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식 사회주의제도에서 누리는 인민의 크나큰 행복과 긍지

인민의 대표, 이 말을 외울 때마다

 

우리 오현리에는 대를 두고 전해가는 전설같은 사랑의 이야기가 있다.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은덕으로 조선로동당원으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자라난 녀성, 온 나라에 널리 알려진 우물집녀인에 대한 이야기이다.

눈물도 많았고 사연도 많은 그 우물집이 바로 우리 집가까이에 있다.그래서인지 이전에는 대의원이라는 말을 들으면 그 우물집녀인의 모습이 선참으로 떠오르군 했다.

하지만 그 부름에 얼마나 큰 믿음과 사랑이 어려있는것인지 나는 직접 체험해보고서야 절실히 깨닫게 되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조국은 모든 사람들의 참된 삶과 행복의 요람이며 찬란한 미래를 담보해주는 어머니품입니다.》

나는 포전에서 곡식을 가꾸는것밖에 모르는 평범한 농사군이다.

이런 내가 6년전 최고인민회의 제13기 대의원후보자로 추천되였을 때 나는 그 사실이 전혀 믿어지지 않았다.남편에게 공화국영웅칭호가 수여된다는 소식에 접했을 때에도 그러했지만 너무도 과분한 일이여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몸둘바를 몰랐다.

이제는 온 나라에 알려진바와 같이 남편인 리창선은 뜻밖의 일로 위험에 처한 분조원들을 구원하고 희생되였다.

그의 최후를 두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몸소 믿음어린 친필을 보내주시였다.

길지 않은 남편의 삶이 금별메달로 빛나고 영생의 언덕에 올랐으며 두 딸은 강반석혁명학원에서 공부하게 되였다.

나는 연백벌농민답게 쌀을 많이 생산하는것으로써 그 사랑, 그 믿음에 보답하고싶었다.그래서 포전에서 밤낮을 잊고 늘 뛰여다니며 일했다.

그것은 너무도 응당한것이였고 또 그것만으로는 하늘같은 은혜의 천분의 일, 만분의 일만큼도 갚을수 없었다.

하지만 고마운 조국은 날이 갈수록 더 큰 행복을 안겨주었고 나라의 정사를 토의하는 대의원으로까지 내세워준것이다.

선거가 진행된 날 어머니는 줄곧 울기만 하였다.어릴적 우물집녀인에 대한 이야기를 자장가처럼 들려주며 너도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당부하군 하던 어머니가 그날은 《내 딸이, 우리 연실이가 대의원이 되다니…》 하고는 더 말을 잇지 못하였다.

마을사람들도 우리 마을에 농장원대의원이 또 나왔다고, 마을의 영광이고 자랑이라고 하면서 조국에 대한 한없는 고마움으로 눈굽을 적시였다.

사실 내가 농사를 조금이나마 잘 지을수 있은것은 품에 안아 보살펴주고 믿어주고 걸음걸음 이끌어준 조국의 따사로운 손길이 있었기때문이다.

그것이 없었다면 우물집이나 우리 가정의 운명이 어떻게 되였을지는 너무도 명백한것이다.

나는 지난해 봄에 진행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대의원선거에서 또다시 인민의 대표가 되였다.

인민의 대표, 나는 값높은 이 부름이 인민을 위하여 더 많은 일을 하라는 조국의 당부라고 생각한다.그것을 생각하면 아무리 일을 해도 성차지 않는다.

지난 10월 나는 분에 넘치게도 당창건 75돐 경축대표가 되여 경애하는 원수님의 자애에 넘치는 연설을 받아안는 영광을 지니였다.우리 원수님의 사열을 받으며 보무당당히 김일성광장을 누벼나가는 장엄한 열병대오속에는 나의 맏딸도 있었다.

광장의 하늘가에 펄펄 휘날리던 람홍색기발, 나와 우리 가정에 영광과 행복을 안겨준 그 기발을 눈물속에 바라보며 나는 마음속으로 웨치였다.

한없이 고마운 내 나라, 내 조국을 쌀로써 받드는 애국농민이 되겠다고.

연안군 오현협동농장 리창선영웅작업반 분조장 진연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