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6.17. 《로동신문》 3면
무슨 일에서나 요행수를 바라는것은 혁명하는 사람들의 사업태도가 아니다.
특히 자연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사업에서 요행수를 바라는것은 일군들에게 있어서 금물이다.
어느한 군당위원회의 사업을 놓고보자.
언제인가 강하천정리사업을 료해하던 군당책임일군은 일부 단위들에서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일이라고 하여 강바닥파기를 제대로 진행하지 않은 문제를 알게 되였다.
원인은 《설마 우리 지역에야…》, 《설마 올해에야…》 하면서 요행수를 바라는 일군들의 그릇된 관점에 있었다.
군당책임일군은 즉시 요행수를 바라는 그릇된 관점을 뿌리뽑기 위한 사상교양사업을 실천과 결부하여 실속있게 벌려 일군들이 정신을 차리게 하였다.
일군들의 관점이 달라지기 시작하였다.결과 강하천정리사업은 질적으로 진행되게 되였으며 그해 큰물로부터 농작물들과 인민의 귀중한 생명재산을 보호할수 있게 되였다.
이와 반면에 일부 단위들에서는 자연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사업을 눈가림식, 땜때기식으로 진행하여 지난 시기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다.
이러한 단위 일군들을 투시해보면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요행수를 바라는것이다.설마, 설마 하면서 하늘만 쳐다보는 그릇된 사고관점이 이처럼 엄청난 후과를 초래하게 하였다.
이를 놓고 찾게 되는 교훈이 있다.자연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사업에서 요행수를 바라는것은 최대의 금물이라는것이다.
요행수만 바라면 안일과 방심, 형식주의, 요령주의가 나오기마련이다.그 밑바탕에는 무책임성과 건달풍이 깔려있다.태풍과 큰물을 비롯한 재해성기상현상은 자연적인 현상이지만 결코 다스리지 못할 일이 아니다.일군들이 어떤 사상관점을 가지고 달라붙는가에 달려있다.
일군들은 누구나 늘 이런 물음앞에 자신을 비추어보아야 할것이다.
자연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사업에서 하늘만 쳐다보며 요행수를 바란적은 없는가.
박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