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국가의 발전행로에 뚜렷한 자욱을 새긴 충신, 애국자들
나라의 살림살이를 깐지게 한 일군
전 정무원 부총리 겸 국가계획위원회 위원장 로태석동지
2023.5.6. 《로동신문》 3면
공화국의 력사에 이름을 남긴 사람들가운데는 오래동안 국가경제기관의 중요직책에서 사업하면서 우리 당의 경제건설로선을 옹호관철하여온 로태석동지도 있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일군들은 앉아서 나라일을 걱정이나 하는 우국지사가 될것이 아니라 자기 한몸을 내대여 조국을 받드는 참다운 애국자가 되여야 합니다.》
해방전 로동자의 가정에서 태여난 로태석동지는 배움의 뜻을 품었지만 나라가 없는탓에 이역땅에서 고달픈 고학의 나날을 보내였다.해방이 되자 위대한 수령님의 품에 안긴 그는 흥남지구인민공장(당시)에서 로동자들과 마음과 뜻을 합쳐 헌신적으로 일함으로써 1947년말에는 공장이 첫 인민경제계획을 초과완수하도록 하는데 기여하였다.
그의 이런 남다른 애국심을 귀중히 여기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에게 공장의 계획사업을 맡겨주시고 그후에는 큰 화학공장에서 관리일군으로 일하도록 크나큰 신임을 안겨주시였다.
전후 파괴된 공장의 복구건설을 책임지고 지혜와 열정을 다 바쳐가던 그는 뜻밖에도 평양에 올라와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진행하는 중요한 회의에 참가하게 되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화학공장사업에 대해 알고싶어서 동무를 불렀다고 하시면서 이야기를 좀 들어보자고 하시였다.
그는 로동자, 기술자들모두가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를 받들고 한결같이 떨쳐일어나 공장복구사업을 힘있게 추진하고있는데 대하여서와 벽돌직장과 소형전기로를 새로 건설하고있는데 대하여 보고드리였다.
공장복구에 대한 확고한 신심을 가지고 제기되는 문제들을 침착하고 조리있게 이야기하는 그의 사업보고를 마지막까지 들어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로태석동무와 같이 유능한 기술자가 많으면 얼마나 좋겠는가고, 이 동무는 기술도 밝고 일에서도 성실한 우리 당의 보배라는 값높은 평가를 안겨주시였다.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경제부문에서 절박하게 제기된 문제는 사회주의제도가 서고 경제규모가 비할바없이 커진데 맞게 계획화사업이 적극 따라서지 못하고있는것이였다.하지만 로태석동지를 비롯한 계획일군들은 그것을 풀기 위한 타개책을 찾지 못하고있었다.
이러한 때 로태석동지는 위대한 수령님으로부터 중앙의 의도가 제때에 쭉쭉 전달되게 하자면 계획화사업에서 일원화체계를 확립해야 한다는 가르치심을 받아안게 되였다.당의 뜻대로 계획의 일원화, 세부화를 완성하자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옳바른 방도를 찾아쥔 그는 그 관철을 위해 한몸을 아끼지 않았다.
언제인가 어버이수령님을 모시고 중요한 생산설비개조문제를 토의하는 회의가 진행될 때였다.한대의 로를 개조하는데 필요한 로력과 자재, 자금, 기간에 대하여 과학적수자를 가지고 정확히 분석하는 로태석동지를 보시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모든 일을 과학적으로 타산하고 선후차를 옳게 가릴줄 아는 그의 사업능력을 높이 치하하시였다.
한번은 일부 사람들이 그에게 낡은 인테리요, 사상체계가 바로서있지 않소 하면서 감투를 씌운적이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로태석동지를 부르시여 우리 당은 동무를 절대로 그런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고, 누가 뭐라고 하든지 자신께서는 동무를 믿는다고 뜨겁게 교시하시였다.
자애로운 어버이의 크나큰 믿음을 심장깊이 간직한 그는 나라의 살림살이를 당이 바라는대로 깐지게 해나가기 위해 더욱 불같이 살며 일하였다.
1979년 12월 국가계획위원회 위원장사업을 하던 그가 뜻밖에 세상을 떠났다는 비보를 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참 아까운 동무를 잃었다고, 로태석동무는 말이 없고 일만 아는 충실한 동무였다고 하시며 떠나간 전사의 생을 값높이 평가해주시였다.
로태석동지와 같이 위대한 수령님의 자애로운 품속에서 애국적인 삶을 누리며 당과 조국을 위해 한생을 참답게 산 전세대들의 고귀한 넋은 오늘 우리 인민의 투쟁과 생활의 귀중한 본보기로 되고있다.
안정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