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3(2024)년 9월 18일 수요일  
로동신문
세대가 바뀌고 혁명이 전진할수록 더욱 투철한 반제계급의식을 지니자
실화
수호자의 총대

2023.2.28. 《로동신문》 6면


흔히 가족사진첩에는 한 인간, 한 가정의 운명선이 비껴있다고 한다.

우리가 사동구역 사동1동에서 사는 김기호로인의 집을 찾았을 때 로인은 찾아온 사연을 듣더니 소중히 건사하고있던 부피두터운 사진첩을 꺼내놓는것이였다.사진첩의 첫 표지를 번진 로인은 지나온 나날이 돌이켜지는지 색날은 사진들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우리에게 그대로 넘겨주는것이였다.

이역의 류다른 정경을 떠올리는 옛 사진들이 눈에 안겨왔다.공화국기를 휘날리며 격렬한 투쟁을 벌리는 재일동포들, 애국의 열기띤 토론을 벌리는 총련일군들…

《이분은 총련 미에현본부 일군으로 사업하던 나의 아버지 김주섭입니다.공화국기를 들고 귀국선에 오르는 이 소년이 어릴적의 저랍니다.》

극심한 가난에 찌들려 부모에게 응석을 부릴 애어린 나이에 고된 로동을 해야 했던 이역의 파리한 소년의 처지는 조국의 품에 안긴 후 극적으로 달라지게 되였다.소년단넥타이를 매고 즐거운 등교길에 오르던 광경이며 해빛밝은 교정에서 배움의 나래를 한껏 펼치던 소년의 발랄한 모습은 혁명의 군복을 입은 청년의 의젓한 모습으로 바뀌였다.애젊은 병사로부터 름름한 군관으로의 성장을 보여주는 사진들을 눈여겨보는 우리에게 김기호로인은 회억깊은 어조로 이렇게 말하였다.

《조국보위는 이 나라의 공기와 물을 마시고 사는 사람들의 마땅한 본분이고 의무가 아니겠습니까.수십년간 군복을 입고 조국을 지킨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저도 그들중의 평범한 한사람일뿐입니다.남들과 좀 다른 점이 있다면 제가 군복을 입게 된 경위라고 해야 할지.》

이렇게 말하며 로인은 추억의 실꾸리를 풀기 시작하였다.

* *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사회주의적애국주의는 계급의식과 민족자주의식을 결합시키고 사회주의제도에 대한 사랑을 자기 조국에 대한 사랑과 결합시키는 애국주의입니다.》

주체57(1968)년 봄 어느날 김기호는 종주먹을 불끈 쥐고 군사동원부로 달음박질하였다.그때로 말하면 미제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사건으로 나라의 정세가 극도로 긴장되여있던 시기였다.미제의 날강도적인 전쟁도발책동에 전민항전태세로 맞선 이 땅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조국수호의 결전장으로 탄원해나섰다.김기호도 그들중의 한사람이였다.하지만 뜻을 이룰수 없었다.벌써 몇번째이던가.

《동무는 공부를 더 하는것이 좋겠습니다.마음껏 공부하시오.이역에서 고생하던 동무같은 사람들을 남달리 아끼고 위해주고싶어하는 우리의 심정을 리해해주기 바랍니다.》

집으로 가라고 자기 등을 떠밀며 말하던 군사동원부 일군의 걸걸한 목소리가 그의 귀전에서 떠날줄 몰랐다.

(마음껏 공부하라? 아니, 난 군대에 나가고야말테다.기어이 손에 총을 잡을테다.)

이렇게 윽벼르며 또다시 나선 길이였다.

군사동원부 일군들을 만난 그는 눈물이 글썽하여 자기 가정의 비참한 수난사를 터놓기 시작하였다.

《나의 아버지의 고향은 락동강가에 있는 비옥한 고장입니다.하지만 일제에게 짓밟힌 그 땅은 오히려 피눈물과 한숨, 기아와 빈궁만을 가져다주는 절망의 땅이였습니다.…》

군사동원부 일군들은 청년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은 김주섭은 보리쌀 한되를 허리에 차고 고모가 있다는 일본으로 건너갔다.고생끝에 겨우 전문학교에 들어갔지만 다달이 학비를 낼수 없어 불행한 고학생은 끝내 쫓겨나고말았다.뒤이어 날아든 징병통지서는 말그대로 죽음의 선고장이였다.매일, 매 시각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며 놈들을 피해다니였지만 살벌한 일본땅 어디에도 그를 품어안아줄 곳은 없었다.

왜놈경찰의 추적을 피해 거치른 이역의 거리를 정처없이 헤매던 불쌍한 식민지청년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국을 찾아주시고 진정한 인민의 나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창건하신 그때부터 태양의 눈부신 빛과 열이 흘러드는 애국의 화원에 인생의 씨앗을 묻게 되였다.4.24교육투쟁과 공화국기게양투쟁, 우리 공화국에 대한 침략전쟁을 반대하는 투쟁의 앞장에서 그는 용감히 싸웠다.

그러던 어느날 한밤중에 일본경찰이 문짝을 부시며 들이닥치였다.공화국사수투쟁에 앞장섰다고 하여 아버지를 마구 폭행하고 온 집안을 란장판으로 만드는 놈들을 쏘아보며 어린 김기호는 두주먹을 불끈 쥐였다.일제는 패망했어도 왜놈들의 악행은 예전그대로였다.

왜놈들에 대한 증오와 분노가 그의 가슴속에서 회오리쳤다.

철창속에서 모진 고문에 시달리다가 페인이 되여 나왔지만 아버지는 꿋꿋하였다.처참한 상처들을 보며 눈물흘리는 아들에게 그는 말하였다.

《기호야, 울음을 그쳐라.싸우는 우리 조국인민들을 그려보아라.미국놈들을 멸망의 나락으로 처넣는 영웅조선을 말이다.우리는 이긴다.암 이기고말고.》

그날 밤 어린 김기호는 꿈속에서 군복을 입은 자기를 보았다.횡포무도한 미국놈들과 간악한 왜놈들이 꼼짝 못하고 벌벌 떠는 조선인민군의 병사가 된 자기의 모습을.

그때부터 소년의 심장은 자기 조국을 지키는 총쥔 군인이 되려는 열망으로 높뛰기 시작하였다.

조선사람을 눈에 든 가시처럼 여기는 왜놈우익깡패들이 수시로 폭행하고 위협할 때에도 우리에게는 위대한 조국이 있다는 생각으로 김기호는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사회주의조국은 이역에서 고생하던 한식솔들을 따뜻이 품어안아주었다.조국의 품은 참된 삶의 보금자리였다.인민정권기관의 일군으로 사업하게 된 아버지도 그렇고 재능을 활짝 꽃피우게 된 김기호의 형제들도 어머니조국의 은정에 눈물로 옷깃을 적시였다.

그런데 이토록 소중한 나라, 고마운 제도를 원쑤들이 어째보려고 발악하고있으니 어찌 참을수 있겠는가.

눈물에 젖은 김기호의 열변은 군사동원부 일군들을 끝끝내 감동시켰다.

《기호동무, 우리는 동무가 훌륭한 군인이 되리라고 굳게 믿소.억센 수호자가 되리라고 말이요.》

이렇게 그는 군복을 입었다.

대학공부를 하고 공장, 기업소나 성, 중앙기관의 일군으로도 사업할수 있었다.허나 피로써 찾은 조국을 다시 빼앗겨서는 안되며 자기 가정은 물론 온 나라 인민이 원한의 수난사를 다시 겪게 해서는 안된다는 자각이 그로 하여금 계급의 총대를 잡고 30여년간 조국수호의 길을 걷게 하였던것이다.

군사복무의 나날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을 모시고 찍은 뜻깊은 기념사진들, 앞가슴을 꽉 채운 수십개의 훈장, 메달들은 그의 인생이 도달한 영광의 절정을 보여주고있었다.

* *

《예나 지금이나 원쑤들은 우리를 호시탐탐 노리고있습니다.순간의 방심도 없이 계급의 총대를 더욱 억세게 틀어쥐고 우리 조국, 우리 제도를 철벽으로 지키자.이것이 조국보위의 일선에서 반생을 보낸 내가 후대들에게 하고싶은 말입니다.》

이렇게 힘주어 말하는 김기호로인의 목소리에는 옛 군관시절의 패기가 어려있었다.

본사기자 허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