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발 1 600여m의 산지에 펼쳐진 원료림
풍서군산림경영소 합포산림감독분소 일군들과 종업원들
풍서군산림경영소 합포산림감독분소는 군에서도 제일 높은 고산지대의 산림을 가꾸고있다.이런것으로 하여 이전에는 여기에 목재림만 조성하였었다.하지만 분소일군들과 종업원들은 최근년간 해발고가 1 600여m나 되는 산지에 기름나무림, 종이원료림과 같은 수십정보의 원료림을 펼쳐놓았다.
여기에는 당의 지방발전정책관철에 이바지할 일념 안고 스스로 일감을 찾아 헌신분투하고있는 분소일군들과 종업원들의 불같은 애국의 마음과 깨끗한 량심이 비껴있다.
《누구나 보석과 같은 애국의 마음을 간직하고 조국의 부강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유익한 일을 스스로 찾아하여야 합니다.》
몇해전 군에서는 앞으로 일떠서게 될 군경공업공장들의 운영에 필요한 원료보장문제를 놓고 협의회가 진행되였다.그날 협의회에서는 새로 원료기지면적을 늘이며 산림부문에서 원료림을 조성할데 대한 문제가 토의되고 해당한 임무분담이 있었다.
그런데 해발고가 높은것으로 하여 합포산림감독분소에는 기름나무림, 종이원료림을 조성할데 대한 과업이 맡겨지지 않았다.
협의회에 참가하고 돌아오는 분소장 김창선동무의 생각은 깊었다.
경공업공장들이 앞으로 얼마나 실속있게 운영되는가 하는것은 원료보장에 크게 달려있는데 고산지대를 담당했다고 하여 당의 지방발전정책관철에 아무런 도움도 줄수 없는 단위로 남아있게 된다고 생각하니 발걸음이 무거웠다.
그날 분소종업원들과 마주앉은 김창선동무는 자기의 안타까운 심정을 터놓았다.
하루빨리 원료림을 조성하여 앞으로 일떠설 새 경공업공장들의 원료보장에서 우리도 한몫해야 한다고, 오늘날 당의 지방발전정책을 받드는 우리의 충성심과 애국심은 담당한 산들을 황금산, 보물산으로 만드는데서 발휘되여야 한다고 하는 분소장의 목소리는 종업원들의 심금을 뜨겁게 울려주었다.
이렇게 되여 고산지대에 원료림조성을 위한 사업이 그해 이른봄부터 시작되였다.
원료림을 조성하자니 제일 걸린것이 나무모였다.
그리하여 종업원들과 함께 길을 떠난 김창선동무는 덕성군과 북청군을 비롯한 여러 군을 다니면서 마침내 수만그루의 나무모를 확보하게 되였다.그 나무모들을 화물자동차에 싣고 며칠만에 분소로 돌아왔을 때 사람들 누구나 눈굽을 적시였다.
먼길을 다녀오느라 수척해진 모습도 그러하였지만 나무모가 담겨진 용기들에 씌워놓은 솜옷과 내의들은 종업원들의 가슴을 뜨겁게 울려주었다.
아무리 나무모가 중하기로서니 어떻게 이렇게까지 할수 있는가고 하는 사람들에게 김창선동무는 말했다.
이 나무모가 하루빨리 풍토순화되여 숲을 이룰수만 있다면 무엇을 아끼고 주저하겠는가고.
온 분소가 떨쳐나 애써 마련해온 나무모들을 적지를 찾아 심었고 사름률을 높이기 위해 정성을 기울였다.
뙤약볕이 내려쪼이는 속에서 며칠동안 김매기를 진행하던 어느날 한 종업원이 누구에게라없이 언제쯤이면 이 나무의 덕을 볼수 있겠는가고 말했을 때였다.
그때 김창선동무는 이 나무들에 열매가 주렁지게 달려 우리 군에서 생산한 제품이 꽝꽝 쏟아져나올 그날은 멀지 않았다고, 그때에 가서 우리도 그 덕을 톡톡히 보게 될것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종업원들모두가 장마철에는 비바람에 넘어질세라, 겨울철에는 얼굼피해를 받을세라 나무모들을 애지중지 가꾸었다.
그런데 다음해 봄에 그 나무들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시들시들 말라드는것이였다.
그 다음해에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하면 고산지대에서 이 나무들을 살릴수 있겠는가.
김창선동무와 종업원들은 생각끝에 수십리 산발을 타며 닭개비를 뜯어다 나무뿌리옆에 묻어주기도 하고 먼 샘터에서 물을 길어다 부어주기도 했지만 말라들기 시작한 나무는 좀처럼 생기를 찾지 못하였다.
그러자 어떤 사람들은 해발고가 낮은 앞지대에서나 심는 나무를 어떻게 고산지대에 적응시키겠는가, 괜히 여기에 발을 들여놓고 고생할 필요가 있는가고 하는것이였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김창선동무는 마음을 더욱 굳게 가다듬군 하였다.
(이 산도 후대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귀중한 재부가 아닌가.그렇다면 마땅히 우리 손으로 황금산, 보물산으로 가꾸어야 할것이 아닌가!)
그는 무슨 수를 쓰든지 무조건 원료림을 조성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신문을 통해 어느한 연구기관에서 야생종접그루선정에 의한 접방법을 받아들여 과일나무들을 북부산간지대에 풍토순화시킨 글줄을 보고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그는 그길로 해당부문의 연구사들을 찾아가 그들과의 련계밑에 방도를 모색해나갔다.
정성이면 돌우에도 꽃을 피운다고 마침내 나무들이 땅속깊이 뿌리를 내리고 푸른 잎새를 한껏 펼치기 시작하였다.
사람들은 그렇게 자라나는 나무들을 보고 모두 감탄하였다.
올해에 풍토순화시킨 단나무에 첫열매가 달린 날 분소는 명절처럼 흥성이였다.
단나무열매를 보고 또 보며 눈물짓는 그들의 얼굴마다에는 당의 지방발전정책관철에 조금이나마 이바지하게 되였다는 긍지와 자부심이 한껏 어려있었다.
이렇게 되여 목재림밖에 없던 산에 기름밤나무, 단나무, 상원뽀뿌라나무 등 여러 수종의 나무들이 푸르싱싱 자라게 되였다.
결코 김창선동무와 종업원들만이 걸은 헌신의 길이 아니였다.그들의 애국의 지향을 귀중히 여기며 떠밀어주고 고무해준 군의 책임일군들, 어렵고 힘들 때가 많았지만 언제나 마음과 지혜를 합쳐준 가족들과 주민들, 바로 그 뜨거운 마음들에 떠받들려 김창선동무와 종업원들은 고산지대에 원료림을 펼쳐놓을수 있었다.
당정책의 정당성과 생활력을 실천투쟁으로 증명하려는 사람에게는 불가능이란 없고 반드시 성공적인 결실을 이루어낼수 있다.
이 땅의 평범한 공민들이 땀과 열정을 다해, 순결한 량심을 다 바쳐 가꾸는 원료림은 이 진리를 전하며 끝없이 설레이고있다.
본사기자 정성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