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4일 일요일  
로동신문
살림집문제를 통해 본 판이한 두 사회제도

2023.5.17. 《로동신문》 6면


집은 사람이 살아가는데서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보금자리이다.그래서 예로부터 설음중에 큰 설음은 집없는 설음이라는 말이 전해져왔다.

인간생활에서 절실한 보금자리문제 하나만 놓고보아도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는 명암의 대조가 뚜렷하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인민은 실생활을 통하여 우리 나라 사회주의제도야말로 자기들에게 문명하고 행복한 생활을 마련해주는 가장 우월한 사회제도라는것을 확신하고있습니다.》

화성거리에 새 보금자리를 편 복받은 주인공들, 그들은 울었다.누구라 할것없이 두세마디안팎에 대뜸 눈물을 흘리였다.기쁨의 눈물, 고마움의 눈물을.

이런 희한한 살림집이 내 집이라는것이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고, 국가로부터 무상으로 집을 받는것은 우리 나라에서만 있을수 있는 일이라고 하면서 온 가족의 마음을 담아 우리 원수님께 큰절을 올리고싶다고 격정을 터뜨린 화성구역 금릉1동 32인민반의 림현숙녀성, 매일 자고깨면 이 집이 정말 우리 집이 옳은가 하는 생각에 손등을 꼬집어본다고 하면서 하루에 한세대씩만 돌아보아도 이 거리의 1만세대를 다 돌아보려면 근 30년이 걸린다는 말을 들으며 나라사정이 어려운 속에서도 인민을 위한 이토록 거창한 행복의 창조물을 일떠세워주신 경애하는 원수님의 사랑에 목메여오름을 금할수 없다고 말한 화성1동 39인민반의 리춘남부부, 여기로 이사온 후부터 꿈같은 행복에 낮이나 밤이나 온몸이 달아올라 그만 《불면증》이 생겼다는 화성1동 26인민반의 오순필녀성…

이것이 얼마전 우리가 만나본 화성거리주민들의 모습이였다.

우리 당의 인민대중제일주의리념이 응축된 기념비적창조물, 문명의 새 거리인 화성거리, 당과 국가가 무상으로 안겨준 현대적인 살림집에 새 보금자리를 편 그들은 모두가 이 땅 어디서나 볼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살던 곳도, 일터도 서로 다르지만 그들이 심장으로 터친 목소리는 《경애하는 원수님, 정말 고맙습니다!》 , 《우리의 사회주의제도가 제일입니다!》였다.그들은 하나같이 근면한 노력으로 더 많은 재부를 창조하고 보다 좋아질 래일을 앞당겨갈 애국의 의지를 터치였다.

인민의 행복을 위한 사업들이 통이 크게 전개되여 귀중한 결실로 이루어지고 인민들의 피부와 생활에 실질적인 혜택이 이토록 속속들이 가닿고있는것이 바로 우리 조국의 현실이다.

인민에게 세상에 부럼없는 문명하고 행복한 생활을 마련해준다는것은 결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고마운 우리 제도가 아니고서는 인민의 요구와 리익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고 철저히 옹호할수 없으며 인민이 바라는 꿈과 리상을 현실로 꽃피워나갈수 없다.하기에 우리 인민은 우리식 사회주의를 자기들의 삶과 행복의 터전으로 소중히 여기고 끝없이 사랑하고있으며 사랑과 헌신, 단결의 힘으로 밝은 미래를 향해 힘차게 나아가고있는것이다.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이런 경이적인 현실을 상상조차 할수 없다.

자본주의는 존재해오는 전 기간 어느 한순간도 근로대중의 요구와 리익을 옹호하고 대변한적이 없다.극소수의 착취계급이 주인행세를 하는 자본주의사회에서는 근로대중을 위한 일이란 꿈에도 생각할수 없다.

번쩍거리는 호화주택과 현대적인 살림집들이 서방세계의 《문명》을 뽐내듯이 즐비하게 늘어서있지만 모두 돈많은자들을 위한것이고 근로대중은 그 주변에조차 얼씬할수 없다.

몇해전 어느한 자본주의나라에서는 세상사람들을 경악케 한 살림집부동산거래가 진행되였다.팔린 호화주택의 가격은 천문학적이였다.

거의 같은 시기에 다른 한 자본주의나라에서 있은 일이다.중병에 걸린 한 로동자가 겨우 빚을 내여 마련한 치료비를 가지고 병원에 찾아갔지만 종시 입원할수가 없었다.주택소유자를 《련대보증인》으로 내세울것을 요구하는 병원규정때문이였다.세방살이를 하고있는 그 로동자에게는 친척, 친구들중에 자기 집을 가지고있는 사람이 단 한명도 없었다.결국 입원치료를 받지 못한 그는 끝내 목숨을 잃고말았다.

한줌도 안되는 자본가들은 호화주택들에서 부패타락한 생활을 하고있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집이 없어 목숨까지 빼앗기는것이 바로 자본주의사회의 비극적인 현실이다.

집값이 계속 폭등하고있는 자본주의사회에서 절대다수 가난한 사람들이 자기 집을 쓰고산다는것은 언제 가도 실현될수 없는 허망한 꿈에 지나지 않는다.새들도 추위를 막아줄 둥지가 있지만 이 사회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거처지가 없어 다리밑이나 주차장을 헤매고있다.

자본주의반동지배층이 표방하는 《민중리익존중》이니, 《국민시책》이니 하는따위들은 착취계급의 리익을 절대화하는 부르죠아정책의 반인민성을 가리우기 위한 미사려구이다.

어느한 자본주의나라에서 당국이 집없이 방황하는 사람들을 위한다고 하면서 《짐함집》이라는것을 고안해낸적이 있다.당국자들은 이 《짐함집》은 도시의 영상을 흐리지 않게 길옆에 설치할수도 있고 다리밑이나 주차장옆에 옮겨다놓을수도 있어 효률적이라고 광고하였다.그런데 그것마저 가격이 약차하여 근로대중에게는 그림의 떡으로 되고말았다.

지금 자본주의나라들에는 집없는 사람들이 모여사는 《움직이는 천막도시》가 수두룩하다.그 거주자들은 당국의 항시적인 박해의 대상으로 되고있다.이런 사람들을 중심구역에서 몰아내기 위해 자극적인 악취가 나는 쥐약을 뿌려 커다란 사회적물의를 일으킨 일도 있다.

수천수만의 불쌍한 사람들이 집이 없어 한지에서 떨며 구원을 애원해도 외면하고 천대하며 지어 범죄의 희생물로 만드는것이 자본주의사회이다.어느한 자본주의나라 도시에서 현대판노예생활을 강요당하던 사람들이 발견된적이 있는데 그들은 모두 집없는 사람들로서 《먹을것과 잠잘 곳을 제공하며 로동의 대가를 준다.》는 꾀임에 속아 끌려왔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사회의 실상이다.오죽했으면 부르죠아언론들까지도 수백수천만명의 근로자들이 빈궁이 사품치는 대하속에서 숨을 쉬기 위해 물우로 머리를 쳐들고있다, 악성비루스 못지 않은 《빈부격차의 비루스》가 무섭게 확산되고있다고 개탄하고있겠는가.

자본주의사회가 《번영》과 《문명》이라는 화려한 치장을 하고있지만 그 내부에서 슴새여나오는 반동성, 반인민성은 절대로 감출수 없다.

그 어디를 가나 《인민을 위하여 복무함!》이라는 구호가 빛나고 인민의 리익과 편의가 최우선, 절대시되는 참다운 인민의 나라, 우리의 사회주의제도와 얼마나 대조적인가.

사회주의제도야말로 근로인민대중의 영원한 삶의 보금자리이다.그 고마운 품에 안겨살기에 우리 인민은 자기들의 밝은 미래, 자기들의 참다운 삶에 대하여 그토록 자부하고 확신하고있는것이다.

본사기자 허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