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22일 일요일  
로동신문
밑거름

2023.2.28. 《로동신문》 4면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농사군의 량심과 성실성이 가을에 가서야 평가되듯이 교원의 노력과 공로는 후날에 가서야 정확히 평가되게 됩니다.》

칠판에 하얀 글자들이 새겨지듯 검푸른 하늘가에 별들이 하나둘 찍혀지기 시작했다.하지만 평양식료일용기술대학 교원 김혜성은 퇴근할 생각도 잊은채 의자에 점도록 앉아있었다.

눈길이 사업일지에 적혀있는 글줄에서 멎자 그의 입가에서는 또다시 한숨소리가 새여나왔다.

그것은 중앙의 어느한 출판사에서 벌써 세번째로 걸려온 전화내용이였다.

다름이아니라 대학의 교육사업과 관련한 경험글을 빨리 보내달라는것이였다.

얼마전 지난 3년동안 직업기술대학부문 교육사업판정에서 맨 앞자리를 양보하지 않고있는 대학의 경험과 관련한 글을 써보내줄데 대한 문제가 출판사로부터 제기되고 그것을 교수, 박사인 김경숙학장과 전국적인 새 교수방법창조를 위한 사업에서 성과를 이룩한 김혜성이 함께 쓰게 되였을 때 온 학교는 얼마나 기쁨에 설레였던가.

그런데 그 기쁜 소식을 안고 학장방에 들어갔던 김혜성이 된서리를 맞을줄이야.

《난 그 경험글을 쓸수 없습니다.…》

김혜성은 학장의 그런 눈빛을 지금껏 본적이 없었다.

그때의 그 눈빛과 지금 자기가 들여다보는 사업일지의 글줄들은 도저히 융합시킬수도, 풀수도 없는 미지의 문제처럼 그를 괴롭혔다.

하지만 다음순간 김혜성은 머리를 들었다.자리를 차고 일어섰다.

(이번만은 절대로 물러설수 없어.절대로!)

그는 학장방으로 발걸음을 옮기였다.

그때 운동장쪽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귀에 익은 학장의 목소리같았다.김혜성의 발걸음은 저도 모르게 그쪽으로 향하였다.

마당에 나선 김혜성은 머리를 기웃거렸다.아무도 없었다.환각이였던것이다.

다시 대학교사로 들어가려던 그의 눈길이 중앙현관앞에서 멎었다.불현듯 그의 머리속에 몇해전 졸업식날에 있은 일이 떠올랐던것이다.

매번 그러하지만 그해 졸업식날도 대학은 명절분위기로 흥성이였다.

현관앞에선 졸업생들을 축하하는 기념사진촬영으로 법석 끓는데 학장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한 학생의 귀띔을 받은 김혜성이 초급당일군의 사무실로 달려가보니 김경숙학장이 초급당비서와 함께 마당가에서 웃고떠드는 졸업생들을 창문에서 내려다보며 무거운 기색으로 서있는것이 아닌가.

밝은 해살도 학장의 얼굴에서 어두운 그림자를 가셔내지 못하였다.

(왜 얼굴이 저렇게 어두울가?)

학장의 목소리가 방안의 무거운 공기를 깨쳤다.

《비서동지, 진실한 농사군은 알곡계획을 수행했을 때도 그러하지만 쭉정이가 없는 알찬 수확을 냈을 때 더욱 기뻐한다고 합니다.난 저렇게 학생들을 사회에 내보낼 때마다 저 한명한명의 졸업생들을 다 나라의 쓸모있는 인재로 훌륭히 키우기 위해 자신의 모든것을 깡그리 다 바쳐왔는가 하고 생각하군 합니다.》

학장의 말을 듣는 김혜성의 마음속에는 풀수 없는 의문이 갈마들었다.

사실 그해 졸업생들의 성적은 전반적으로 높은것으로 평가되였다.응당 기뻐해야 할 훌륭한 성과였다.그런데 학장선생님은 왜서 함께 기뻐하지 않는것인가.

김혜성은 리해가 되지 않았다.바로 졸업식날에 학장방에서 생긴 수수께끼는 아직도 그의 머리속에 숙제로 남아있었다.

현관에 들어선 김혜성은 2층에서 울려오는 학장의 목소리를 쫓아 계단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의 머리속에는 김경숙학장에 대한 야릇한 생각이 다시금 갈마들었다.언제인가 있었던 교원모임이 새삼스레 떠올라서였다.

그때 모임에서는 학생들의 실력이 제일 뒤떨어진 한 학급담임교원에 대한 비판이 있었다.

《…선생은 교육자의 자격이 없습니다!》

학장의 총알같이 맵짠 비판이였다.

김혜성은 학장의 그 말을 리해할수 없었다.

사실 그 학급은 처음 조직될 때부터 실력이 그리 높지 못한 학생들이 일정한 비률을 차지하고있었다.그런 조건속에서도 최우등생대렬을 그전에 비해 훨씬 늘였으면 대단하다고 볼수 있었다.오히려 응당한 평가를 해주어야 마땅했다.그런데 교육자의 자격이 없다니 이거야 너무하지 않은가.

그가 이런 생각을 하고있는데 김경숙학장이 두장의 시험지를 펼쳐들었다.그 교원이 맡은 학급의 한 학생의 시험지들이였다.

시험지 한장은 교원이 시험문제를 제시하고 친 시험성적인데 점수가 높았고 다른 한장은 학장이 같은 내용을 응용하여 문제를 내였는데 점수가 시원치 못했다.

《학생들의 실력을 높이자면 주입식교육이 아니라 계발식교육을, 그것도 매 학생의 수준과 능력에 맞는 교육을 주어야 합니다.의사가 10명의 환자를 한가지 처방으로 치료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원리는 같습니다.학생이 10명이면 〈처방〉도 10개가 있어야 합니다.우리 교원들이 오늘의 하루하루에 바친 노력의 결과는 인차 눈에 띄지 않으므로 교원이 어떻게 일하였는가 하는것을 당장은 잘 알수 없습니다.바로 그래서 교육사업은 량심이고 헌신이며 애국이라고 하는것입니다.우리 교육자들의 어깨우에 조국의 미래가 실려있다는것을 자각하고 미래를 위해 자신을 〈밑거름〉으로 깡그리 바칩시다!》

그의 절절한 목소리는 참가자들의 가슴을 세차게 두드렸다.그날 김혜성은 밤깊도록 잠들지 못했다.

지난 기간의 나날들을 돌이켜볼수록 학장이 그날에 한 말이 결코 빈말이 아니라는것을 다시금 새겨안게 되였던것이다.

교원으로, 학장으로 사업해온 40여년간 김경숙학장은 직업기술대학부문의 교과서, 참고서들을 집필하고 수많은 발명증서와 교육과학성과등록증을 수여받았을뿐 아니라 여러명의 박사들을 키워냈으며 이러한 그를 사람들은 이름이나 직무보다도 수재학장, 팔방미인이란 부름으로 더 많이 불렀다.

학생의 실력은 교원의 실력이 결정하며 교원의 실력은 학장의 실력이 결정한다는것을 기준으로 정하고 자기의 실력을 높이기 위해 그가 얼마나 많은 헌신의 낮과 밤들을 맞고보내왔던가.

복도로 걷는 김혜성의 가슴속에서는 이런 훌륭한 교육자를 온 나라가 알도록 어서빨리 내세우고싶은 열망이 더욱더 불타올랐다.

이번에는 절대로 기회를 놓칠수 없었다.

김혜성이 불빛이 새나오는 어느한 사무실앞에 이르니 안에서 주고받는 말소리가 또렷이 들려왔다.김경숙학장과 부학장이 주고받는 말소리가 김혜성의 가슴에 세찬 격랑을 일으키며 날아들었다.

《…학장선생님! 이번에는 경험글을 꼭 써야 합니다.학장선생님은 자신의 한생을 통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교육자로서의 〈최우등〉의 실력을 남김없이 보여주었습니다.꼭 쓰십시오.이것은 학장선생님의 실력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있는 우리 대학 교원들과 학생모두의 한결같은 심정입니다.》

《부학장선생, 우리 교육자의 〈최우등〉이란 말을 가볍게 하지 맙시다.학생의 실력은 성적증에 있지만 교육자의 성적은 조국의 래일이 결정하는것입니다.난 나의 한생이 조국의 부강발전을 위한 〈밑거름〉으로 되였다면 더 바랄것이 없습니다.》

《학장선생님!》

김혜성은 소리치며 문을 활짝 열어제꼈다.

뜨거운것을 삼키는 그의 가슴속에 다시금 깊이 새겨지는것이 있었다.

《밑거름》, 김혜성에게는 그 세 글자가 범상하게 안겨오지 않았다.한 교육자의 성실한 애국의 한생이 고결한 모습으로 가슴에 새겨지는 글발이였다.

학생의 성적은 오늘에 있지만 교육자의 성적은 래일에 있다는 숭고한 지론을 자신의 인생관으로 삼고 조국의 래일을 위한 길에 자신의 모든것을 묵묵히, 깡그리 바쳐가고있는 참된 교육자의 높은 정신세계와 실력이 그 글자들에 그대로 함축되여 빛을 뿌리고있었다.

본사기자 김성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