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21일 토요일  
로동신문
이런 애국자들이 있어 조국수호의 전호는 더욱 굳건하다

2023.3.22. 《로동신문》 4면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군대는 인민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복무하며 인민들은 군대를 친혈육처럼 사랑하고 성심성의로 원호하여야 합니다.》

얼마전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조국수호의 전호를 군인들과 함께 지킨다는 숭고한 자각 안고 수십년간 원군길을 묵묵히 걷고있는 피현군상업관리소 로동자 양금녀, 운산군농업경영위원회 오리공장 로동자 김명훈, 원산시 장촌종합상점 점장 박래옥동무들에게 위대한 장군님의 존함이 모셔진 사랑의 금반지를 수여하도록 해주시는 은정깊은 배려를 돌려주시였다.

어머니 우리당의 사랑속에 사회주의애국공로자의 영예를 지닌 그들의 값높은 삶은 우리모두에게 있어서 제일가는 애국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하여 가르쳐주는 인생의 훌륭한 교본으로 된다.

 

병사들의 어머니, 그 부름과 함께 40여년

 

나이는 73살, 1982년부터 지금까지 1 000여마리의 집짐승들을 길러 인민군군인들에게 보내줌.

이것은 사람들로부터 애국자할머니로 불리우고있는 피현군상업관리소 로동자 양금녀녀성의 소행자료의 일부이다.

어떻게 오랜 세월 원군길을 걸을수 있었는가고 하는 우리의 물음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병사들의 어머니로 한생을 살고싶었을뿐입니다.》

그의 추억은 초소의 병사들과 인연을 맺던 40여년전 그날에로 거슬러올라갔다.

인민들에게 공급할 김장남새를 자동차에 싣고 부업지에서 돌아오던 그의 일행은 뜻밖의 봉변을 당하게 되였다.간밤에 내린 비로 질벅해진 흙도로에 자동차바퀴가 깊숙이 빠져들었던것이다.이때 훈련중에 있던 군인들이 그들을 띄여보고 한달음에 달려와 도와주었길래 망정이지 하마트면 온밤 자동차와 씨름질할번하였다.양금녀녀성을 비롯한 녀인들이 감탕이 게발린 군복을 닦아주며 군인동지들을 고생시켜 미안하다고 했을 때 그들이 한 말은 얼마나 가슴뜨거웠던가.

우리야 인민의 군대가 아닌가고, 자기 부모를 위한 일에 무슨 고생이랄게 있는가고.

그 말이 양금녀녀성에게 준 여운은 참으로 컸다.그럴수록 이런 고마운 군대를 위해 내 지금껏 바친것이 무엇인가 하는 생각에 허전해지는 마음을 금할수 없었다.생각하던 끝에 그는 가정에서 김치를 정성껏 담그어 군인들에게 보내주었다.그런데 얼마후 군인들에게서 감사의 편지가 날아올줄이야.

편지에서 군인들은 오늘 김치를 맛보며 고향생각을 했다고, 어머니의 마음을 잊지 않고 앞으로 군사복무를 더 잘해나가겠다고 썼다.

그의 얼굴은 대번에 붉어졌다.누나벌이 되는 나를 보고 어머니라니.그러나 그 부름이 무척 정들어보였다.진정 그 부름이야말로 조국을 지키는 길에서 언제나 한마음한뜻이 되려는 그의 뜨거운 마음에 감동된 병사들의 고마움의 분출이였던것이다.

그 편지를 가슴에 안고 한밤을 뜬눈으로 새운 양금녀녀성은 한생을 병사들의 어머니로 살 결심을 품고 집짐승기르기에 달라붙었다.그러나 낮에는 직장일을 하고 저녁에는 가정을 돌봐야 하는 속에서 집짐승을 기른다는것이 말처럼 헐한것이 아니였다.그중에서도 제일 애를 먹은것이 집짐승먹이문제였다.그는 손끝에 피멍이 질 정도로 돌을 추어내고 나무등걸을 뽑아내면서 비경지를 개간하여 농작물을 심었고 매일 새벽과 저녁이면 손달구지를 끌고 인민반들과 수십리가 넘는 곳에까지 가서 부산물을 모아들이였다.

그러던 어느해 겨울 집짐승먹이를 마련하기 위해 밤길에 나섰던 그는 그만 얼음판에 미끄러지면서 다리를 상하였다.그런데 퉁퉁 부어오른 다리를 끌며 힘들게 집에 도착하니 설상가상으로 여러마리의 돼지가 원인모르게 쓰러졌다는 소식이 그를 기다리고있는것이 아닌가.

그는 풀썩 그 자리에 주저앉으며 남편에게 자기의 심정을 터놓았다.

돼지를 키우는 일이 이렇게까지 힘든줄은 몰랐다고.

그때 남편의 목소리가 그의 귀전을 때렸다.

《당신은 그 무슨 명예나 평가를 바라고 이 길에 나섰소? 마른 땅, 쉬운 길만 골라가서는 원군길을 끝까지 갈수 없소.》

순간 그는 전류에 감전된것처럼 정신을 번쩍 차렸다.

남편의 말대로 항일무장투쟁시기와 가렬한 조국해방전쟁의 나날 우리 인민들이 좋은 날만 골라가며, 조건이 갖추어진 다음에야 원호사업을 벌려왔던가.아니였다.그들은 배를 곯으면서도, 죽음이 앞에 있음을 뻔히 알면서도 유격대와 인민군대를 도와나섰다.그것은 군대가 있어야 나라도 있고 가정의 행복도 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있었기때문이였다.

그는 인민군대를 위한 일에서 잠시나마 동요했던 자신을 질책하며 더욱 분발해나섰다.돼지우리를 수십칸으로 더 늘이고 집짐승먹이도 이악하게 마련하였다.

한마리의 집짐승이라도 더!

그의 머리에는 오직 이 생각뿐이였다.

한해두해 세월이 흐르며 양금녀녀성의 머리에는 흰서리가 나날이 짙어갔지만 군대를 위한 정은 더욱 뜨거워만졌다.수십년간 그는 많은 집짐승을 길러 인민군군인들에게 보내주었고 세 자식도 조국보위초소에 떳떳이 내세웠다.

진정 병사들의 어머니라는 정다운 부름이야말로 원군을 자기 가정, 자기자신을 위한 일로 간주하는 한 인간의 고결한 인생관이 낳은 사랑과 헌신의 결정체인것이다.

 

끝나지 않은 복무의 길

 

지금으로부터 20여년전 어느날 운산군농업경영위원회 오리공장 로동자 김명훈동무는 좀처럼 잠을 이룰수 없었다.

군사임무수행중 뜻밖의 부상으로 영예군인이 되여 고향에 돌아온지도 어느덧 1년, 길지 않은 그 나날을 돌이켜보는 그의 가슴은 뜨거워졌다.

자기를 나라의 장한 아들로 내세워주며 혁명의 꽃을 계속 피워나가도록 친혈육의 심정으로 돌봐주던 군안의 일군들과 고향마을사람들의 진정은 얼마나 다심했던가.그럴수록 고마운 조국을 위하여 마음껏 일할수 없는 자기의 몸이 야속하게만 여겨졌다.

그런데 위대한 장군님께서 지난 기간 애국의 한마음 안고 수많은 염소를 길러 사회주의대건설장들에 보내준 아버지에게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못잊을 그날 집의 한쪽벽면을 꽉 채운 지원증서들을 바라보는 그에게 이런 량심의 물음이 가슴을 파고들며 끝없이 공명되여 귀전에서 맴돌았다.

(몸이 불편하다고 조국을 위하는 마음까지 흐려져서야 되겠는가.병사 김명훈, 생명의 마지막순간까지 조국앞에 충실하겠다고 다진 군인의 선서를 벌써 잊었는가.)

하여 그는 마침내 많은 염소를 길러 인민군군인들에게 보내줄 결심을 품게 되였다.

이때부터 그는 이른아침부터 저녁늦게까지 염소관리를 위해 분주히 뛰여다니였다.사실 불편한 다리를 끌며 염소방목을 위해 수십리 먼길을 오가자니 여간만 힘들지 않았다.그러나 그는 갈길이 험하다고, 다리가 아프다고 하여 순간도 방목길을 멈추지 않았다.

몇해전 그가 우량품종의 염소를 구하기 위해 이웃군에 간적이 있었다.

돌아올 시간이 퍼그나 지나도 나타나지 않는 남편을 애타게 기다리던 안해가 그를 찾아 길을 떠났다.얼마쯤 가서 남편을 발견한 그는 뜻밖의 광경앞에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남편이 늘 가지고다니던 지팽이는 물론 웃옷과 신발도 보이지 않았던것이다.

의아한 눈길로 자기를 바라보는 안해에게 김명훈동무는 웃음을 지어보이며 이렇게 말했다.

《이 새끼염소가 내가 다리를 잘 쓰지 못한다고 우습게 생각한것같소.그래서 이놈과 술래잡기를 하느라 시간이 지체되였소.》

그제서야 안해는 그가 온밤 잃어버린 새끼염소를 찾느라 지팽이와 웃옷, 신발로 홰불을 만들고 산판을 헤매였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이런 불같은 헌신이 밑거름이 되여 그는 20여년간 수백마리의 염소를 길러 인민군군인들에게 보내줄수 있었다.사회적우대를 받으며 편안히 생활할수도 있었지만 그 어떤 보수와 대가도 바람이 없이 조국을 위하여 자신을 아낌없이 바치고있는 김명훈동무, 그가 스스로 택한 원군길은 군기앞에 다진 군인의 선서를 한생토록 지켜가려는 영원한 복무의 길, 자신보다 조국을 먼저 생각하는 참된 인간만이 걸을수 있는 애국의 길이였다.

 

삶의 거울-남강마을녀성들처럼

 

원산시 장촌종합상점 점장인 박래옥동무가 하루일을 마친 후면 늘 펼쳐들군 하는 한권의 책이 있다.그것이 바로 그가 20여년전부터 리용해오는 원군일지이다.초소의 병사들을 위해 앞으로 해야 할 일감을 놓고 사색을 거듭하는 그에게 있어서 그 일지는 량심의 기록부, 애국의 시험지와도 같다.

그 원군일지의 첫 페지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주체86(1997)년 2월 6일.오늘 같은 마을에 사는 한 녀인이 상점에 찾아와 많은 상품들을 요구했다.그 많은 물건을 어디에 쓰려는가고 묻는 나에게 그는 건군절을 맞으며 군인들에게 보내줄 원호물자를 마련하려 한다고 하는것이였다.그로 말하면 많은 식솔을 돌보느라 그 누구보다 푼전을 쪼개써야 할 녀성이였다.내가 살림살이에 지장이 가지 않겠는가고 걱정하자 그는 전쟁시기 남강마을녀성들은 무엇이 남아서 인민군대원호사업에 앞장섰는가고 웃으며 말하였다.》

그날 박래옥동무는 집에 들어와서도 낮에 있었던 일이 되새겨져 좀처럼 마음을 진정할수가 없었다.

그 녀성이나 자기나 다같이 군대덕을 입으며 자란 이 땅의 공민들이였다.그런데 군대를 위하는 마음에서는 왜 이다지도 큰 차이가 있는것인가.

이런 생각이 깊어질수록 오빠와 동생들을 조국보위초소로 떠나보내며 부모가 하던 말이 삼삼히 떠올랐다.

나라의 울바자가 굳건해야 매 가정의 울타리가 든든해진다.

그런데 나는 나날이 커가는 행복에 도취되여 잠시나마 인민군대를 잊고 살지 않았는가.이제부터라도 강원도사람답게 남강마을녀성들의 정신세계에 자신을 따라세우자.

하여 그는 남편과 토론하고 가정에서 마련한 원호물자들을 인민군군인들에게 보내주었다.

박래옥동무의 원군길은 이렇게 시작되였다.

그길에서 내 조국이 어떻게 지켜지고 인간의 참된 삶의 가치와 보람은 어디에 있는가에 대하여 더 잘 알게 된 그였기에 초소의 병사들을 위하는 진정은 세월이 흐를수록 더더욱 강렬해졌다.

례년에 없는 폭설이 쏟아져내리던 어느해 겨울 아들과 함께 원호물자를 마련하기 위해 먼길을 떠났던 그의 앞길에 하천이 막아나섰다.눈이 두텁게 쌓여 깊이도 얼음두께도 가늠할수 없는 하천이였다.박래옥동무는 주저없이 걸음을 내짚었다.혹시 얼음이 꺼지기라도 하면 어쩌는가고 급히 만류하는 아들의 손목을 잡으며 그는 나직이 말했다.

《우린 기여서라도 기어이 건너야 해.주춤하면 원군길이 늦어진다.》

이렇듯 원군을 삶의 요구로, 어길수 없는 의무로 여기는 박래옥동무였다.자기는 비록 고생을 하고 부족한것, 어려운것이 많다 해도 병사들이 아무런 불편과 근심걱정없이 군무생활과 군사임무수행을 잘할수 있게 하는데 도움이 된다면 그만이라고 생각한 그였기에 원군의 길에서 힘이 되고 의지가 되여주던 남편이 세상을 떠났을 때에도, 신병으로 앓을 때에도 병사들을 위한 원군의 길을 잠시도 멈추지 않았다.그 강인한 모습을 보며 사람들이 정말 쉽지 않은 소행이라고 감동을 금치 못할 때마다 그는 이렇게 말하군 하였다.

탄약상자를 머리에 이고 사선을 헤치던 남강마을녀성들처럼 살기 위해 노력할뿐이라고.

전화의 불길속에서 남김없이 발휘된 원군의 자랑찬 전통을 대를 이어 계승해나가려는 불같은 일념을 안고 박래옥동무는 오늘도 인민군군인들에게 가정에서 마련한 갖가지 지성어린 원호물자들을 보내주면서 총대로 우리 당의 위업을 충직하게 받들어줄것을 절절히 당부하고있다.

* *

우리가 앞에서 소개한 원군미풍열성자들은 이 땅 그 어디에서나 볼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다.그러나 그들이 걸어온 인생길에는 우리모두가 심장깊이 간직해야 할 하나의 진리가 있다.그것은 바로 원군은 제일가는 애국이며 병사들을 위한 길에 우리의 행복도, 찬란한 미래도 있다는것이다.

누구나 인민군대를 위한 일을 자신을 위한 일로 여기고 원군기풍을 주체조선특유의 국풍으로 승화시켜나갈 때 위대한 전승의 70년력사는 700년, 7 000년으로 세세년년 이어질것이다.

글 및 사진 본사기자 김학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