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녀학생이 부른 노래

 

사회주의 우리 집은 무엇으로 하여 그리도 아름답고 따뜻한가.

우리는 그에 대한 대답을 평양전기기술대학 서성화학생이 들려준 이야기를 통하여서도 찾을수 있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조국은 모든 사람들의 참된 삶과 행복의 요람이며 찬란한 미래를 담보해주는 어머니품입니다.》

몇해전 겨울 어느날이였다.중학교에 다니던 성화가 공부를 마치고 평천구역 정평동에 있는 집에 돌아오니 할머니가 구역인민위원회일군들이 찾아왔었다고 하는것이였다.

《듣자하니 우리 동주민들의 생활에 대하여 료해하려고 나왔다가 우리 집형편을 알고 찾아왔다더구나.할 일도 많겠는데 우리 집에까지 글쎄…》

눈굽을 훔치는 할머니를 보니 성화는 저도모르게 가슴이 저려들었다.

그는 며칠전에 아버지를 여의였다.어머니는 그가 엄마라는 말을 배우기도 전에 이미 세상을 떠났다.태여나 한번도 받아보지 못한 어머니의 사랑까지 합쳐 끔찍이 위해주던 아버지마저 잃고나니 이름 못할 설음이 북받쳐올랐다.

하지만 그는 결코 외롭지 않았다.다정한 선생님들과 동무들, 이웃들이 따뜻이 위로해주며 극진히 보살펴주었던것이다.그런데 오늘은 구역인민위원회의 일군들이 찾아와 할머니의 건강이며 가정형편에 대하여서도 각별히 관심을 돌려주었다는것이 아닌가.

그로부터 얼마 안있어 맞이한 새해 첫아침 성화는 그리도 보고싶던 고마운 일군들을 만나게 되였다.

《성화야, 새해에 복많이 받아라.》

이러며 자기에게 멋진 학용품과 맛있는 당과류들을 한가득 안겨주고 할머니와 새해인사를 나누는 구역인민위원회일군들인 리지남, 김철준동무들을 대하면서 성화는 마치 떠나간 부모가 다시 온것만 같이 여겨져 눈굽이 젖어들었다.

이렇게 시작된 그들의 걸음은 그후에도 계속 이어지였다.

학교교원들을 찾아가서는 우리 성화를 잘 키워달라고, 이것은 구역인민위원회 위원장이 아니라 성화의 학부형으로서 하는 부탁이라는 절절한 당부를 남겼는가 하면 성화가 대학입학시험준비로 여념이 없던 어느날 깊은 밤 집에 찾아가 학습도 지도해주었다.그리고 대학에 입학하였다는 성화의 전화를 받고는 제일처럼 기뻐하며 축하해주었다.또 언제인가 할머니가 급병으로 병원에 입원하였을 때 만사를 제쳐놓고 달려가 의료일군들과 치료대책을 토론한 사람들도 바로 그들이였다.

지난해 10월 대학에서 공부하던 서성화학생은 뜻밖에도 하루일과가 끝나면 평천구역 안산2동 80인민반 5층 13호집을 찾아가라는 련락을 받았다.

영문도 모르고 그곳으로 가니 아늑한 방안에서 할머니가 주름깊은 얼굴에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고있었다.

할머니는 손녀딸을 꼭 그러안고 말했다.

《이제부터 여기가 우리가 살 집이란다.그 일군들이… 이렇게 새 집을 멋들어지게 꾸려주고 오늘 이사짐까지 날라주었구나.》

우리 집!

서성화학생은 한없는 격정에 겨워 입속으로 조용히 외워보았다.

우리 집, 그것은 단순히 살림집을 뜻하는 말이 아니였다.온 나라 인민들의 운명도 미래도 다 맡아 보살펴주는 고마운 우리 당, 우리 조국, 경애하는 원수님의 따사로운 품이였다.

깊어가는 밤과 함께 방안에서는 할머니와 손녀가 부르는 《세상에 부럼없어라》의 노래가 끝없이 울려퍼졌다.

본사기자 김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