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22. 《로동신문》 3면
조국해방전쟁에서의 승리, 그것은
혁명적락관주의는 혁명적신념을 기초로 하고있으며 락관주의배양은 신념교양과 떼여놓고 생각할수 없다.
이것이 인민군부대들에서 진행된 신념교양의 핵이였다.
특히 조국해방전쟁의 전략적인 일시적후퇴는 신념교양, 락관주의교양의 절박성을 그 어느때보다 부각시켰다.
부대들간의 련계가 끊어진 조건에서도, 험준한 산발을 타고넘어야 하는 행군길에서도
선전원, 선동원, 전투소보원들은 행군과정은 물론 전투속에서도 혁명적인 시와 노래, 화선식직관활동으로 전사들에게 신심을 더해주었다.
전군에 신념교양의 불길이 세차게 타오르는 속에 락동강까지 나갔던 인민군용사들은 겹겹이 둘러싸인 적의 포위를 돌파하고 최고사령부를 찾아왔으며 재진격의 길에 나섰다.
부대, 구분대 정치부들에서는
이런 정치사업들을 통하여 인민군용사들은 오직
인민군부대들에서는
전시에도 군무자들의 예술축전을 중단없이 조직진행할데 대한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 당정치사업관에는 제2차 군단예술소조경연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제7군단 24보병려단 2대대 1중대 군인들의 사진이 있다.
부대들에서는 먼저 중대단위로 경연을 한 다음 우수한 단위들을 평가하고 웃단위 경연에 참가시키는 방법으로 군무자예술축전에 참가할 단위들을 선정하였다.
우수하게 평가받은 예술소조원들은 다른 구분대들에 대한 순회공연도 진행하면서 예술적기량을 더 높였고 좋은 경험도 많이 쌓았다.
제7보병사단을 비롯한 많은 부대들에서 전례없는 《전투훈련》이 맹렬히 진행되였다.군악소대들의 군악훈련이였다.
군무자들의 예술축전은 전승의 축포가 오를 때까지 중단없이 계속되였다.
조국해방전쟁시기 인민군대의 부대, 구분대들에서는 전사들의 의욕을 북돋아주고 단합을 도모하는 방향에서 화선오락회도 경쟁의 방법으로 조직하였다.
1952년 10월에 발간된 한 선전물의 내용을 보아도 잘 알수 있다.
《…여기는 1211고지의 한 전호이다.화선오락회가 벌어졌다.먼저 1분대와 2분대의 단체경연이 시작되였다.〈장이야!멍이야!〉, 각 분대원들은 장기판을 둘러싸고 손에 땀을 쥐여가며 말가는 길을 주시하였다.장기는 3 대 0으로 1분대가 우승하였다.…먼저 송동무가 〈전호속의 나의 노래〉를 멋있게 불렀다.이를 받아서 리동무가 〈양산도〉를 기막히게 뽑아넘겼다.박수가 일어났다.…》
적들의 무차별적인 포격과 폭격으로 1211고지는 해발고마저 낮아졌고 다람쥐도 전사들의 품으로 뛰여들었지만 고지의 용사들속에서는 혁명적락관주의가 넘쳐흘렀다.우리 인민군용사들의 사기가 얼마나 높았던지 고지에서 울려퍼지는 힘찬 노래소리에 전률하여 적진은 혼란에 빠지였고 투항해오는 적들까지 있었다.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 당정치사업관에는
전후 오랜 기간 평양악기공장에서 일한 한 전쟁로병은 수기에 이렇게 썼다.
《…소제대를 불에 달구어 큼직한 차돌우에다 놓고 돌로 때려서 길이가 10cm가량 되는 손칼을 하나 만든 나는 …자그마한 가래나무가지를 한대 잘라서 해금손잡이를 만들어내고 줄조이개는 물푸레나무를 깎아 맞추었다.…그 해금을 바이올린처럼 턱에 대고 연주해보았다.아무것이나 쉬운 곡조는 다 할수 있었다.저녁오락회때 나의 연주가 전우들의 대절찬을 받았다는것은 두말할 여지도 없었다.…》
부대지휘관들은 그 해금으로 연주하는 민요 한곡을 들어보고는 대뜸 환성을 올리면서 즉석에서 화선악기를 대대적으로 만들기 위한 조치를 취하였으며 자력갱생정신으로 여러종의 악기들을 만들었을 때에는 정치부련대장이 직접 화선악대를 조직하였다.
이 10여명의 화선악대는 부대 장병들의 사기를 북돋아주고 랑만을 안겨주는데서 큰 역할을 했다.
세계 그 어느 전쟁사에도 불타는 전호에서 자기 손으로 악기를 만들었다는 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화선악기에서 울린것은 음악의 선률만이 아니였다.그것은 락관주의자들이 울리는 신념의 웨침이였다.
싸울 때에는 용감하게 싸우고 오락을 할 때에는 유쾌하게 오락을 하고 휴식할 때에는 즐겁게 휴식하는것이 우리 군대의 생활기풍이라고 하신
혁명적락관주의교양은 비단 국난의 시기에만 필요한것이 아니다.
혁명의 새로운 도약기, 앙양기에 들어선 지금 일군들과 당원들과 근로자들에게 새 승리에 대한 확고한 신심을 안겨주는데서 락관주의교양은 절실한 문제이다.
박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