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6.17. 《로동신문》 4면
《오늘 우리의 당원들과 근로자들속에는 누가 보건말건, 알아주건말건 묵묵히 자기가 맡은 초소에서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이 가는 길, 그들이 하는 일은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동서해의 해양연구기지들에서 누가 보건말건, 알아주건말건 당과 조국을 받들어 충성과 애국의 한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연구사들과 관측원들, 그들의 일터는 조용한 연구실이 아니라 파도사나운 날바다이다.
바람이 세차게 불고 바다가 기승을 부려도 그들은 물러서지 않는다.오히려 모든 배가 안전한 포구로 대피하는 그런 시각이 오면 그들은 광란하는 날바다를 향해 더욱 용감하게 나아간다.그길만이 해양재해를 미리 예측하고 해양자원을 적극 개발할수 있는 든든한 과학기술적밑천을 마련할수 있는 길이기때문이다.하다면 그 어떤 풍랑도 두려움없이 탐구의 험난한 길을 꿋꿋이 이어가는 그렇듯 강의한 신념과 의지는 어디에 그 뿌리를 두고있는것인가.
우리는 그 대답을 당과 조국에 대한 불같은 충성심과 애국심을 안고 나라의 해양과학발전을 위해 한생의 모든것을 바쳐가는 동서해 해양연구기지들의 연구사들과 자매도해양관측소 부부관측원의 모습에서 찾게 된다.
망망한 바다에 자욱은 남지 않아도
기상수문국 서해해양연구소 연구사인 공훈과학자 박기석동무는 오늘도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건조된 해양관측선을 타고 바다를 종횡무진하던 때를 종종 추억하군 한다.
당시 서해해양기상연구소에서 일하게 된 박기석동무는
륙지에 돌아와서도 밤을 새워가며 관측자료들을 정리하였다.그가 얼마나 연구사업에 열중하였던지 연구소에서는 24시가 되면 사무실의 조명을 무조건 끄도록 하는 조치까지 취했었다.그런 나날속에 박기석동무는 연구소의 쟁쟁한 실력가로, 일군으로 성장하였다.
우리 당의 원대한 대자연개조구상에 따라 서해갑문이 주체시대의 대기념비적창조물로 거창하게 일떠서던 시기에 그는 연구집단을 책임지고 현지에 나가 갑문건설에 필요한 많은 해양기상자료들을 수집하고 연구성과를 이룩하여 갑문건설에 커다란 도움을 주었다.
몇해전
하지만 당일군은 선뜻 대답을 줄수가 없었다.80고개를 넘어섰는데 꽤 견딜수 있겠는가고 묻는 당일군에게 그는 흔연히 말하였다.
《당에서 그처럼 안타까와하는데 나이가 많다고 주춤거리면 그게 무슨 당원의 자세이고 도리이겠습니까.》
그후 박기석동무는 수십일간의 고심어린 노력을 기울여 동서해의 해안방조제와 항만방파제들의 높이를 확정하는데 적극 이바지하였다.
그가 연구사들에게 입버릇처럼 외우는 말이 있다.
이렇듯 한생토록 당에 충실한 과학자로 살려는 티없이 순결한 충성심을 지녔기에 그는 인생의 로년기에도 왕성한 정력으로 연구사업에 헌신하고있는것이다.
사람의 외모는 겉치레를 할수 있어도 당과 조국앞에서는 그 어떤 겉치레도 있어서는 안된다.
기상수문국 동해해양연구소 소장 리광일동무는 이것을 인생의 좌우명으로 간직하고 남모르는 탐구의 길을 줄기차게 이어왔다.겉모습은 보통사람들과 다를바없이 수수해도 그는 일단 연구사업에 진입하면 그 누구도 따르지 못할 불같은 정열가이다.
지구온난화와 관련하여 하신
지난해 3월 기상예보실의 예보원들이 기상예보의 정확성을 높이는데 이바지할수 있는 앞선 예보방법들을 도입하기 위한 사업을 진행할 때였다.
자기들에게 연구방향을 알기 쉽게 해설해주는 그의 능력에 탄복을 금치 못하며 소장동지는 언제 그 많은 자료들을 연구했는가고 묻는 예보원들에게 리광일동무는 웃으며 대답했다.
《당에서 주는 과업을 막힘없이 수행하겠다는 각오만 있으면 시간은 얼마든지 있소.》
혁명과업수행에 대한 높은 책임성과 헌신적인 사업기풍을 체질화한 로과학자들중에는 서해해양연구소 연구사 김춘길동무도 있다.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그 어떤 계산도 척척 해제끼는 만능가라고 부른다.
지난 기간 연구소에 제일먼저 출근하고 제일 늦게 퇴근하는 사람들중의 한명이 바로 김춘길동무였다.일단 과제를 받으면 정확한 답을 내놓기 전에는 절대로 사색을 멈추지 않는것이 그의 사업방법이였다.계산방법을 궁리하며 걸음을 옮기다가 저도 모르게 목적지와 다른 방향으로 가는적이 한두번만 아니였다.
나이가 많은 그에게 사람들이 집에 들어가 쉴것을 권고하면 그는 대뜸 도리머리를 젓군 했다.아직 해야 할 일감이 많은데 어떻게 나이대접을 받으며 편안히 살겠는가 하는것이였다.
량심이 있고 의리에 사는 사람은 환경이 어떠하든 자기가 선택한 길을 끝까지 곧바로 간다.서해해양연구소 연구사 최옥순동무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가정부인이고 자식을 가진 어머니인 그에게 늘 모자라는것은 시간이였다.하지만 그는 사업과 관련하여서는 단 한치의 에누리도 몰랐다.
언제인가 연구소의 한 일군이 그의 가정사정을 고려하여 해양예보를 며칠 앞당기지 않겠는가 하는 의견을 제기했다.순간 최옥순동무에게서는 이런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절대로 그렇게 할수 없습니다.해양예보와 관련한 문제에서는 그 어떤 경험이나 형식도 용납될수 없습니다.무조건 제시간에 정확히 보장해야 합니다.》
명절날, 휴식일이 따로 없고 언제 한번 가족들과 모여앉아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직업이였지만 최옥순동무는 자기가 하는 일을 두고 후회하지 않았다.당이 맡겨준 초소를 끝까지 지켜야 한다는 자각을 안고 힘겨움도 괴로움도 강잉히 이겨나갔다.
생전에 당일군이였던 그의 남편은 최옥순동무가 조금이라도 마음이 흔들릴세라 이런 말로 깨우쳐주군 하였다.
《인간의 의리는 어려운 때 검열되고 보이지 않는데서 검열되오.우리 언제나 당에 대한 의리에 충실한 그런 사람으로 살기요.》
남편의 그 말을 최옥순동무는 한생토록 가슴에 깊이 새기고 살며 일하고있다.
망망한 바다에는 자욱을 남길수 없다.그러나 한생토록 당의 뜻에 충실한 해양연구사들이 새겨가는 탐구의 자욱은 그들이 마련해가는 하나하나의 귀중한 과학기술적재부들과 함께 조국청사에 길이 아로새겨질것이다.그런 삶이야말로 얼마나 보람있고 긍지높은것인가.
외진 섬초소를 지켜 수십년
지금으로부터 근 30년전 서해의 물결을 헤가르며 기세좋게 달리는 배머리에서 멀리 수평선을 바라보는 사람이 있었다.
그렇게 되여 공백이 생긴 관측일지를 보면서 누구보다 가슴아파한 사람은 그의
그러던
《저 배의 수많은 부속품들중에 어느 하나가 잘못되여도 배는 저렇게 달릴수 없단다.》
그는
그는 쉬이 대답할수 없었다.아들의 속생각을 짐작한
그후 몇해동안 자매도에서 관측사업을 진행하던 홍동길동무는 차순녀동무와 가정을 이루었다.하여 그들은 자매도의 부부관측원이 되였다.
관측사업은 변덕많은 자연을 대상으로 하는것만큼 굳센 의지와 높은 책임성, 자각성을 요구한다.파도사납고 바람세찬 날바다 한가운데 있는 섬에서의 관측사업은 더더욱 그렇다.
하루에도 몇차례씩 관측을 해야 하는 그들에게는 언제 한번 마음의 탕개를 늦출 사이가 없었다.한번 관측하는데만도 오랜 시간이 걸리는데 그런 관측을 낮과 밤이 따로없이 수시로 진행하자니 그들이 얼마나 긴장하게 살아야 하는가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수 있다.
생활조건도 대단히 불리했다.담수원천은 하늘에서 내리는 눈비뿐이였으니 남새농사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모든것을 뭍에서 날라다 리용해야 하였다.
하지만 그런 외진 섬에서도 사회주의교육제도의 혜택아래 뭍에서와 꼭같이 배움의 종소리가 랑랑히 울려퍼졌고 뜻깊은 명절을 맞을 때면 당의 사랑을 안겨주기 위해 비행기가 날아왔다.지리적으로는 뭍과 멀리 떨어져있어도 한치의 간격도 없이 기울여지는 어머니당의 사랑을 가슴뿌듯이 느끼며 그들은 관측사업을 더욱 량심적으로, 책임적으로 진행하였다.
관측사업에 제일 불리한 시기는 장마철과 겨울철이다.한밤중과 이른새벽에 억수로 쏟아지는 비발속을 뚫고 관측을 위해 미끄러운 벼랑으로 한치한치 내려갈 때면 등골이 오싹하군 했다.몸을 통채로 날려보낼듯이 강풍이 몰아치고 파도가 길길이 날뛰는 날에도 그들은 몸에 바줄을 감고 벼랑아래로 내려가군 하였다.
어느해 여름 깊은 밤에 창문을 울리며 비바람이 세차게 불어쳤다.자리를 차고일어난 홍동길동무는 습관적으로 시계를 보았다.관측시간까지는 아직 퍼그나 시간이 있었으나 사나운 비바람을 뚫고가야 한다는 생각에 그는 비옷을 입기 시작했다.남편의 거동을 살펴보던 차순녀동무는 오늘은 비바람도 세찬데 한번쯤 건늬면 안되겠는가 하는 의향을 내비쳤다.손전지를 찾아든 그는 조용히 안해에게 말하였다.
《오늘의 하나하나의 관측기록이 래일에는 나라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기초자료가 된다고 생각할 때 우리의 량심이 그것을 허용할수 있겠소?》
그들은 손을 잡고 한치앞도 분간할수 없는 어둠, 억수로 퍼붓는 비발속을 뚫고 관측장소로 나갔다.그리고는 몇번이나 파도를 뒤집어쓰면서 끝끝내 요소별관측을 진행하였다.
한겨울에 벼랑의 얼음을 도끼로 까내며 바다물이 드러난 곳까지 내려간 어느날 차순녀동무는 바다물의 온도며 염분도를 측정하다가 그만 미끄러져 옷을 몽땅 적시였다.남편이 앓고있는 상태여서 혼자 관측을 진행하는 그를 도와주려고 나왔던 한 사람은 해마다 하는 일인데 이미 측정한 수치로 관측자료를 추산할수 있지 않겠느냐고 물었다.그의 말대로 차순녀동무는 대기온도와 조석표만 보아도 얼마든지 바다물의 온도를 알아낼수 있었다.그러나 그는 얼어드는 몸을 가까스로 가누며 바다물의 온도를 정확히 기록했다.관측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차순녀동무는 말했다.
《바다물의 온도가 조금 차이난다고 해서 당장 그 영향이 나타나는것은 아니예요.그렇지만 우리가 관측한 이 자료를 기초로 설계가 작성되고 만년대계의 창조물들이 일떠선다고 생각할 때 어떻게 그 오차를 허용할수 있겠나요.》
홍동길동무와 차순녀동무는 이처럼 한번의 관측을 진행하고 하나의 자료를 만들어도 진정으로 조국을 위하는 마음으로 일하였다.
자매도해양관측소에 키를 넘게 쌓인 관측일지, 그것은 당과 조국을 위해 바쳐가는 홍동길동무와 차순녀동무의 불같은 충성심과 티없이 순결한 애국심의 기록장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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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용히 흐르는 대하에도 시원이 있고 소소리높은 나무에도 억센 뿌리가 있는것처럼 우리 시대 참된 인간의 량심과 의리에도 그 마를줄 모르는 원천이 있으니 그것은 당에 대한 끝없는 충실성과 조국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다.
나라의 해양과학발전을 위해 생의 귀중한 모든것을 다 바쳐 충성과 애국의 뚜렷한 자욱을 새겨가는 동서해 해양연구소의 로과학자들과 자매도부부관측원의 삶은 그 불변의 진리를 다시한번 실천으로 보여주고있다.
누구나 이들처럼 조국의 부강발전을 위해 지혜와 열정을 다 바칠 때, 이 세상 한끝에 있어도 우리 당이 바라는 한모습으로 살아나갈 때 그런 삶을 인민은 영원히 기억할것이다.
본사기자 조경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