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8.03. 《로동신문》 4면
《기적은 결코 저절로 일어나는것이 아니며 기적을 낳는 어머니는 대중의 앙양된 정신력이라는것을 명심하고 대중의 정신력을 최대로 폭발시켜야 합니다.》
닭알에도 사상을 재우면 바위를 깰수 있다는것이 우리 당의 사상론이며 이것은 어떤 불리한 조건에서도 혁신을 창조할수 있게 하는 무궁무진한 힘의 원천이다.
우리 식의 밀가공설비를 자체의 힘으로 훌륭히 만들어낸 평양량곡가공기계공장 일군들과 로동계급의 투쟁을 통해서도 그것을 다시금 확신할수 있다.
다른 선택이란 있을수 없다
지난 2월초 공장에서는 일군들과 기술자, 기능공들의 격식없는 협의회가 진행되였다.
여기에는 수매량정성의 책임일군도 자리를 같이하고있었다.
론의된 문제는 수천t능력의 밀가공설비를 자체로 제작하는것이였다.
사실 공장의 토대가 아직 미약한 상태에서 맡겨진 인민경제계획을 수행하면서 파악도 없는 밀가공설비제작을 동시에 내민다는것은 쉽게 결심할 일이 아니였다.
인민들에게 질좋은 밀가공품이 하루빨리 차례지게 해야 할 임무가 바로 우리 수매량정부문의 기계제작단위인 공장앞에 나서고있다, 한푼한푼의 자금이 귀중한 때에 나라에 손을 내민다는것은 로동계급의 도리가 아니다, 우리 다같이 마음먹고 달라붙어 방도를 모색해보자는 성책임일군의 절절한 토로는 모두의 가슴가슴을 뜨겁게 울리였다.
인민생활향상을 위한 투쟁에서 자신들이 맡고있는 책임감을 더욱 무겁게 새긴 공장일군들과 로동자들은 비상한 결심과 각오를 굳히였다.
우리가 있으면서 설비를 수입한다는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
다른 선택이란 있을수 없다.우리 힘으로 기어이 만들어내자.
여기저기에서 이런 열띤 목소리들이 울려나왔다.
이렇게 되여 공장에서는 우리 식의 밀가공설비를 제작하기 위한 투쟁이 전개되게 되였다.
지배인과 초급당비서를 비롯한 공장일군들은 설비제작에 필요한 자재보장을 선행시키는 한편 현대적인 밀가공설비의 제작에서 큰 몫을 해야 할 기술자, 기능공들에게 당에서 중시하고 인민들이 바라는 중요한 사업을 맡았다는 책임감과 긍지감을 깊이 심어주기 위한 정치사업에 힘을 넣었다.
성에서는 곡물가공연구소에서 밀가공설비들에 대한 설계를 하루빨리 완성하도록 하는 한편 공장의 기술자, 기능공들이 여러 단위에 대한 참관사업을 통하여 많은것을 보고 배우면서 자신심을 가지도록 조직사업을 치밀하게 하였다.또한 능력있고 책임적인 일군을 공장에 파견하여 힘껏 밀어주도록 하였다.
곡물가공연구소의 연구사들이 낮과 밤이 따로없이 분투하여 설계를 완성하였고 공장에서는 설비제작원가를 줄이면서도 우리 식으로 현대적인 밀가공설비를 만들어내기 위한 기술혁신이 날로 고조되였다.
인민생활향상을 위한 오늘의 투쟁에서 자신들이 맡고있는 책임감을 무겁게 자각한 공장로동계급의 정신력이 세차게 분출되자 어렵다고 생각했던 문제들도 하나둘 풀려나갔고 능률적인 량곡가공설비제작은 첫걸음부터 힘있게 진척되기 시작하였다.
자존심은 실천으로 지켜야 한다
당정책을 결사관철할 각오를 안고 수천t능력의 현대적인 밀가공설비제작을 위한 투쟁에 대담하게 달라붙었지만 공장일군들과 기술자, 로동자들앞에는 적지 않은 난문제들이 놓여있었다.
일반적으로 정선공정의 돌분리기제작에는 진동전동기를 쓰는것으로 되여있다.문제는 대다수 사람들이 이 진동전동기만은 공장에서 자체로 해결할수 없다고 생각하고있는것이였다.
허나 책임기사 리수진동무를 비롯한 기술자, 기능공들은 이것을 허용할수 없었다.
우리 식의 밀가공설비를 제작하면서 거기에 남의 전동기를 가져다 조립한다는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남들이 하는것을 우리가 왜 못만들겠는가.…
바로 이런 드높은 자존심을 안고 신심을 배가하며 방도를 탐구하던 과정에 이들은 끝끝내 문제해결의 방도를 찾게 되였다.
여기서 기본은 편심추의 질량과 각을 변화시키는 등 여러가지 문제를 해결하여 진동수와 진동폭을 제대로 보장하는것이였다.
수매량정성 곡물가공연구소 연구사 김명혁, 허철훈동무와 기술준비실 실장 리성학동무를 비롯한 공장의 기술자들은 서로의 지혜를 합쳐가며 20여일동안 설계도 다시 하고 용량이 서로 다른 일반전동기들을 바꾸어가며 끝끝내 자체의 힘으로 돌분리기를 만들어내고야말았다.
이런 투쟁기풍은 로라제분기를 제작하는 나날에도 높이 발휘되였다.
설계상 로라제분기틀은 주물품으로 만드는것으로 되여있었다.그런데 당시 공장에서는 중주파유도로를 보수하고있는중이여서 필요한 주물품을 얻자면 40일이라는 시일을 기다려야 했다.
이때에도 공장의 로동계급은 조건이 마련되기를 기다리지 않았다.토의를 거듭하던 과정에 대중속에서는 대담하게 로라제분기틀을 철판으로 제작하자는 안이 제기되였다.철판으로 제작하는 경우 진동과 소음방지, 완전밀페보장을 비롯하여 여러가지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다.
그러나 생산지령원 최진명, 제관작업반 반장 김성일동무를 비롯한 공장의 기능공들은 풍부한 경험에 기초하여 철판에 의한 설비제작을 가능하게 하는 합리적인 방안을 찾아냈으며 기계작업반 반장 김채광동무 역시 변화된 조건에 맞게 설계상의 요구대로 주동로라의 축심을 맞출수 있는 혁신적인 안을 내놓았다.
당정책관철을 위한 투쟁을 우리의 손으로 남의것보다 더 훌륭한 우리의것을 만들어내는 과정으로 되게 하려는 높은 자존심과 굳은 결심은 현실에서 이런 기발한 착상들과 실천을 낳았다.
결국 10여일만에 로라제분기틀이 손색없는 자기의 실체를 드러내놓게 되였다.
이뿐이 아니다.
공장에서는 이전에 리용하지 못하던 50t프레스를 살려내고 그에 의거하여 필요한 각종 채판도 제작하였으며 도입단위와의 협동을 강화하여 설비를 헐하게 다룰수 있는 기술혁신안도 받아들이였다.
우리의것이라고 떳떳이 자부할수 있는 설비를 기어이 자체의 힘으로 만들어내려는 공장일군들과 로동계급의 투쟁에 의해 마침내 우리 식의 현대적인 밀가공설비가 성과적으로 제작되여 박천군량정사업소에 설치되였다.
우리는 여기에 설비부속품가공에 진심을 바쳐온 김철, 최금별, 윤용수동무, 공장로동계급과 한전호에 선 심정으로 설비제작의 전 과정을 힘있게 떠밀어준 수매량정성과 만경대구역의 책임일군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 전하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자기것에 대한 열렬한 사랑과 그것을 지키고 빛내이려는 애국의 마음을 안고 한마음한뜻으로 떨쳐나설 때 못해낼 일이란 없다는것을 다시금 확신하게 된다.
글 본사기자 리영민
사진 오진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