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원의 영예는 오직 실천속에
연공으로 근 40년
김책제철련합기업소 강철2직장 연공작업반 로동자 고일복동무는 높은 당적자각과 순결한 애국적량심을 지니고 일터를 성실하게 지켜가는 참된 당원이다.
군사복무시절 당원의 영예를 지니고 북방의 철의 기지에 제대배낭을 풀어놓은 그는 수리작업반에 배치받았다.
하지만 그는 자기를 연공작업반에 보내줄것을 제기하였다.어렵고 힘든 일의 앞장에서 진격로를 열어나가는 선봉투사로 한생을 살려는 결심에서였다.
당조직에서는 그의 제기를 지지해주었다.
연공작업이 선행되여야 설비보수를 제때에 할수 있고 강철생산도 높일수 있다는것을 깊이 자각한 그는 기술기능수준을 제고하기 위해 피타는 노력을 기울였다.
언제나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였고 오랜 기능공들을 찾아다니며 작업의 묘리와 방법을 터득하기 위해 애썼다.그리하여 그의 기술기능수준은 한해가 다르게 높아졌고 연공작업에서 무슨 문제가 제기되면 사람들은 그부터 찾았다.
언제인가 련속조괴기전복기보수과업이 나섰을 때였다.좁은 공간에서 권양기만 리용하여 수십t의 설비를 짧은 시간에 들어올린다는것은 쉬운 일이 아니였다.
이때 로동자들의 앞장에 선 사람이 고일복동무였다.그는 고심어린 탐구와 기발한 착상으로 작업을 순조롭게 할수 있는 대담하고 혁신적인 방안을 제기하였다.
련합기업소의 기술일군들도 그의 발기를 지지하였다.그리하여 전복기보수를 제때에 원만히 진행할수 있는 담보를 마련하였다.
연공작업반 로동자들의 평균기능급수가 련합기업소적으로 제일 높은것도 기능공양성을 위해 바친 고일복동무의 아글타글한 노력과 떼여놓고 생각할수 없다.
6년전 그의 나이가 60살이 되였을 때 사람들은 앞으로 그가 년로보장을 받고 여생을 보낼것이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그는 쇠물냄새를 하루라도 맡지 않으면 사는 재미가 없다고 하면서 일터를 떠나지 않았다.
근 40년동안 자기의 초소를 믿음직하게 지켜온 그에 대한 사람들의 존경심은 각별하다.
본사기자 김승표
언제나 이신작칙으로
숙천군 금풍농장 축산작업반 반장 차영석동무는 언제나 이신작칙으로 대중을 당정책관철에로 힘있게 불러일으키는 참된 당원이다.
10여년전 그가 작업반장사업을 시작할 당시 작업반의 토대는 매우 빈약했고 해마다 계획도 미달하였지만 작업반원들은 먹이문제가 풀리지 않는 이상 별도리가 없다고 우는소리만 하였다.
축산을 추켜세우자면 부침땅의 지력을 결정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본 차영석동무는 니탄매장지를 찾을것을 결심하고 매일 밤 주변의 곳곳을 다녀보았다.한겨울에 수십㎝의 언땅을 정대로 까내고 또 수십㎝의 흙을 삽으로 쳐냈다가는 다시 메꾼다는것이 헐치 않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남모르는 헌신의 밤을 쉬임없이 이어갔다.
마침내 그가 작업반가까이에서 니탄매장지를 찾았을 때 작업반원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온 작업반이 떨쳐나 1주일동안에 100여t의 니탄을 캤다.이렇게 해마다 지력을 개선한 결과 10여년전 고작 1~2t의 먹이작물을 생산하던 저수확지에서 6t이상의 소출을 내게 되였다.
250㎡의 돼지호동을 건설할 때에도 솔선 앞채를 메고 내달린 사람은 차영석동무였다.
그해따라 봄철에 례년에 없이 많은 비가 내려 공사에 불리한 조건이 조성되였다.당결정에 반영된 날자까지 공사를 마무리하자면 장마철전으로 골조공사를 끝내야 했다.사양관리도 하고 당면한 영농공정도 추진시키면서 작업반자체의 힘으로 방대한 공사를 내밀자니 일손이 딸렸다.
어느날 새벽 작업현장으로 나오던 작업반원들은 안해와 함께 블로크를 운반하고있는 차영석동무를 보고 놀랐다.언제부터 일을 시작했는지 축조작업을 할수 있게 벌써 많은 블로크가 쌓여있었다.
그 어떤 호소도 조직사업도 하지 않았지만 이튿날부터 초급일군들과 당원들이 가족들과 함께 작업에 착수하였다.누구라없이 헌신의 구슬땀을 아낌없이 바치는 속에 공사가 힘있게 진척되여 제기일에 완공됨으로써 축산물생산을 늘일수 있는 또 하나의 토대가 마련되게 되였다.
말이 아니라 실천으로 대중을 이끄는 이런 참된 당원들이 있기에 당정책관철의 전구마다에서 나날이 새로운 혁신이 창조되고있는것이다.
본사기자 김순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