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3(2024)년 9월 18일 수요일  
로동신문
조국이 값높은 칭호로 내세워준 사람들

2023.2.12. 《로동신문》 4면



공훈기계제작공 김정학동무

 

남흥청년화학련합기업소 1보수직장 용접공 김정학동무는 지난 기간 비료생산의 주체화, 국산화를 실현하기 위한 투쟁에서 빛나는 위훈을 세웠으며 기업소의 생산능력을 확장하고 보강하기 위한 사업에 지혜와 열정을 다 바쳐왔다.

지금으로부터 15년전 령장자리가 또렷한 군복을 입은 제대군인이 가스화대상건설이 힘있게 벌어지고있는 남흥으로 달려왔다.청천강화력발전소에서 로동생활을 하다가 인민군대에 탄원하였던 김정학동무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유훈과 위대한 장군님의 높은 뜻을 받들어 우리 식의 비료공업을 창설하기 위한 보람찬 투쟁에서 한몫 단단히 할 일념으로 그의 가슴은 세차게 높뛰였다.

수많은 설비들을 조립해야 하는 건설장에는 특수용접을 담당진행할 용접공이 절실히 필요했다.

당과 조국의 부름에 언제나 앞장서던 병사시절의 자세로 김정학동무는 기술기능수준을 높이기 위해 이악하게 노력함으로써 얼마후에는 그 어떤 용접도 막힘없이 수행할수 있게 되였으며 고도의 정밀도를 요구하는 고압설비들과 관망들에 대한 특수용접을 책임적으로 진행하여 가스화대상건설을 앞당기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비료생산을 정상화하기 위한 설비제작과 보수에 도움이 되는 10여건의 가치있는 창의고안과 기술혁신안들을 내놓은 그는 신입공들의 기술기능수준을 높여주기 위한 사업에도 깊은 관심을 돌려 많은 기능공들을 키워냈다.

농업전선의 병기창인 남흥의 숨결을 지켜 땀과 열정을 아낌없이 바쳐온 김정학동무는 지난해 뜻깊은 태양절을 맞으며 공훈기계제작공칭호를 수여받았다.

한일보다 해야 할 일이 더 많은 자기에게 값높은 칭호를 안겨준 당과 국가의 사랑과 믿음에 충성으로 보답할 열망으로 심장을 끓이며 그는 오늘도 맡은 일에 순결한 량심을 바쳐가고있다.

 

공훈소성공 리광철동무

 

지금으로부터 20여년전 리광철동무는 세멘트증산으로 들끓고있는 상원세멘트련합기업소의 로동계급속에 제대배낭을 풀어놓았다.

사회주의건설장 어디서나 요구하는 세멘트생산을 책임졌다는 남다른 긍지를 안고 그는 소성직장 랭각기 2작업반에 배치된 첫날부터 있는 힘껏 일하였다.하지만 그에게는 늘 시간이 모자랐다.자기가 맡은 랭각기부문에 대한 전문지식도 부족했고 또 오랜 기능공들의 수준에 자기를 올려세우기도 해야 했던것이다.그는 쉴참이면 기능공들의 지식과 경험을 한가지라도 배우고 련마하기 위해 애썼고 그것도 성차지 않아 그후 일하면서 배우는 교육체계에 망라되여 폭넓은 지식을 습득하였다.

이악하게 노력한 결과 짧은 기간에 높은 기술기능을 소유한 그는 작업시간은 물론 밤에도 늘 랭각기옆에서 살다싶이 하면서 설비의 정상가동보장에 지혜와 열정을 다 바치였다.그 나날 불판을 개조하여 설비의 수명을 늘이고 생산정상화에 이바지할수 있는 많은 창의고안과 기술혁신을 하였을뿐 아니라 여러명의 기능공들도 양성하였다.

몇해전 설비를 개조하고 생산능력을 확장하기 위한 현대화공사가 진행될 때에도 그는 대중의 앞장에서 투신함으로써 방대한 공사를 두달이라는 짧은 기간에 끝내도록 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뜨거운 애국열과 드높은 창조정신으로 맡겨진 혁명초소를 믿음직하게 지켜가는 그의 공로를 귀중히 여겨 당과 국가에서는 높은 급의 국가수훈도 안겨주었으며 지난해에는 평범한 작업반장인 그를 제2차 건설부문일군대강습에도 불러주고 공훈소성공으로 높이 내세워주었다.

오늘도 그는 응당 해야 할 일을 한 자기를 그토록 값높이 내세워준 고마운 당과 조국을 위해 더 높은 세멘트증산으로 보답할 굳은 맹세를 안고 자기 초소를 믿음직하게 지켜가고있다.

 

공훈탄부 한영진동무

 

더 높은 석탄산으로 어머니조국을 충성으로 받들 애국의 일념 안고 수천척지하막장에 량심의 자욱을 새겨가는 미더운 탄부들속에는 제남탄광 6갱 차광수청년돌격대 대장 한영진동무도 있다.

지금은 소문난 혁신자로 대중의 존경을 받는 그이지만 40여년전 이곳 탄광에서 사회생활의 첫발을 내디디던 때에는 오늘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일터에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자주 말썽을 부려 사람들의 말밥에 오르군 하였던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자기또래의 청년들이 탄광에 없어서는 안될 보배로, 혁신자로 사람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것을 보고 머리를 들수 없었다.

(나도 철부지자식이 아니라 어머니조국에 보탬을 주는 청년이 되자.)

이렇게 새로운 결심을 품은 그는 차광수청년돌격대가 조직된다는 소식을 듣고 남먼저 돌격대에 탄원하였으며 대장으로 일하게 되였다.

굳은 각오를 안고 내짚은 길이였으나 막장일은 헐치 않았다.그러나 그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꿋꿋이 이겨나갔다.하루굴진계획을 수행하느라 교대를 마치고도 막장을 뜨지 못하였고 자기는 물론 돌격대원들의 기술기능을 높이기 위해 짬시간이면 오랜 기능공들을 따라다니며 그들의 경험도 배웠다.이렇듯 피타는 노력과 성실한 구슬땀을 바치는 나날 돌격대에는 점차 자랑이 늘어났다.

그들은 해마다 맡겨진 굴진계획을 넘쳐 수행하고 압축기수리를 비롯한 설비수리도 자체로 척척 해낼수 있게 되였다.그는 영광스러운 조선로동당원의 영예를 지니였고 전국석탄공업일군대회를 비롯한 여러 대회에 참가하여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총비서동지를 모시고 기념사진을 찍는 최상의 영광도 지니였다.

이렇듯 인생의 절정에 오른 그에게 당과 국가에서는 못다 준 사랑이 있는듯 여러 차례에 걸쳐 높은 급의 국가수훈도 안겨주었으며 주체101(2012)년에는 공훈탄부로 높이 내세워주었다.

본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