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4.11. 《로동신문》 4면
오늘 우리 인민은 당의 두리에 굳게 뭉쳐 부닥치는 시련을 과감히 뚫고헤치며 신심드높이 전진하고있다.
이 거창한 투쟁은 우리 당일군들이 생눈길을 앞장에서 헤치면서 당정책관철의 제일기수가 되고 인민들에게 당의 믿음과 사랑, 뜨거운 정을 안겨주는 인민의 심부름군, 진짜배기혁명가가 될것을 요구하고있다.그러자면 당일군들이 자신뿐 아니라 가정도 혁명화하여 대중의 수범이 되고 거울이 되여야 한다.당일군들이 가정을 혁명화하지 못하면 맡겨진 책무를 원만히 수행할수 없고 인민을 위한 멸사복무에 충실할수 없을뿐 아니라 대중을 교양할 자격도 사실상 잃게 된다.
그만큼 안해들의 위치는 대단히 중요하다.안해들이 흔들리면 그의 남편인 당일군들이 자기의 본분과 책임을 다할수 없게 되고 당일군들이 제구실을 못하면 혁명의 전진이 답보하게 된다.
이렇게 놓고보면 당일군의 안해는 단순히 한가정의 주부라고만 할수 없다.우리 당일군들의 곁에 혁명가다운 훌륭한 안해들이 있을 때 당일군들이 당의 사상과 뜻에 더욱 충실할수 있고 대중의 신뢰가 더욱 공고화되게 된다.
이런 견지에서 볼 때 배천군의 군당일군가족작업반에 대한 이야기는 의의있는 문제를 시사해준다.
우리가 설자리
우리 나라의 시, 군들중에서 논이 가장 많은 비률을 차지하는 군의 하나인 배천군에는 벌이 넓은것만큼 애국농민들 또한 많다.그들중에는 지난 10년간 애국의 줄기찬 행보를 이어온 군당일군가족작업반의 녀인들도 있다.
제힘으로 농사를 잘 짓고 물질기술적토대도 강화한것으로 하여 소문난 배천군의 군당일군가족작업반에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있다.그중에는 중앙의 책임일군도 있고 먼길을 달려온 농업부문의 일군들과 기술자들도 있다.참관자들은 이구동성으로 강한 녀성들앞에 머리가 숙어진다고 하면서도 혹시 남편들이 도와준것이 없는가고 슬며시 묻기도 한다.
사실 이런 물음은 이들에게 있어서 제일 실례되는 말이다.왜냐하면 그들은 지난 10년간 작업반건물의 기초로부터 시작하여 전야를 살찌운 한줌한줌의 거름에 이르기까지 자기의 땀과 정성을 깡그리 바치였기때문이다.
작업반에는 소중히 보관하고있는 한권의 기록장이 있다.이제는 보풀이 일고 땀에 젖어 어떤 글자들은 잘 알아볼수 없지만 그 한페지한페지는 이들이 힘들어도 순전히 자기 힘으로 모든것을 이룩해온 10년행로의 축도이고 보증서이기도 하다.그 기록장을 번지면서 우리는 가슴뜨겁게 절감하였다.
늘 사람들이 우리들을 지켜본다, 힘들어 벌판에 쓰러지면 이를 악물고 다시 일어나 하나부터 백천가지를 다 우리 녀인들의 손과 지혜와 땀으로 해내야 한다, 이 문제에서는 단 한번의 탈선도 허용할수 없다는 자각과 열망을 안고 10년을 하루같이 달려온 이들이 참으로 눈물겹도록 고맙고 자랑스럽다.
《일군들은 자신이 고지식하고 청렴결백할뿐 아니라 가정혁명화를 잘하여 안해와 자식, 형제들이 맡은 일에 성실하고 당이 부르는 어려운 초소에도 스스로 탄원해나서도록 하여야 합니다.》
우리와 만난 한 일군은 군당일군가족작업반에 대한 이야기의 서두에 3월 8일이라는 날자를 떠올렸다.
온 나라 녀성들에게 축하의 꽃다발이 안겨지는 3.8국제부녀절, 이날은 홍현농장 제15작업반에서 일하는 군당일군가족들에게 있어서 참으로 의의깊은 날이다.올해의 3.8절풍경은 더욱 이채로왔다.바로 그날이 군당일군가족작업반이 뜻깊은 걸음을 내짚은지 10년이 되는 날이였던것이다.하기에 그들에게 있어서 3월 8일은 다른 녀성들처럼 축복받는 날로만 아니라 새 출발의 날로 보다 의미깊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였다.달수로 계산하면 120달인 짧지 않은 세월에 얹어보는 그들의 추억은 얼마나 깊고 뜨거운것인가.
지금으로부터 10년전 군당일군가족작업반의 실태를 료해한 군당책임일군의 마음은 무거웠다.
작업반을 다시 추켜세우지 못한다면 군당일군들이 인민들의 맑은 눈빛을 어떻게 마주볼수 있겠는가 하는 우려때문이였다.
그리하여 군당일군가족작업반을 쇠소리나게 재조직하는 문제가 부각되였고 군당책임일군이 제일먼저 상하수도사업소에서 일하던 안해를 농장으로 떠밀었다.군인민위원회와 군농근맹위원회에서 일하던 녀인들, 어느한 공급소와 온실, 도시경영부문에서 일하던 녀인들을 비롯하여 각이한 직업에 종사하던 수십명의 녀인들이 한날한시에 농장원들로 되였다.
군당일군가족작업반의 기록장에는 10년전 3월의 광경이 이렇게 씌여졌다.
《우리
높은 뜻과 리상이 어린 첫걸음이였다.하지만 그 첫걸음을 백걸음, 천걸음으로 꿋꿋이 이어간다는것은 말처럼 수월하지 않았다.그 머나먼 길에는 마음속에 갈마드는 동요와의 싸움도 있었고 녀성의 힘으로 넘기 힘든 육체적극한점들도 있었다.
사실 군당일군가족작업반이 다시 조직되던 초기에 오늘과 같이 10년의 자랑스러운 행로를 이어오게 되리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많지 못했으며 한두해를 해보다가 그만둘것이라는 예측이 태반이였다.
군당일군의 안해들은 오직 완강한 실천으로 자기들의 첫걸음을 증명하여야 했다.그런데 손가락들도 길고짧은것이 있는것처럼 일부 녀인들은 얼마동안 농사를 해보고 심신이 약해진탓에 《고정환자》로 되기도 하였다.
그때를 돌이켜보며 당세포비서 리영애동무는 제일 힘든것은 생소한 농사일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이 흔들리는것이였다고 말하였다.
마라손경기에서는 마지막까지 달려가는 선수가 있는 반면에 기권하는 선수도 있을수 있다.하지만 출발선을 함께 떠난 우리 당일군의 안해들속에서는 단 한명의 락오자도 없어야 한다는것이 작업반의 준칙이였다.
그리하여 밤늦게 일하고 지친 몸이였지만 분조의 모든 성원들이 허리병을 앓고있는 한 작업반원의 집에 찾아가 물도 길어주고 빨래도 해주었다.어서빨리 병을 털고일어나 남편과 자식앞에 떳떳할수 있게 우리 손잡고 알찬 이삭을 가꿔가자는 그 진정앞에 녀인은 눈물을 쏟고야말았다.이렇게 마음과 마음의 문들이 열리는 속에 군당일군가족작업반원들의 사상관점과 일본새에서는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게 되였다.
생활의 기록은 지워지지 않는 자욱이다.우리 잠시 군당일군가족작업반 기록장의 한페지를 또 펼쳐보자.
《못 한개 박자고 해도 세대주들의 손을 빌려야 했던 우리들이 자기 손으로 작업반건물의 벽체를 쌓고 미장도 해야 했다.
지금도 제일 잊혀지지 않는것은 강에서 모래를 채취하여 자동차에 싣던 일이다.순수 녀인들만으로 종일 일하다나니 기진맥진하여 모래마대를 더는 적재함에 올릴수가 없었다.이때 반장동지가 여기에서 우리를 도와줄 사람은 단 한명도 없다, 대중이 우리를 지켜보고있다고 하면서 먼저 어깨를 들이밀었다.
끝끝내 우리는 작업을 마감짓고 귀로에 올랐다.달리는 자동차우에서 누군가의 선창에 따라 노래 〈봄을 먼저 알리는 꽃이 되리라〉를 함께 불렀다.그날밤의 노래는 무대우에서 부르던 노래와는 전혀 다른 의미로 우리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봄을 먼저 알리는 꽃이 되리라!
이는 노래의 구절이기 전에 남편들과 함께 충성의 한길을 곧바로 이어가려는 안해들의 불같은 마음이다.남편의 그늘밑에서 찾는 《행복》이 아니라 제손으로 옥토를 가꾸고 진정한 행복을 창조하는 보람있는 삶, 당일군들의 밑거름이 되여주고 마음의 지지점이 되여주는 녀성혁명가들의 고결한 좌우명이다.
배천군당위원회 일군들은 말한다.처음 안해들이 벌로 나갈 때는 근심도 많았지만 이제는 땅과 함께 날마다 성장하는 안해들에 대한 긍지와 사랑이 더욱 각별해졌으며 안해들이 땀흘려 일하니 떳떳한 마음으로 대중앞에 나설수 있게 되였다고.
사시장철 논에서 살다싶이 하는 안해들의 성실한 모습에서 큰 힘을 얻었으며 때로 안해들에게서 농사경험도 《강의》받고 아래실정도 더 잘 알게 되였다는것을 비롯하여 안해들로 하여 더욱 강해진다는 군당일군들의 진정어린 토로, 자식들도
사람에게는 삶의 위치를 선택할 권리가 있다.그 권리는 품고있는 뜻과 리상에 따라 결정된다.하다면 당일군의 안해들이 설자리는 어디인가.그것은 당에서 제일 걱정하는 문제를 풀어드리기 위한 애국의 첫자리, 깨끗한 량심과 강한 의지가 없이는 들어설수 없는 제일 어렵고 힘든 자리임을 배천군의 군당일군가족작업반원들이 걸어온 10년의 자욱들이 말해주고있다.
땅이 보증한 녀인들
흔히 실농군을 가리켜 땅과 말하는 사람, 땅이 찾는 주인이라고 한다.
우리는 지난 10년간 땅을 변모시키고 다수확의 열매를 거둔 군당일군가족작업반원들을 땅이 보증한 녀인들이라고 칭하고싶다.
초기에는 농사와 너무도 거리가 멀었던 녀인들, 허나 오늘 그들은 땅과 더없이 친숙해졌다.그들이 가꿔가는 땅은 비록 넓지 않아도 그 한치한치에는 남모르게 바쳐온 고뇌와 눈물, 환희가 슴배여있다.모름지기 지난 10년간 땅과 함께 무수히 태여난 그들의 이야기들을 모두 엮으면 부피두터운 장편소설이 될것이다.
사실 군당일군가족작업반이 처음 담당한 포전은 낮은 소출밖에 내지 못하는 저수확지였다.그때 땅의 표면은 희읍스름하였다.흙이 바지에 묻으면 단번에 털수 있을 정도로 지력이 낮았다고 한다.그런데 지금은 그것이 옛말로 되여버렸다.땅이 거무스름하게 변하여 왕성한 기운이 뻗치는 옥답으로 되였다.
이 커다란 변화에는 이악한 녀인들이 지난 10년세월 묵묵히, 성실히 바쳐온 땀방울들이 진하게 어려있다.이제는 보풀이 일고 색날은 수십권의 영농일지들도 페지마다에서 《땀향기》가 물씬 풍기는듯싶다.그래서인지 힘은 쓸수록 커지고 땅은 주인의 노력만큼 열매를 바친다는 이곳 작업반원들의 지론이 우리에게는 생소하게 들리지 않았다.
대지에 씨앗을 묻고 거름을 내는 농장원이라고 하여 땅의 보증을 받을수 있는것은 아니다.땅은 말이 없다.하지만 땅은 진심과 허식을 정확히 선별하며 잘 익은 황금이삭들로 주인을 보증한다.땅의 보증은 곧 량심의 보증이다.이것은 그 어떤 표창에도 비할수 없는 귀중한것으로 된다.
돌이켜보면 군당일군가족작업반이 농사일을 시작한 첫해에는 변변한 건물도 없었다.그들은 선생격인 농장원들의 지도를 받으며 힘겹게 농사를 지었다.지금의 시점에서 보면 별로 큰일도 아닌 논뚝정리를 전혀 할줄 몰라 몇차례나 반복작업을 하였다니 당시 그들의 심리적고충이 얼마나 컸겠는가.
그러나 녀인들은 물러서지 않았다.백가지 농사일을 착실히 배우고 직심스레 익히면서 땅을 기름지게 하였다.
니탄층을 우물처럼 깊게 파내던 일, 어뜩새벽 동네와 친척들의 집을 모두 찾아다니며 진거름을 모아들이고 손달구지와 자전거를 총동원하여 읍에서 벌까지 쉬임없이 나르던 일, 집에 오면 밥을 몇술 뜨기 바쁘게 곯아떨어지는 안해의 모습이 보기 딱한 나머지 한 군당일군이 다른 농장에 부탁하여 거름을 실어내왔을 때 그것을 비상사건으로 보고 포전에서 가졌던 류다른 모임, 온종일 땀주머니가 되여 일하다가 너무 기진하여 넓은 벌의 한복판에서 어린애처럼 울기도 했던 일…
못잊을 그 나날에 매일 땅을 밟으면서도 땅의 귀중함을 미처 몰랐던 녀인들이 마침내 땅의 참된 주인으로 자라났다.
《제손으로 씨를 뿌리고 가꾼 낟알이여서 그 한알한알이 얼마나 귀하고 아까운지 집에 벼이삭들을 매달아놓고 보기만 하면 좋겠다.내 입에 푹푹 떠서 넘기지 못하겠다.》
이것은 한 작업반원이 황금나락 설레이는 풍요한 벌을 바라보며 수첩에 적은 솔직한 심정이다.
땅과 녀인들, 이 귀중한 부름과 더불어 하나의 이야기가 가슴을 친다.몇해전 가을 이른새벽부터 벼단묶기를 다그치던 그들은 많은 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에 접하게 되였다.3일동안 계획했던 일을 그날중에 와닥닥 끝내기로 결심한 그들은 한밤을 꼬박 포전에서 새웠다.다음날 아침에도 쉴념을 못하고 비속에 뛰여들어 지난밤에 벼단들을 묶으면서 논에 흘린 이삭들을 알알이 주어내고야 얼굴에 그윽한 웃음을 띠웠다.이들은 힘들면서도 보람찼던 그때의 일을 《비설겆이》라는 말에 담아 추억하고있다.
진정 그들은 대지의 어머니이다.쌀로써 사회주의를 지키고 혁명을 보위하는 애국농민이다.지난해 당에서는 다수확농민으로 자라난 20명의 군당일군가족작업반원들을 도농업부문열성자회의에 불러주었다.
이렇듯 땅을 살붙이처럼 사랑하고 진심을 묻었기에 농사에 생소했던 녀인들이 땅의 보증을 받게 되였으며 그 땅이 탐스러운 이삭으로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수확의 계절, 환희의 계절들을 맞이할수 있었다.
땅이 있는 이상 우리 손으로 능히 쌀폭포를 쏟아낼수 있고 잘살수 있다, 이것은 군당일군가족작업반원들의 드팀없는 신조이다.
작업반의 첫걸음부터 보폭을 같이해온 윤영옥동무는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 작업반이 없었다면 당원으로 성장한 저의 값높은 오늘도 생각할수 없습니다.》
그의 소박한 진정이 말해주듯이 군당일군가족작업반은 단지 농사를 짓는 단위만이 아니다.바로 여기는 당일군의 안해들이 몸도 마음도 새롭게 태여나는 혁명학교이다.사실상 이것은 수천t의 쌀을 생산한것보다 더 값진것이다.
우리는 이를 증명하는 많은 사실가운데서 한가지를 더 이야기하려고 한다.처음 작업반의 뜨락또르운전수는 남자였다.그런데 지금은 리금순동무가 뜨락또르의 운전대를 잡고있다.운전석에 배심든든히 앉아 풍년철마를 자유자재로 몰아가는 그의 모습은 활력에 넘쳐있다.
바로 몇해전에 그는 작업반장이 운전수의 일을 도와주던 자기에게 이왕이면 운전을 배우라고 하였을 때 눈을 덩둘하게 뜨며 기겁했었다.
반장은 녀자라고 남자가 하는 일을 못한다는 법이 없다고 용기를 북돋아주었다.이렇게 되여 처녀시절부터 노래를 잘 부르기로 소문났던 금순동무가 오늘은 넓은 벌에서 뜨락또르의 힘찬 발동소리로 제일 소중한 《노래》를 높이 울려가는 시대의 가수로 자라나게 되였다.
작업반의 녀인들은 한결같이 소박하다.허나 그들의 마음속에는 불덩이같은 애국의 열망이 간직되여있다.자기 집 쌀독보다 나라의 쌀독을 먼저 생각하는 그들은 해를 이어 백옥같은 애국미를 나라에 바치였다.
지난해 최대비상방역기간에도 많은 량의 식량과 온실에서 생산한 남새들을 주민들에게 보내주었다.진심에는 진정이 따른다.인민들은 겉모습보다 속마음이 더 고운 군당일군가족작업반 녀인들을 사랑한다.
우리가 한 군당일군의 집에서 취재를 마치고 녀인과 함께 밖으로 나왔을 때 마주오던 동네로인이 《그러다가 얼굴을 아예 잊어버리겠구만.너무 무리하지 말라구.》 하고 다정히 건네던 인사말은 그대로 군당일군가족작업반에 대한 인민들의 평가와 같다.
군당일군가족작업반이 받은 땅의 보증, 그것은 곧 인민의 보증이다.인민들의 반기는 얼굴과 정겨운 눈빛, 따뜻한 인사말이 말없는 땅의 보증을 대신한다.
서로 어깨겯고 다같이 나가자
씨앗은 작아도 크고 알찬 열매를 자래운다.10년전 의의깊은 걸음을 뗀 군당일군가족작업반은 우리의 풍성한 생활이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되는가를 깨우쳐주는 행복의 씨앗이라고 할수 있다.
알찬 낟알들이 들어있는 벼낟가리들은 볼수록 흐뭇하다.작업반에는 돼지와 닭, 오리, 게사니, 염소, 칠면조들이 우글거리는 축사가 있고 푸르싱싱한 남새들이 자라는 온실도 있다.어디 그뿐인가.실리있는 버섯재배장과 양어장, 우렝이서식장이 꾸려져있으며 탐스러운 열매를 주는 과일나무들도 우거져있다.이런 그쯘한 토대가 갖추어진것으로 하여 작업반에서는 반원들에게 매달 닭알과 고기, 기름은 물론 철따라 생신한 남새와 과일도 공급하여 가정들의 식생활을 윤택하게 해주고있다.
이 모든 성과가 그처럼 가슴뿌듯하게 안겨오는것은 바로 군당일군가족작업반원들이 자기 힘을 굳게 믿고 이악하게, 줄기차게 창조한 덕이라는데 있다.
이것을 립증하는 하나의 사실이 있다.
지난해 가을부터 작업반에서는 또 하나의 대담한 목표를 내세우고 녀성들의 손으로 2만여장의 블로크를 찍었다.문제는 읍에서 작업반까지 어떻게 운반하겠는가 하는것이였다.제힘에 습관된 군당일군가족작업반원들은 제각기 자전거들에 무거운 블로크들을 싣고 기운차게 내달렸다.그리하여 군에서는 군당일군의 안해들이 아침마다 자전거로 블로크를 나르는 새로운 풍경이 생겨나게 되였다.
군당일군가족작업반에는 이와 류사한 이야기들이 허다하다.만약 그들이 단 한순간이라도 누구의 도움을 받으려 하였다면 오늘처럼 전투력있는 작업반으로, 인민들의 진심어린 인사를 받는 녀성집단으로 자라나지 못했을것이다.
눈에 보이는 행복의 창조물들도 소중하다.땅을 기름지게 걸구어 다수확의 확고한 토대와 전망을 마련한것도 귀중한 성과이다.허나 이보다 더 우리의 가슴을 울린것은 작업반에 공기처럼 흐르는 공산주의적미풍, 모든 부문과 단위가 다같이 전진하고 발전해야 한다는 시대적요구에 실천으로 화답하는 이곳 녀인들의 순결한 마음과 모습들이다.
언제인가 읍에서 돌아오던 길에 리화성작업반장은 이웃작업반의 농장원들이 쉴참에 자기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가족작업반을 따라갈수 없다고 하는 말을 듣게 되였다.순간 그의 머리에 갈마든것은 그 어떤 자족감이 아니였다.
(당에서는 특정한 작업반들만이 아닌 모든 작업반들이 다수확을 향해 활기차게 나아가기를 바라고있다.이삭에는 크고작은 벼알들이 있을수 있어도 전면적발전을 지향하는 우리 사회에서는 앞선 집단과 뒤떨어진 집단이 따로 있어서는 안된다.우리가 다수확의 불길을 지펴올리는 불씨가 되자.)
그의 결심은 작업반원들의 지지를 받았다.
어느 가을날 이웃작업반에서 탈곡기가 고장나 애를 태운다는것을 알게 되였을 때였다.군당일군가족작업반에서는 창고에 있던 예비부속품을 주저없이 내놓았다.그 부속품으로 말하면 수십리 먼길을 걸어 힘들게 구해온 말그대로 《종자》였다.그런데 얼마후 공교롭게도 군당일군가족작업반의 탈곡기도 고장날줄 누가 알았겠는가.
빈 창고에서 울상이 되여 《예비부속품을 주지 않았으면…》 하고 말하는 한 녀인에게 리화성동무는 이웃작업반의 안타까움을 덜어주었으면 후회하지 말자고, 서로 어깨겯고 다같이 나가야 한다고 흔연히 대답하였다.
몇해전 군당일군가족작업반에서는 경사스러운 광명성절을 맞으며 예술소품공연을 품들여 준비하고 다른 작업반들을 순회하였다.자기들이 일하는 과정에 터득한 과학농사경험을 구절마다에 구수하게 반영한 시이야기, 흥겨운 가야금병창을 비롯한 모든 종목들이 농장원들의 절찬을 받았다.해당 일군들은 그들의 손을 잡고 물질적지원을 받은것보다 더 큰 방조를 받았다고 거듭 감사를 표시하였다.
우리는 이 크지 않은 지면에 지난 10년간 군당일군가족작업반에서 꽃펴난 미거들을 일일이 렬거할수는 없다.한마디만 부언하면 군당일군가족작업반은 아름다운 덕과 정으로 화목하고 전진하는 공산주의적작업반이며 자신들의 실천적모범으로 대중을 당정책관철에로 떠밀어주는 기수들이라는것이다.
여기에 의미깊은 이야기들이 있다.
군당일군가족작업반이 읍에서 진거름을 나르기 시작한 다음부터 군인민위원회와 군농업경영위원회가족들도 그뒤를 따라나섰고 읍과 가까운 리들에서도 저마다 진거름을 실어나르기 위한 경쟁이 벌어졌으며 온 군이 다수확열기로 부글부글 끓게 되였다.
류달리 엄혹했던 지난해 봄에도 하루가 다르게 푸른 주단이 펼쳐지는 군당일군가족작업반의 포전들을 보면서 어떤 사람들은 밤늦도록 일하는 그들에게는 그 어떤 어려움속에서도 지칠줄 모르게 하는 특별한 약이 있는것같다고 하였다.그 말을 듣고 작업반원들은 우리에게 그런 약이 있다면 그것은 《정신력특효약》이라고 말해주었다.이것 역시 강하고 참된 녀성들이 발휘하는 혁신적인 일본새와 투쟁기풍이 대중의 정신력을 힘있게 고무하였음을 보여주는 뚜렷한 례증이다.
군당일군가족작업반의 규모는 크지 않다.그러나 모두에게 새겨주는 의미는 참으로 크다고 할수 있다.
이 땅의 어디에나 당일군들이 있고 또 안해들도 있다.우리 당일군들은 대오의 기수가 될뿐 아니라 그 안해들도 군중의 거울이 되여야 한다.당일군들이 군중속에 들어가 그들과 어울린다고 하여 그것이 곧 군중성과 멸사복무의 전부로 되는것은 아니다.우리 당일군들이 자신뿐 아니라 안해들도 혁명가적품성을 체현하게 하고 당이 부르는 어려운 초소에서 성실하게 일하여 인민의 보증을 받을 때만이 당의 참된 전사라고 말할 권리가 있는것이다.
당의 두리에 전체 인민이 한마음한뜻으로 뭉쳐 억세게 나아가는 우리 시대의 거창한 흐름에 활력을 더해주는데서 배천군의 군당일군가족작업반에 대한 이야기는 결코 작은 이야기가 아니다.
이런 훌륭한 안해들이 곁에 있을 때 우리 당일군들이 인민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서게 되고 당조직들의 전투력이 더욱 강화된다는것을 이 평범한 녀인들이 웅변적으로 보여주고있다.
우리는
글 본사기자 김철
사진 리동명
농장벌에 자기들의 깨끗한 량심을 묻어가는 군당일군가족작업반의 혁신자들
앞줄(왼쪽에서부터)-정영숙, 조혜경, 조향미, 신금희, 정명경, 유일옥, 정철옥, 백성녀
뒤줄(왼쪽에서부터)-김옥별, 김향숙, 박영심, 공영순, 윤은옥, 정꽃송, 설금주, 안성옥, 리영애,
박옥향, 리화성(작업반장), 우옥별, 윤영옥, 류은주, 김현옥, 윤희, 김일심, 한정심, 조은실,
리금순, 표인옥, 리금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