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6.26. 《로동신문》 5면
한두해도 아니고 수십년세월, 한두명도 아니고 수십명의 부모없는 아이들을 키워왔다.모든것이 풍족할 때가 아니라 고난의 시기에, 그것도 맡은 혁명초소를 책임적으로 지켜가면서 39명을 조국보위초소에 세웠다.그 나날에 20여명이 조선로동당원의 영예를 지니였고 10여명이 군관으로 성장하였으며 제대된 자식들은 자기 일터에서 애국의 마음을 다 바쳐 일해가고있다.
누구나 놀라는 그 아름다운 소행의 주인공은 김만유병원 종합실험검사과 실장 윤선희동무이다.
고결한 헌신으로 이어온 그의 인생행로는 사람들에게 깨우쳐주고있다.참된 어머니, 참된 공민이라면 후대들의 가슴속에 무엇부터 심어주어야 하며 충성과 애국의 첫걸음은 어떻게 떼여주어야 하는가, 격동하는 오늘의 시대에 이 땅의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어떤 실천적모범을 보여주어야 하는가를.
《그 어떤 난관과 시련앞에서도 주저하거나 동요하지 않고 참된 애국의 한길을 걷는 사람, 조국과 인민이 맡겨준 혁명과업을 한치의 드팀도 없이 제때에 성실히 수행하는 사람이 진짜애국자입니다.》
너무도 뜻밖이였다.처녀의 몸으로 부모잃은 아이들을 데려다키우겠다니?!
남편과 한창 딸의 혼사문제를 토의하던 최성희녀성은 딸의 결심에 그만 깜짝 놀랐다.깊은 생각끝에 그는 윤선희동무에게 말했다.
《살아보니 제가 낳은 자식을 키우는 일도 헐치 않더구나.한순간의 동정이나 인정만으로는 부모없는 아이들을 끝까지 책임지지 못한다.》
그러나 윤선희동무는 자기의 결심을 굽히려 하지 않았다.
그의 마음속에 그런 결심이 자리잡기 시작한것은 몇달전부터였다.부모잃은 아이들을 데려다키우는 한 녀인의 집을 자주 찾아 일손을 거들어주는 과정에 그는
얼마후 윤선희동무는 부모잃은 10여명의 아이들을 품어안았다.그후 그는 수십명 아이들의 어머니가 되였다.자식 하나 키우는데 오만자루의 품이 든다는데 나이도 성격도 식성도 나름대로인 수십명 아이들을 안아키우며 그가 바친 땀과 지성을 무엇으로 다 계산할수 있겠는가.
팽이처럼 돌아도 손이 모자랐다.업어주고 안아주는것은 백번이라도 할수 있었지만 젖먹이애들의 어머니구실을 한다는것은 정말 힘든 일이였다.그 고충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의 어머니는 딸을 예전처럼 남먼저 일터로 떠밀며 가정의 크고작은 일을 기꺼이 맡아나섰다.언제나 지극한 정성으로 주민들의 건강을 보살펴주며 늘 어려운 일에 발벗고나서던 그의 어머니는
참다운 모성애는 잘 먹여주고 입혀주는것만으로 말할수 없다.훌륭한 우리 어머니들이 자식을 위해 오만자루의 품을 바쳤다면 그것은 아마도 당과 조국의 은혜를 아는 참된 인간으로 키우자고 기울인 원칙적인 사랑으로 일관되여있을것이다.
이른새벽이면 윤선희동무는 애들과 함께 만수대언덕을 찾군 했다.그 일과는 해가 바뀌여도 변함이 없었다.때로 눈보라 몰아치는 날이면 견디기 힘들어하는 애들도 있었다.그럴 때면 그는 우리
그들속에는 경상유치원과 중구역 대동문유치원에 다니는 재간둥이들도 있었고 평양학생소년궁전의 손풍금소조, 서예소조 등에서 자기의 재능을 마음껏 꽃피우는 애들도 있었다.한점 그늘이라도 질세라 더 따뜻이 품어주고 희망의 나래를 활짝 펼쳐주는 사회주의 우리 제도의 고마움을 온몸으로 절감한 그애들이 우리에게는 세상에서 제일 위대하신
윤선희동무는 그처럼 어려운 속에서도 사회와 집단을 위한 좋은 일도 적극 찾아하였다.어머니가 받아안은 표창장들을 보면서 아이들은 자신이나 가정보다 나라를 먼저 생각하는 마음을 간직하게 되였다.그 보석같은 애국의 마음으로 나라살림에 조금이라도 보탬을 주고싶어 파비닐을 수집하여 공장에 보내주던 나날에 제멋대로 자라던 어린나무들과도 같던 수십명의 아이들은 한마음, 한모습으로 몰라보게 변해갔다.
아이들은 매일 일기를 썼다.나는 오늘
어느덧 윤선희동무의 집벽면에도 조선인민군입대증이 걸려지게 되였다.자식들중에서 처음으로 군복입은 의젓한 아들이 조국보위초소로 떠나게 된 그날 온 식솔은 한자리에 숭엄하게 모여앉았다.우리 당과 조국을 목숨으로 지키는 억센 총대가 될 굳은 맹세를 담아 애들은 자기들의 이름을 또박또박 새겨
언제나 태양을 옹위하는 위성이 되라고 태양계의 행성들과 꼭같은 이름을 달아주고 어릴적부터 마음속에 큰뜻을 심어주며 지성을 고여 자래운 자식들이 해마다 초소로 떠났다.조국의 하늘과 땅, 바다초소를 지켜 총을 잡은 자식들에게서 몇해후부터는 기쁜 소식을 담은 편지들이 날아왔다.
《초소에 오신
《얼마전에 저는 영광스러운 조선로동당에 입당하였습니다.》
《어머니의 이 아들은 조선인민군 전초병열성자대회에 참가하여 영광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우리 형제는 지금 한부대에서 모두 포장으로 복무하고있습니다.》
《구분대에서는 전투정치훈련과 군사과업수행에서 모범을 보인 윤탄성동무를 높이 평가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그런 편지들이 하나둘 늘어날 때마다 윤선희동무의 생각은 깊어졌다.조국이 자랑하는 병사가 되라고 당부만 하는 어머니가 아니라 먼저 그 자식들앞에 떳떳한 어머니가 되여야 하지 않겠는가.
그는 부모없는 아이들을 키우며 스스로 미루어놓았던 젊은 시절의 높은 목표를 안고 용감하게 과학연구의 길에 뛰여들었다.평범한 어머니들보다 몇갑절 더 무거운 짐을 지고서도 그우에 공민의 애국적본분과 사명감을 덧놓고 열백배로 분투하였다.하여 26번째 자식이 병사가 된 그해에 그는 조선로동당원의 영예를 지니고 석사학위를 수여받았으며 그로부터 10년후에는 박사, 부교수가 되였다.
보통사람은 상상도 할수 없는 불같은 의지와 사랑을 안고 굴함없이, 변심없이 애국의 한길만을 걸어온 그의 곁에는 버팀목이 되고 한식솔이 되여 언제나 기쁨과 아픔을 함께 나눈 고마운 당조직과 미더운 동지들이 있었다.마음속괴로움까지 속속들이 헤아려 그의 자식들을 당원으로, 군관으로 보란듯이 내세워주며 그 장래운명까지 친어버이심정으로 보살펴준
그 사랑에 받들려 윤뢰성, 윤충성동무를 비롯한 많은 자식들이 오늘
꽃나이처녀시절부터 아이들을 맡아키우기 시작한 윤선희동무의 나이는 어느덧 예순이 지났다.그러나 당과 국가에서는 그처럼 어려웠던 고난의 시기에 수십명의 부모없는 아이들을 품어안고 조국과 인민을 위해 성실하게 복무할줄 아는 훌륭한 인간들로 키운 그의 공로를 언제나 높이 평가해주었으며 오늘은 누구나 부러워하는 애국자동네인 경루동의 주인으로 내세워주었다.
부모없는 아이들을 조국의 기둥감으로 키우기 위해 한생의 귀중한것을 깡그리 바친 녀성, 인간이라면 누구나 누릴수 있는 행복의 권리마저도 고스란히 바쳐 자식들을 조국앞에 끌끌한 병사들로 내세운 훌륭한 녀성애국자의 숭고한 정신세계에 절로 머리가 숙어진다.
그가 삶의 가장 귀중한 재부로 여기는 39개의 입대증, 바로 여기에 나라와 후대들을 위해 자신을 깡그리 바쳐가는 그의 값높은 인생관과 행복관이 비껴있다.그가 이 나라를 얼마나 뜨겁게 사랑하고 조국의 미래를 얼마나 귀중히 여기는가 하는 대답이 있다.
이처럼 고결한 량심으로 억센 뿌리와 같이 조국을 떠받들고있는 참된 애국자들이 많아 내 나라는 그토록 굳건한것이다.
글 본사기자 조향선
사진 리설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