에도 사람들의 추억속에 언제나 살아있는 모습으로 남아있다면 그 생은 얼마나 값있고 고귀한것인가.
성천군 향풍리에도 인민이 잊지 못하는 참된 일군이 있다.
20여년간 리당비서로 사업한 주영순동지이다.
수십년전 농장을 찾으신 그날 청년들이 대를 이어 자기 고향땅을 사회주의문화농촌으로 건설해나가도록 하여야 한다고 하신
마음속고충이 있거나 성격상결함이 있는 청년들을 따뜻이 품어안고 지새운 밤과 걸은 길은 또 얼마였던가.
다심한 그 손길에 떠받들려 수많은 청년들이 농장의 기둥감들로 자라났고 청년동맹 제6초급단체는 전동맹적으로 제일먼저 《청년전위3중모범초급단체》칭호를 수여받는 영예를 지니였다.
청년들과의 사업에 힘을 넣어 농촌진지를 억세게 다지고 그 위력으로 수많은 창조의 열매를 안아올린 리당비서의 모습은 수십년세월이 흐른 오늘도 향풍리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져있다고 농장관리위원회일군인 한명철동무는 격정을 터놓았다.
인민이 기억하고 자랑하는 일군들이 어찌 그들만이겠는가.
위원군 고보리에는 농장마을을 인민들의 리상향으로 꾸릴 목표를 안고 한생을 불같이 산 전 리당비서 김득암동지에 대한 추억이 끝없고 흥남의 비료생산기지에는 한창나이에 순직한 김승일책임비서의 령전을 찾은 한 로동자의 어린 아들이 술을 부으며 큰아버지라고 애타게 찾으면서 섧게 울었다는 눈물겨운 이야기가 오랜 세월이 흐른 오늘도 전해진다.
인민의 눈과 목소리는 참과 거짓을 가르는 시금석이다.
인민의 행복을 위함이라면 목숨까지도 서슴없이 바칠 각오가 되여있는 일군, 언제나 인민을 위한 근심을 놓지 않고 불같이 사는 일군만이 대중의 인정을 받을수 있으며 그들의 추억속에 길이 남아있는 법이다.
인민이 인정하고 기억하는 생을 살라, 바로 여기에 일군의 존재가치가 있고 당과 인민의 기대에 보답하는 길이 있다.
이것이 참된 일군들의 삶이 후세토록 전하는 메아리이다.
본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