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운명 보살펴준 따뜻한 손길
우리 집에는 내가
한상은 2015년 5월 제2차 전국청년미풍선구자대회에 참가하여
내 인생의 전부와도 같은 영광의 기념사진들을 바라볼 때마다 나의 가슴속에는 벅찬 시대의 기슭으로 밀려날번했던 이 몸을 따뜻이 손잡아 이끌어주고 영광의 절정에 거듭 내세워준 어머니당에 대한 고마움이 북받쳐오르군 한다.
《우리 당은 어머니당입니다.》
군사복무를 마친 내가 천성청년탄광에서 사회생활의 첫발을 내짚은것은 지금으로부터 10여년전이였다.채탄공으로부터 시작된 탄광생활은 말처럼 쉽지 않았지만 나는 탄광일군들과 오랜 탄부들의 방조속에 인차 혁신자의 영예를 지니게 되였으며 얼마후에는 청년동맹초급일군으로 자라났다.
그러나 탄광속보판에 이름이 자주 오르고 사업에서 내밀성이 있다는 평판을 받게 되자 나의 머리속에는 저도 모르게 소총명이 자리잡기 시작하였다.자기를 키워주고 내세워준 당의 은덕을 잊고 제 잘난듯이 행동하던 나는 종당에는 엄중한 과오를 범하게 되였다.
그때 나의 가슴속에는 절망감이 가득차있었다.
당의 믿음과 기대를 저버린 사람이 갈 길은 명백하다는 뼈저린 자책으로 하여 앞이 보이지 않았다.
낳아키워준 부모조차 못난 자식이라고 꾸지람하던 그때 나를 변함없이 품어안아준것은 당조직이였다.
나는 지금도 법적처벌을 받고 돌아온 나를 따뜻이 맞아주며 이제부터 새 출발을 하자고 힘과 용기를 안겨주던 탄광초급당비서동지의 모습을 잊을수가 없다.
그때로 말하면 지난날 잘못 살아온 청년들이 인생의 새 출발을 결심하고 너도나도 평남탄전으로 달려오던 때였다.
탄광당조직에서는 그들로 청년돌격대들을 조직해주고 그중 한 돌격대의 대장으로 나를 내세워주었던것이다.
그날 나는 어린애처럼 소리내여 울었다.
어머니의 다심한 마음으로 보살펴주는 당조직의 믿음을 순간이나마 저버렸댔다는 자책감과 못난 자식일수록 더욱 따뜻이 품어안아 내세워주는 어머니당에 대한 고마움이 가슴속에 밀물처럼 차올랐다.
그리고 결심했다.이렇듯 고마운 품을 위해 숨이 지는 순간까지 석탄산을 쌓겠다고.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얼마나 사려깊은 눈길이 나를 비롯한 청년돌격대원들의 투쟁모습을 지켜보고있는지 미처 다 알지 못했다.
리수복영웅의 넋을 이어받은 새 인간들로 다시 태여나길 바라는 당조직의 기대와 믿음을 온몸으로 느끼며 나와 돌격대원들이 수천척지하막장에서 헌신의 구슬땀을 아낌없이 바쳐가고있을 때 한가슴에 받아안기엔 너무도 벅찬 소식이 전해졌다.
감격도 새로운 2015년 2월 14일 우리 도에서만도 100여명의 청년들이 새 출발을 했다는 보고를 받으신
사실 도리로 본다면 죄많은 우리들에게 새삶을 안겨주신
하지만 이것은 우리가 받아안은 영광의 시작이였다.
그로부터 몇달후
정말이지 병든 자식, 상처입은 자식을 탓하지 않고 더 마음을 쓰며 사랑과 정으로 안아주는 품이 바로 어머니당의 품이였다.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은 그 사랑의 품속에서 그후 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창건 70돐 경축행사에 참가하는 영광도 지니였고 한개 갱을 책임진 일군으로까지 성장하였다.
이렇듯 지금까지 받아안은 사랑만 해도 분에 넘친데 나는 또다시 최상의 영광을 누리게 되였다.
지난 3월 15일에 우리 탄광에 찾아오신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꼭 꿈을 꾼것만 같다.
그날 촬영대에 서있는 우리들에게 다가오신
진정 길을 헛들세라, 힘이 진할세라 이끌어준 그 손길이 아니였더라면 어떻게 불미스러운 과거를 안고있는 내가 그렇듯 빛나는 삶의 절정에 오를수 있었겠는가.
그날 나는
나는 오늘도 그날의 맹세를 가슴깊이 간직하고 막장길을 걷는다.
해빛 한점 스며들지 않는 수천척지하막장이지만
이 땅에 태여나 자라난 청년이라면 한사람도 남김없이 모두다 공산주의사회까지 데리고가자는것이 우리 당의 확고한 의지라고 하시며 병든 자식, 상처입은 자식일수록 더 따뜻이 품어 그늘없이 내세워주시는
그이를 받드는 길에 나만이 아닌 우리 청년갱안의 전체 탄부들은 모든것을 다 바쳐갈것이다.
천성청년탄광 청년갱 갱장 리유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