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3일 토요일  
로동신문
세대가 바뀌고 혁명이 전진할수록 더욱 투철한 반제계급의식을 지니자
살아있는 령혼들의 피타는 절규

2023.8.29. 《로동신문》 6면


지금으로부터 78년전인 1945년 8월 24일 일본 교또부 마이즈루항가까이의 수역에서 갑자기 요란한 폭음이 련속적으로 울리면서 수천t급의 배 한척이 두동강났다.

배의 침몰로 수천명의 조선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인민의 가슴속에 오늘까지도 아물지 않는 상처로 남아있는 《우끼시마마루》폭침사건이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조선에 대한 일제의 가혹한 식민지략탈정책과 일제가 우리 인민에게 끼친 불행과 재난은 인류력사에 그 류례를 찾아볼수 없는것입니다.》

《우끼시마마루》에는 아오모리현과 혹가이도의 군사기지건설장, 탄광 등으로 끌려와 가혹한 노예로동을 강요당하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조선사람들이 타고있었다.

일제는 조선사람들의 피땀과 죽음의 대가로 설치된 군사기지들의 비밀이 새나가지 않도록 하며 저들이 저지른 야만적인 학대행위와 극악한 살인범죄를 영원히 묻어버리기 위해 그리고 《대동아공영권》의 야망을 이루지 못하고 패망의 쓴맛을 보게 된 분풀이와 앙갚음을 하기 위해 그들모두를 죽여버릴 흉계를 꾸몄다.

조선사람들의 귀향길을 한사코 열어주지 않던 놈들이 갑자기 고향에 보내주겠다고 《선심》을 쓰며 《우끼시마마루》를 순순히 내준것은 그때문이였다.

오미나또해군경비부는 시모기따반도(아오모리현 북동부에 있는 반도)지역에 모여온 조선사람들에게 《우끼시마마루》가 부산으로 가는데 조선에 가는 배편은 이것밖에 없다고 하면서 모두 이 배에 타라고 구슬리기도 하고 강박하기도 하였다.

평소에 몽둥이와 채찍을 마구 휘두르며 조선사람들을 짐승취급하던 일제악귀들이 패전의 수치로 하여 온 일본땅이 초상난 집처럼 어수선하던 때에 갑자기 귀향의 배길을 열어주었으니 이것은 어느모로 보나 수상쩍은 일이 아닐수 없었다.더우기 련합군의 명령으로 일본령해에서 100t급이상 되는 선박들의 항행이 금지되여있던 상황에서 수천t급의 배가 출항하였다는것은 폭침사건이 우발적인것이 아니라 일본당국의 치밀한 타산과 의도적인 계획에 따라 감행된것이라는것을 보여주고있다.

1945년 8월 22일 밤 아오모리현 오미나또의 군항을 떠난 《우끼시마마루》는 24일 교또부 북부의 군항인 마이즈루항가까이에서 폭침되였다.결과 수천명의 무고한 조선사람들이 수중고혼이 되였다.

간악한 일제는 얼마 안되는 생존자들에게까지 살륙의 마수를 뻗치였다.

한 생존자는 《살아남은 얼마 안되는 사람들은 어느한 장소에 수용되였다.그런데 여기서도 살인음모가 꾸며지고있는줄 그 누가 알았겠는가.다음날 갑자기 숙소안의 증기탕크가 폭발하여 수십명의 동포들이 중상을 입었다.》라고 증언하였다.

력사에는 식민지들에서 대량학살만행을 감행한 침략자들에 대한 기록이 적지 않다.하지만 일제와 같이 패망후에도 집단살륙에 환장이 되여 날뛴 침략자는 없다.

《우끼시마마루》폭침사건으로 검푸른 날바다에 수장된 수난자들의 령혼들은 피의 복수를 절규하고있다.

본사기자 박진향