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3(2024)년 9월 19일 목요일  
로동신문
실화
교육자의 길

2023.8.21. 《로동신문》 4면


지난해 가을 어느날 강서구역 탄포고급중학교 교원 김정덕은 오후한겻이나 책상우에 원고지를 펴놓았으나 펜을 달릴수 없었다.

아침에 학교에 출근한 그에게 정순철교장이 이런 임무를 주었다.

《며칠후에 구역에서 교원들의 회의가 있게 되오.정덕선생이 회의때 경험토론에 출연해야겠소.》

그러면서 교장은 토론준비를 잘해야겠다고 오금을 박았다.

그런데 정작 토론문을 쓰자니 생각은 착잡해졌다.더우기 학교를 대표하여 출연하는 토론이였다.

과연 어떤 경험이 절실히 필요할가 하고 그는 줄곧 생각을 굴리고있었다.

그러느라니 교단에서 보낸 30여년의 나날과 기쁘고 괴로왔던 일들이 엇갈려 안겨왔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량심과 성실성은 교육자의 생명입니다.》

문득 불편한 한쪽다리에 저도 모르게 눈길이 가 멎었다.의족한 다리때문에 지난 20여년간 치마를 입어본 날이 없다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갈마들었다.때로 치마저고리를 입군 하였다.

그 다리로 김정덕은 수십년간을 아이들과 울고웃으며 교단을 지켜왔고 교육자로서 헌신의 길을 꿋꿋이 이어왔다.

추억의 배는 쉼없이 거슬러올랐다.

야들야들한 새파란 싹들이 묵은잎을 헤집고 머리를 올리밀던 스물세해전 봄이였다.싱그러운 풀냄새가 집안에까지 스며들던 그때 몇달동안 병원생활을 하고 돌아와 집안에 누워있던 김정덕은 따스한 봄의 향취에 끌려 문을 열고 토방에 나앉았다.

그리고는 한동안 가지가지 상념에 잠겼다.

먼저 떠오른것이 다리를 수술하고 병원의 입원실에 누워있던 그에게 나어린 세 아들이 찾아온 날이였다.그날 입원실에 들어선 세 자식은 눈물범벅이 되여 어머니에게 달려와 와락 안겼다.

《어머니, 다리는 아프지 않나요?》

《형, 엄마다리는 어디에 있나? 응?…》

철없는 막내가 엉엉 울면서 물었다.

《엄마는 일없다.》

이렇게 말하며 세 아들을 부둥켜안은 그의 눈가에도 눈물이 고였다.

이제 이 불편한 다리를 가지고 자식들과 남편의 뒤시중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억이 막히기도 하고 한쪽으로는 두렵기도 했다.

착잡한 심정에 사로잡힌 그를 찾아 매일이다싶이 교원들과 학생들이 입원실에 들어섰다.

교장은 그의 손을 굳게 잡으며 말했다.

《정덕선생, 힘을 내오.선생이야 제대군인이고 당원이 아니요.》

《고맙습니다.정말…》

정덕은 더 말을 잇지 못하였다.

그가 담임한 학급학생들도 눈물이 글썽하여 말했다.

《선생님이 우리때문에 이렇게 되였는데… 공부도 잘하고 조직생활도 잘하겠습니다.빨리 일어서서 다시 우릴 배워주십시오.》

수십명 학생들의 기대가 어린 말을 들으며 그때 가슴이 얼마나 뭉클했던가.

이런 생각에 잠겼던 정덕은 쌍지팽이를 찾아쥐고 몸을 일으켰다.집앞에 보이는 나지막한 언덕을 넘어서면 그가 교편을 잡고있는 강서구역 학산중학교(당시)가 있다.불현듯 오늘이 새 학년도 개학날이라는 생각이 떠올랐던것이다.

그는 쌍지팽이에 의지하여 학교가 있는쪽의 울바자로 조금씩 다가섰다.

아닐세라 개학모임을 알리는 종소리가 언덕너머에서 정답게 울려오며 그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 종소리는 어버이수령님께서 다녀가신 영광의 초소에서 복무한 어제날의 사관장, 제대군인당원의 심장만이 아니라 당의 품속에서 자라난 교육자의 량심을 세차게 두드렸다.

(나의 지식은 교단에 필요한것이다.나의 심장이 뛰는한 언제나 교단에 서있으리라.)

그후 의족을 하고 교정에 들어서는 그를 온 학교가 반겨맞아주었다.학급학생들은 그를 에워싸며 우리 선생님이 다시 자기들을 배워주게 되였다고 기뻐하며 발을 동동 굴렀다.

그들의 모습이 그에게 생의 활력을 북돋아주었다.

이렇게 다시 시작된 교원생활이였다.그러나 결코 탄탄대로가 아니였다.

그는 남들과 꼭같이 수업도 하고 학생들이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함께 갔다.

언제인가 졸업을 앞두고 인민군대에 나가게 된 학생들이 신체검사를 하러 구역소재지에 간적이 있었다.날씨가 쌀쌀했지만 그날도 그는 학생들과 함께 왕복 10리가 넘는 길을 걸었다.

학생들과 헤여져 집으로 향하던 그가 언덕길에 들어섰을 때였다.

진눈까비가 내려 언덕길이 몹시도 미끄러웠다.

한치한치 힘겹게 발을 내디디던 그는 갑자기 넘어지며 언덕밑에 있는 구뎅이로 떨어졌다.의족한 다리로는 다시 올라설수가 없었다.오르다가는 또 미끄러져내리기를 그 몇번, 얼굴에서는 비지땀이 뚝뚝 떨어졌다.

한시간나마 구뎅이에서 모지름을 썼으나 모든것이 허사였다.오도가도 못하고 망연자실한듯 맥을 놓고 주저앉아있느라니 몸이 점차 얼어들기 시작했다.

바로 이때 멀리에서 전지불이 번쩍거렸다.자기를 찾는 목소리도 들려왔다.남편이였다.

순간 정덕은 눈물이 왈칵 솟구쳐올랐다.그는 기운을 모아 소리쳤다.

《나 여기 있어요!》

남편의 등에 업힌 정덕은 자신이 한없이 민망스러워 굵은 눈물방울로 그의 잔등을 적시였다.

《아이처럼 울긴, 아직도 먼길을 가야 할텐데 이런 일을 놓고 나약해지면 안되오.》

남편인 김병덕도 제대군인이였다.안해가 의족을 하고 교단에 다시 선 때로부터 가정에서 많은 짐을 걸머지고있는 그는 어려울 때마다 힘을 보태주고 의지가 되여주었다.

다음날 정덕은 아무 일이 없었던것처럼 다시 교단에 나섰다.

그는 이렇게 자신을 이겨내며 학교사업에 더욱 정열을 쏟아부었다.그가 맡은 학급은 언제나 모범학급으로 되였다.

그의 몸상태를 고려하여 구역에서는 그를 소재지에 자리잡은 탄포고급중학교로 조동시켜주었다.

조직과 집단의 사랑과 믿음을 가슴에 새기고 그는 다른 교원들이 감당하기 어려워하는 학급도 스스로 맡아안았다.

어느날 한 학생이 그를 찾아왔다.

《전 선생님의 학급에서 공부하고싶습니다.》

순간 그는 망설이였다.학교적으로 애꾸러기로 소문난 그 학생때문에 속을 썩일 일을 생각하니 선뜻 결심이 내려지지 않았다.

무엇때문에 우리 학급에 오려고 하는가고 묻는 그에게 학생은 이렇게 대답했다.

《선생님의 학급동무들이 부럽습니다.》

《그럼 나하고 약속하자.선생님이 자랑하는 학생이 되겠다는걸 말이다.》

이렇게 다짐을 했으나 얼마 안있어 종내 일은 터지고야말았다.

그날 저녁 불편한 다리로 집에 찾아온 선생님앞에 그 학생은 머리를 들수가 없었다.

《선생님, 저때문에 힘들게 집에까지… 정말 잘못했습니다.》

《내가 힘든게 무슨 대수겠니.그러나 이걸 명심해라.선생님과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학생은 앞으로 조국앞에 다진 맹세도 지킬수 없다는걸…》

이렇게 한명한명을 이끌어 그는 맡은 학급을 영예의 붉은기학급, 2중영예의 붉은기학급으로 만들었다.

많은 제자들이 성장하여 대학에도 가고 인민군대에도 입대하였다.

인민군대에 나가는 제자들은 영웅이 되여 돌아올것을 선생님과 약속했다.그들가운데는 조철진, 박서명과 같이 당과 조국을 위하여 자기 한목숨을 서슴없이 바친 애국렬사들도 있었다.

책상에서 몸을 일으킨 김정덕은 창문에 천천히 다가섰다.

저 멀리 바라보이는 청산마루가 저녁노을로 붉게 물들고있었다.

(그렇다.쓰자.교원의 량심에 대하여, 교육자의 길에 대하여.)

그는 이것이 자신이 맡은 또 하나의 임무라고 생각했다.

* *

그로부터 며칠후 그는 구역안의 천수백명 교육자들이 모인 회의장의 연단에 올랐다.

그의 토론을 들으며 모두가 눈굽을 적시였고 열렬한 박수갈채를 보내였다.그리고 자신들을 돌이켜보며 교육자가 한생토록 가야 할 길이란 어떤 길인가를 깊이 생각해보았다.

그길은 언제나 새세대들의 맑은 눈동자에 비끼는 참된 인생의 거울이 되여 순결한 량심과 애국헌신으로 변함없이 걸어야 하는 직업적혁명가의 길임을 누구나 한 평범한 교육자가 걸어온 길을 놓고 심장깊이에 새겨안았다.

본사기자 공로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