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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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24일 토요일 4면

고마운 우리의 사회주의

12개의 살림집리용허가증


나의 집은 부전군 문암리에 새로 일떠선 농촌마을에 있다.두개의 살림방과 전실, 부엌, 세면장, 창고 등이 편리하게 갖추어진 집은 우리 량주가 살기에는 너무도 크고 훌륭하다.

생활의 따스함과 가정의 단란함이 다 비껴있는 우리의 보금자리, 그 부름이 류달리 정답고 의미깊게 안겨드는것은 내가 사는 이 하나의 살림집때문만이 아니다.온 동네가 새집들이경사로 들끓던 그날 우리 가족중에서 12세대가 동시에 멋쟁이 새 살림집들을 받아안았기때문이다.

한날한시에 받아안은 12개 살림집리용허가증을 생각할수록 나는 어머니당의 품속에서 태여난 사랑의 이야기, 세상에 없는 우리 집 이야기를 전하고싶은 충동을 금할수 없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 인민을 억척으로 지키고 더 높이 떠받들며 부럼없이 잘살게 하는것은 나와 우리 당의 제일사명이고 확고부동한 의지입니다.》

지금으로부터 3년전 북변의 외진 산골인 우리 부전군 문암리는 새집들이경사를 맞이하였다.

온 마을이 다 그러하였지만 그중에서도 우리가 새로 배정받은 살림집은 끊임없이 찾아오는 사람들로 하여 명절마냥 흥성이였다.12개의 살림집리용허가증을 받아안은 우리 가족의 경사를 두고 도와 군의 일군들은 물론이고 중앙의 기자, 촬영가들도 저저마다 달려와 제일처럼 기뻐하며 축하해주었고 신문에도 실어주었다.

거듭되는 축하의 인사를 받고보니 송구스럽기 그지없었다.

군건설려단 로동자들의 말에 의하면 살림집 한세대를 짓는데 세멘트와 철근, 혼석이 수십t이나 든다고 한다.다른 나라같으면 우리가 배정받은것과 같은 살림집의 가격은 평범한 사람들이 한생토록 아득바득 애를 써도 마련할수 없을 정도로 비싸다고 한다.

과연 우리가 이 집을 짓는데 흙 한삽 떴던가 품 한자루 바쳤던가.행복속에 울고웃던 그날 나는 이 모습을 아버지가 보았으면 얼마나 기뻐하였을가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생전에 아버지는 늘 자기가 태여난 집에 대해 이야기하군 하였다.아버지는 나라없던 그 세월 두메산골 화전민의 아들로 태여났다.어린시절 아버지의 망막에 안겨든 집은 썩은 통나무 몇대를 세워놓고 엉성한 나무가지와 풀들로 대충 하늘을 가린 산전막이였다.집이란 본래 그런것이라고 생각하였던 아버지는 해방후에야 보금자리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깨닫게 되였다고 한다.

아버지는 항상 자식들에게 집은 곧 조국이고 당의 품이라고, 품어주고 키워준 사회주의 우리 집을 억척으로 지키고 끝없이 빛내여가야 한다고 당부하군 하였다.아버지가 나에게 하던 그 당부를 오늘은 내가 자식들에게 하고있다.

젊은 시절 함흥시의 어느한 단위에서 일하던 내가 당의 감자농사혁명방침을 높이 받들고 이곳 문암리에 삶의 뿌리를 내리게 된것도 바로 아버지가 늘 하던 당부, 내가 사는 사회주의 우리 집에 적은 힘이나마 보탬을 주기 위해서였다.

지금 마을사람들은 우리 가족을 두고 집복을 타고났다고 이야기한다.

집복, 그 말을 떠올릴 때면 흘러온 나날이 돌이켜진다.

20여년전 나는 당의 뜻을 받드는 길에서 삶을 빛내일 마음으로 많은 식솔을 거느리고 도시를 떠나 산골농장으로 탄원하였다.

그때 농장에서는 남달리 자식이 많은 우리부부에게 크고 번듯한 살림집을 배정해주었다.그런데 그후 리당일군이 찾아와 나라가 어려움을 겪는 때에 스스로 부모없는 아이들을 데려다 키우는 동무들을 더 잘 도와주지 못했다고 하며 가까이에 있던 다른 집으로 우리를 이끄는것이였다.다자녀세대를 위해 마음기울이는 고마운 손길들에 떠받들려 우리는 이렇게 한 가정이 두채의 살림집을 리용하며 아무런 불편도 모르고 생활하게 되였다.

몇해후 리당위원회의 조직사업에 따라 농장에서는 나날이 커가는 자식들의 학습조건, 생활조건을 충분히 보장해주기 위해 일반살림집 두채를 합친것보다 더 큰 새집을 지어 안겨주었다.지금도 그때일을 떠올릴 때면 우리는 농장원들이 다 모이는 작업반실보다 더 큰 집에서 산다고 자랑하던 자식들의 천진란만한 모습이 눈앞에 선히 어려온다.

어느 가정에서나 세간나는 자식들을 두고 부모들이 제일 마음쓰는것은 집문제이다.하지만 남달리 자식많은 우리 가정은 한번도 집걱정을 해보지 못했다.농장에서는 우리 자식들이 새 가정을 이룰 때마다 꼭꼭 살림집을 배정해주었던것이다.

이 고장에 뿌리를 내린 자식들만이 아니였다.

몇해전 어느날 우리는 련포온실농장 종업원이 된 아들 단혁이네 가정이 새집을 받았다는 반가운 소식에 접하게 되였다.

나의 안해는 한달음에 아들의 집으로 달려갔다.그런데 며칠내에 돌아서겠다던 안해가 20여일이 지나서야 집에 돌아오는것이 아닌가.

희한한 온실농장마을에 일떠선 궁궐같은 새집이 안해의 마음에 흠뻑 들었던것이다.생각같아서는 아들과 함께 그곳에 아예 눌러앉아 살고싶은 마음도 없지 않았다고 한다.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우리 단혁이처럼 복받은 사람이 또 어디 있을가 하는 생각에 그날밤 잠을 이룰수 없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불과 얼마후 우리 문암리에도 신문과 TV로만 보아오던 새 농촌마을이 일떠섰다.그때 나는 속으로 우리 가족은 남들과 달리 자식들이 많으니 적어도 몇세대는 새 살림집을 배정받을것이라고 속구구를 하였다.

허나 그 상상을 뛰여넘어 몇세대가 아닌 12세대나 배정받을줄이야 어찌 알았겠는가.당에서는 자식들은 물론이고 년로보장을 받고 부대로력으로 있는 우리 로인내외에게도 새 살림집을 안겨주었다.

지금 완공을 눈앞에 두고있는 새 농촌살림집들에 보금자리를 펴게 될 자식들까지 합치면 우리 가족은 수십명이 모두 새집에서 살게 된다.

우리 가정의 집복, 정녕 이것은 평범한 농장원들도 도시사람들 부럽지 않은 문명한 생활을 누리도록 하려는 우리 당, 고마운 사회주의제도가 안겨준 복, 이 땅에 사는 우리 인민 누구나 타고난 복이다.

자식들의 집을 매일 돌아보는것은 이제는 습관처럼 굳어진 나의 하루일과이다.단순히 볼수록 흐뭇한 자식들의 집구경을 위해서가 아니다.한없이 고마운 이 나라를 위해 더 많은 일을 하라고 당부하며 또 자식들이 그렇게 살도록 적은 힘이나마 보탬을 주기 위해 걷는 걸음이다.

우리 가족이 한날한시에 받아안은 12개의 살림집리용허가증, 정녕 그것은 우리가 안겨사는 어머니당의 품, 사회주의조국이 얼마나 고마운가를 보여주는 하나의 생동한 해설문이다.이 세상에 있어본적 없는 이 감동깊은 사연, 지구상의 수많은 나라 사람들이 꿈속에서도 믿지 못할 이 희한한 이야기를 우리 가족성원들은 대를 두고 길이길이 전해갈것이다.

부전군 문암리 24인민반 전동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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